[커버스타]
<신라의 달밤> 엽기 삼총사 [3] - 김혜수
2001-06-20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코미디, 장고 끝의 묘수

왜 좀더 기다리면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인지 궁금했다. 3년 만에 선택한 작품의 배역이 그리 크지 않은 조연이었는데도 흔쾌히 승낙했으니. 김혜수가 <닥터K>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라의 달밤>의 민주란은 극중 두 주인공인 기동과 영준이 환심을 사기 위해 애걸복걸, 안절부절하는 미모의 라면집 여사장. 하지만 지금껏 출연한 영화들에 비해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저 혼자 부담하긴 싫었어요. 오랫동안 쉬었는데, 이전보다 더 강한 캐릭터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 부담이 관객에게까지 전달될 수도 있잖아요.” 사실 이번 영화를 고른 데는 ‘흥행’이라는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

“어떤 영화가 흥행이 될지 미리 알아보는 선구안 같은 게 제겐 없어요. 사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왔으니까. 다만 이번엔 좀더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었고, 장르 중에서는 코미디가 가장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민주란이라는 캐릭터의 매력까지 그가 부정하는 건 아니다. 가장 먼저 꼽는 건 “모든 면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액티브한 성격”.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다가 갑자기 우악스럽게 동생을 메다꽂는 그녀를 김혜수만큼 천연덕스럽게 소화할 만한 배우는 많지 않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어요. 영화 보면 떠들썩하지만, 실제 촬영 때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충분히 배려해줬으니까.” 경주에서 로케이션하는 동안 광고 촬영이나 박사과정 논문준비 때문에 서울을 오갔던 건 고역. 그런데도 틈을 타 읽은 책과 손수 짠 목도리 수만 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고 현장에서는 든든한 ‘대모’ 역할까지 도맡아 했으니. 촬영 마치고 이제 와서 몸살 기운이 도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같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 기를 제가 끌어모으는 데 선수거든요. 아프다가도 일하면 유쾌해지는데… 글쎄.”

벌써 연기생활 16년째인데 너무 엇비슷한 역할에 능력을 소진하는 것 같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내자 “오랫동안 머물렀지, 배우로서 뭘 이룬 건 아니”라고 답한다. 스타덤에 일찍 오르긴 했지만, 배우로서 관객의 뇌리와 가슴에 정을 단단히 박아넣은 작품이 아직 없었다는 건 그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담하는 건 아니다. 고민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저에게는 그만큼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나요.” 신인 여배우들이 늘상 하는 답변과 같지만, 그건 다른 의미다. 김혜수의 지향점은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와 동의어는 아닌 것 같다. “단점이 있더라도 커버하기 위해 급작스레 변하는 건 싫어요. 운명적으로 선택해야 할 때가 아니라면, 순간순간 결정하기보다 그냥 미뤄두고 기다리는 게 제 스타일이에요.” 그에게 자연스러움은 이제 ‘신념’에 가깝다. 험한 능선을 타고 오른 정상에서 외로이 부르는 환호보다 조그만 언덕길을 거닐며 피어난 풀꽃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여유를 찾겠다고 하는 걸 보니.

차승원과 이성재| 진심으로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을 만나면 좋죠. 둘 다 그런데, 차승원은 일할 때도 밝은 성격 잃지 않고 쉽게 쉽게 풀어가요. 그만큼 유연하고 그런 데서 전 자극받고. 이성재를 보고 많이 놀랐어요. 본인 스스로 준비작업을 많이 하는데, 학생이 수업준비하듯이 말이죠. 그런 건 제 스스로 환기하는 데 도움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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