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신라의 달밤> 엽기 삼총사 [4] - 이성재
2001-06-20
글 : 최수임
사진 : 이혜정
무색무취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왜 안 와, 빨리 찍읍시다.”

이성재에게는 모범생 기질이 있다. 장난 같은 건 잘 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정석대로 임한다. “이래서 여배우도 웬만큼 예뻐야지….” 원피스로 갈아입은 김혜수를 보고 차승원이 농담을 건넬 때도, 이성재는 스튜디오 의자 위에서 가만히 그들을 기다린다. 고3 때 어느 한순간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신을 사로잡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숨겨진 반대얼굴을 찾아가는 것이 생일까. 이성재는 얼마 전 한 친구와의 만남을 떠올린다.

부잣집 아들이었고 공부는 자신보다 못했던 중학동창은 도쿄대 박사가 되어 있었고, 범생이었던 자신은 배우가 되어 있었다. 아무도 배우가 되리라고 예상치 않았던 이 배우는, 바로 그런 이야기인 <신라의 달밤>에서 아무도 깡패가 되리라 생각 않던, 그러나 깡패가 된 한 남자에, 사뿐히 자신을 들여놓는다.

<신라의 달밤>의 투톱 중 하나인 ‘모범생 기질을 가진 깡패’ 박영준은, 이성재가 ‘반은 먹고’ 들어간 역이나 다름없다. 어떤 기질을 표현하기란 어떤 직업을 나타내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일 테니까. 하지만 나머지 반은 순전히 그의 몫이었다. 머리를 뒤로 다 넘기고 사나운 눈매에 여유있는 걸음걸이. 언뜻 눈에 띄는 이런 ‘깡패스러움’ 이외에도 이성재는 대사처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 끌지 않고 딱딱 끊는 것이 그것. 세심한 부분에 그는 더 세심한 사람인 듯하다. 뒤처리 또한 깔끔한 스타일. 그는 액션연기 중 한번 발목을 삔 것 빼고는 촬영기간 내내 별탈 없이 건강을 유지했다. 비결은 맥주 한 캔이었다. 밤샘촬영이 끝나고 새벽녘, 동트는 토함산을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마시면, 그는 피로가 씻기는 걸 느끼곤 했다.

“어떤 색깔의 배우라고 생각하죠?”

“색깔 같은 건 없어요. 무색무취의 연기를 하고 싶어요. 안성기 선배처럼. 빨간 영화에서는 빨개지고, 파란 영화에서는 파래지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려서 거만하다고 할지 몰라도 저는 그런 게 좋아요.” <미술관 옆 동물원> <하루> 같은 부드러운 영화와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같은 거친 영화를 골고루 필모그래피 안에 가지고 있는 배우. 무채색 옷을 즐겨입는 배우. 매니저가 없는 배우. 말이 적으나 원래는 말을 잘할 것 같은 배우. 어렵지 않게 매번 다른 색깔 속으로 녹아드는 이 배우의 ‘무색무취’는‘달빛’처럼 은근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신작 <신라의 달밤>에서도 그는 ‘웃기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그렇게 무겁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은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차갑고 잔인한 살인자 조규환이 그의 다음 색깔이다.

차승원이 본 이성재

영화하기 전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영화하면서 친해졌다.

4개월 전에는 내가 운동하라 그러면 무슨 운동이냐 하던 사람이, 요즘엔 (팔뚝을 잡으며) 쫄티도 잘 입더라. (웃음) 사람이 진짜로 세게 맞으면 숨을 못 쉰다고 한다. 맞는 연기할 때 성재씨가 그런 디테일을 표현하는 걸 보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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