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브라이언 드 팔마와 <팜므 파탈> [1] - 드 팔마에 관한 5가지 키워드 (1)
2004-11-23
글 : 이종도

Brian De Palma

“1962년 <쥴 앤 짐>의 개봉 때문에 뉴욕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기자들이 다음과 같은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은 왜 히치콕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가? 그는 돈도 많고 성공한 인물이지만, 그의 영화는 별것 아닌데.’”(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과의 대화> 개정판 서문)

브라이언 드 팔마에 대해, 아마 트뤼포의 이야기를 이렇게 고쳐쓸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안 그런데) <카이에 뒤 시네마>와 유럽의 비평가들은 왜 브라이언 드 팔마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가? 돈이 많은지 성공한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의 영화는 별것 아닌데.”

히치콕 못지않게 드 팔마에 대한 오해는 오랜 것이다. <팜므 파탈>은 드 팔마가 갱스터와 블록버스터 등 보편적인 소재로 시선을 뻗으면서도,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잊지 않으면서도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거장이 들려주는 원숙한 리듬은 귀에 익으면서도 낯선 것이다. 새로운 걸작을 반기며 여전히 그에 관해 궁금한 다섯 가지 질문을 추려보았다. 그와의 서면 인터뷰는 <팜므 파탈>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것이다.

두통과 현기증을 안겨주는 영화 수사학의 대가 드 팔마가 오랜 경유로를 거쳐 뒤늦게 신작 <팜므 파탈>을 한국에 선보였다.

히치콕적인 유산이 여전히 눈에 띄지만 드 팔마의 한층 세련되고 현란해진 가공 솜씨가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늘 우울하게 드리워졌던 금발머리 여성에 대한 혐오를 이번엔 유쾌하게 뒤집었다. “드 팔마는 지금보다 더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로저 에버트)는 평가가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드 팔마는 동시대의 경쟁자인 스코시즈와 코폴라, 루카스, 스필버그에 비해 불우했다. “자신이 창조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이 모조품만 만들어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그리고 결국 거기에서 끝이 난다)”는 평판은 그를 줄곧 괴롭혔다. 작고한 폴린 카엘이 은총을 하사한 것을 제외하면 미 평단은 이 말썽 많은 논쟁적 작가를 비평적으로 ‘망명’보내는 데 일찌감치 합의를 봤다. 그러나 드 팔마가 선구적으로 보였던 사지절단과 관음증 등 관객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간 ‘악행’은 이제 후배들이 훨씬 앞질러가고 있다. 드 팔마는 갱스터와 블록버스터 등 보편적인 소재로 시선을 뻗으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잊지 않으며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 <팜므 파탈>은 드 팔마의 평가를 뒤바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에 대해 새삼스러운 질문을 간추려 던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주요 필모그라피
<그리팅>(1968)·<시스터즈>(1973)·<천국의 유령>(1974)·<강박관념>(1976)·<캐리>(1976)·<드레스드 투 킬>(1980)·<필사의 추적>(1981)·<스카페이스>(1983)·<침실의 표적>(1984)·<언터처블>(1987)·<전쟁의 사상자들>(1989)·<허영의 불꽃>(1990)·<칼리토>(1993)·<미션 임파서블>(1996)·<스네이크 아이즈>(1998)·<미션 투 마스>(2000)·<팜므 파탈>(2002)

1. 그는 여전히 히치콕의 모방자인가

<이창>
무엇이 그를 창조자로 만드는가

20대 시절 고다르 흉내를 내던 드 팔마는 이후 줄기차게 히치콕의 세계를 모방했다. 히치콕의 <싸이코> 샤워장면만 해도 <드레스드 투 킬>에서의 화려한 버전과 <필사의 추적>에서 폭소를 자아내는 샤워장면(그건 싸구려 영화 제작과정이다), <캐리>의 도입부 등 몇 가지 판본이 된다. <이창>의 훔쳐보기 모티브는 <시스터즈> <침실의 표적> <그리팅>. <현기증>의 분신 모티브는 <강박관념>과 <침실의 표적>을 거쳐 <팜므 파탈>까지 이어진다.

드 팔마가 히치콕에게서 빌려온 것은 이런 모티브뿐 아니라 관음증, 강박관념, 남성의 성적불안, 성의 모호성 그리고 내러티브 구조까지 방대한 목록을 이룬다. 심지어 음악을 쓸 때도 히치콕의 유산을 물려받는다. <싸이코> <현기증> 등의 음악을 맡았던 버나드 허먼에게 <강박관념>과 <시스터즈> 음악을 맡기기도 했다.

<현기증>

(아마도 배를 거쳐) 벽을 뚫고 나오는 피묻은 드릴이나(<침실의 표적>), 귀를 거슬리게 하는 전기톱(<스카페이스>)을 비추는 드 팔마의 카메라처럼 음악 또한 히치콕보다 더 직접적으로 주제에 관여한다. 끊어질 듯 끝날 듯하면서 반복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볼레로>풍 선율은 <팜므 파탈>의 반복과 데자뷰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는다. 드 팔마는 그의 전매특허가 된 다중영상으로 히치콕 이상의 충격을 안긴다. 분할의 미학이라 할 이 기교로 드 팔마는 한개의 숏과 대응 숏을 함께 보여주며 충돌의 미학을 선사한다.

<강박관념>

드 팔마가 코미디-호러-전쟁-갱스터-블록버스터-SF-필름누아르로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하이테크와 수사학을 변용할 때, 정신적 아버지인 히치콕보다 왕성하게 영화의 영토를 확장할 때 그는 모방자라기보다는 개척자로 보인다. 히치콕의 자장에서 그는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팜므 파탈>에서 <현기증>의 구조를 재발견할 수 있지만 이 구조는 드 팔마의 <강박관념>에서 찾는 게 더 온당하다. 1940년대 필름누아르의 구조가 차라리 <팜므 파탈>을 더 잘 이야기해준다.

2. 그는 그저 뛰어난 영화의 수사학자에 불과한가

<강박관념>
그의 정치적 급진주의 또는 비관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드 팔마는 혼없는 테크니션인가. 드 팔마는 어떤 소재나 주제든 어떻게 해야 관객을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는지를 잘 아는 장인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쳤다면 정말 그는 재기넘치는 수사학자에 불과할 것이다. 로렌스 냅의 말처럼 그는 관객의 등을 떠밀어 ‘이데올로기적 경계’를 시험하는 상황과 충동에 직면하게끔 한다. <필사의 추적>은 말할 것도 없고 <강박관념>에서 시간(屍姦)과 근친상간의 나락까지 떨어진 미국 남부 부호에 대한 비판이나 <전쟁의 사상자들>에서 일개 말단 병사에게까지 스민 제국주의 등 정치적 주제 선율은 드 팔마의 44년에 가까운 영화 이력에서 한번도 끊긴 적이 없다. <필사의 추적>과 <스네이크 아이즈>의 음모론, <스카페이스>와 <칼리토>에서의 천박한 미국 자본주의 비판도 빼놓을 수 없다. 드 팔마의 스크린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짙은 냉소주의이며 1960년대 좌파의 실패가 안겨준 좌절이다. 케네디 살인(<그리팅>)과 베트남 전쟁은 드 팔마의 영화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다.

<필사의 추적>

허장성세로 덤벼드는 토니와 칼리토가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의 악행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은 왜일까. 드 팔마 영화에서 파국이 모두 정리되고도 우리가 안심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마지막에도 불쑥 지하에서 손을 뻗어오는 캐리의 엄마와 면도날을 휘두르는 성도착자의 악몽이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필사의 추적>에서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라. 샐리(낸시 앨런)가 죽을 때 울리는 자유의 종과 격렬한 불꽃놀이는 무엇인가. 잭 테리(존 트래볼타)가 절망적인 자책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싸구려 호러영화의 한순간을 위해 샐리의 마지막 죽음의 비명을 넣는 것이 전부다. “우리 문화권에 대한 절망감을 이보다 더 강력하게 끌어내는 영화는 달리 없었던 것 같다”는 로빈 우드의 말은 드 팔마의 영화를 읽을 때마다 되새김질할 만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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