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브라이언 드 팔마와 <팜므 파탈> [2] - 드 팔마에 관한 5가지 키워드 (2)
2004-11-23
글 : 이종도

3. 그는 과연 여성혐오자인가

<필사의 추적>
왜 드 팔마는 어머니의 거세를 더 두려워하는가

드 팔마의 두려움은 그러나, 정치적 절망감이 아니라 거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그것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로부터? <필사의 추적>에서 잭 테리를 보라. 그는 샐리에게 전혀 성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마 숲의 바람소리를 채집하려는 잭 테리의 마이크는 그가(또는 드 팔마가) 지키고자 하는 상징적인 남근일지도 모른다(이 마이크는 아마 아버지의 부정을 기록하기 위해 소년 드 팔마가 필요했었을 그런 마이크가 아니었을까. 어린 드 팔마는 녹음장비를 들고 며칠을 아빠의 부정의 흔적을 녹음하기 위해 쫓아다녔다).

드 팔마의 영화는 이처럼 남성 캐릭터의 남근성을 지키고 ‘남성’이 되려는 여성을 징벌하는 데 애를 쓰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도 있다. 라이언과 켈너는 <카메라 폴리티카>에서 드 팔마의 작품에서 여성은 일반적으로 섹시한 백치나 못난 희생자, 아니면 위협적인 마녀로 재현된다고 지적한다.

<스네이크 아이즈>

그러나 드 팔마는 이런 진단을 거부한다. “어두운 집 안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보다 네글리제 차림의 여자가 돌아다니는 게 더 좋다”(살롱닷컴과의 인터뷰)는 건 농담일지 모른다. <팜므 파탈>에 대해 드 팔마는 “나는 정치적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이 나를 분노하게 하기 때문이다”(<필름 코멘트>)라고 말했다. 사실 캐리 리키 같은 이의 지적처럼 “여자들이 소름끼치게 희생되기는 하지만 남자들보다 더 고통을 받는 적은 한번도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드 팔마의 남성 주인공은 삼류배우(<침실의 표적>), 연약하고 늙은 신병(<전쟁의 사상자들>), 삼류영화 오디오맨(<필사의 추적>), 신경질적인 고등학생(<드레스드 투 킬>), 깡패 푼돈이나 뺏는 형사(<스네이크 아이즈>), 파파라치(<팜므 파탈>) 등으로 충분히 사회에서 고통받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여성을 구하지 못하면서 더욱 고통받는다. <스네이크 아이즈>와 <팜므 파탈>에서 보듯, 여성에 대한 처벌은 이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페미니즘의 성장이 그를 두렵게 하는 걸까.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드 팔마는 여성의 지위 변화가 그로 하여금 고통받는 여성이라는 낡은 클리셰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실토한 바 있다. <카이에 뒤 시네마>가 <미션 투 마스>에 대해 표현한 “그의 유일한 주제는, 여성이다. 또는 어떻게 한 남자가 우주의 끝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여자를 다시 발견하는가이다”라는 구절이 농담은 아닐 것이다.

4. 그는 어째서 상반된 평가를 받는가

<드레스드 투 킬>
왜 프랑스는 그를 높이 평가하며 미 평단은 왜 그를 낮춰보는가

드 팔마의 스릴러와 공포영화는 매우 독창적으로 현대의 악몽을 재현한다. 그는 일상과 가정에 숨어든 악몽을 최대치까지 이끌어낸다. 그가 택한 흉기와 흉기를 다루는 방식을 보라. <캐리>에서는 부엌칼이 날아다니며 <드레스드 투 킬>에선 면도칼이 흉기로 쓰인다.

그가 재현하는 공포의 방식도 개성적이다. <스카페이스>에선 사람의 팔과 두개골을 전기톱으로 자르지만 직접 그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 톱 돌아가는 소리와 튀기는 핏물로 신경을 자극한다. <침실의 표적>에서 드릴로 배를 공격하기 전에 한번 플러그가 빠지면서 공포는 더 확장된다.

<스카페이스>

이런 시각적 충격은, 비록 냉소적 방식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보수적 가치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린다. 재평가되고 있는 드 팔마의 ‘서인도제도판 대부’인 <스카페이스>와 <칼리토>는 현란한 수사학(카메라 세 대로 온통 통유리로 내부를 뒤덮은 나이트클럽 내부의 총격전을 훑는 <스카페이스>를 보라)으로 참담한 파국을 그려낸다. 수사학과 정치학이 서로를 향해 스며드는 방식은 미국의 환부를 날카롭게 잡아내고 있다.

<칼리토>

왜 이러한 영화적 유산들이 미국에서는 냉대를, 유럽에서는 환대를 받고 있을까. “유럽에서 잘되는 것은 내 영화들이 대화 위주가 아니라 시각적이어서다. 자막이 별 달리 필요가 없다. 미국도 아주 충직한 숭배자들이 있다. 내 첫 성공은 <그리팅>이었는데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유일한 대형 국제영화제 수상작이었다.” 동시대 작가인 코폴라나 스코시즈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그는 드 팔마 웹사이트를 찾는 네티즌들에게 보상을 받는다.

5. 그는 왜 피와 구멍에 집착하는가

<시스터즈>
왜 그의 영화는 핏물이 흥건하고 성적 환상이 가득할까

정형외과 의사인 드 팔마의 아버지는 아들로 하여금 수술장면을 구경할 수 있게 했다. “아버지가 사람의 몸을 열고 절단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 피를 많이 봐도 잘 참아낼 수 있는 것 같다.” 핏덩이와 혈액과 시체는 어린 소년의 꿈과 현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드 팔마는 삼형제 가운데 막내였다. 어머니는 팔마의 형들만 아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는 젊은 여자만 쫓아다녔다. 가정에 홀로 던져진 그가 할 수 있는 건 과학과 기술 그리고 컴퓨터의 세계였다. 드 팔마는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을 컴퓨터디자인과 과학경시전 참가로 보냈다. 전국과학경시대회에서 2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외로운 어린 시절은 <드레스드 투 킬>에서 앤지 디킨슨의 아들 키스 고든의 연기에서 엿볼 수 있다.

이 고등학생의 판타지는 옷을 갈아입는 여학생의 탈의실 내부를 훔쳐보는 것이었을까. 그게 바로 필터를 입히고 몸을 핥듯이 지나가는 <캐리> 도입부의 카메라로 실현되었던 것일까. 드 팔마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런 가설을 한번쯤 믿고 싶어진다.

<캐리>

그의 비평적 출세작인 <시스터즈>와 대중적 출세작인 <캐리>는 쌍둥이다. 그것도 몸이 붙어 있는 샴쌍둥이다. <시스터즈>가 더 복잡하고 음습한 그의 필모그래피의 축약이라면, <캐리>는 금발머리의 시체로 핏물이 흥건한 그의 대중적 공포영화의 축도다. <팜므 파탈>은 이 원류에서 헤모글로빈을 덜어내고 성적 환상을 더했다.

초기작 <그리팅>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여자의 옷을 하나둘 벗기며 사진을 찍던 카메라는 장구한 세월을 지나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건네졌다. 영화 자체가 훔쳐보기의 형식임을 늘 의식하는 이 달변의 수사학자는 여전히 하이테크와 미디어에 관해 우리를 놀라게 할 목록들을 숨기고 있다.

드 팔마 최고 작품은?

드 팔마 감독과 <필사의 추적> 주연배우들. 존 트라볼타가 주인공 잭역으로 열연했다.
네티즌과 타란티노는 <필사의 추적>을 최고로 꼽아

2002년 초, 파리 퐁피두 미술관에서 열린 브라이언 드 팔마 회고전에서 드 팔마는 왜 <필사의 추적>(Blow Out)을 개막작으로 골랐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의 영화 중 베스트로 <필사의 추적>이 뽑힌 걸 봤노라고 답했다. 이 사이트의 이름은 브라이언 드 팔마 홈페이지와 연결된 사이트인 ‘브라이언 드 팔마의 천국’(le paradis de Brian de Palma)이었다. 드 팔마의 팬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현대식 드팔마’는 아마도 드 팔마가 프랑스로 비평적 ‘망명’을 했을지는 몰라도 인터넷의 전세계 팬들이 드 팔마를 어느 때보다 더 보편적인 작가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천국’에서 2002년 11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총점 22.60(만점 25점)을 받은 <필사의 추적>이 1위다. <드레스드 투 킬> <캐리>가 뒤를 이었고 <칼리토>와 <팜므 파탈>이 4, 5위를 차지했다. 직전 조사에서도 <필사의 추적>이 1위였다. 졸작으로 평가받는 <전쟁의 사상자들>이 의외로 6위에 올라 있다. <스카페이스>(7위)나 <시스터즈>(11위)보다 인기가 높다. <미션 임파서블>과 <스네이크 아이즈> <미션 투 마스>가 하위권인 15∼17위를 기록했고 <허영의 불꽃>은 최하위권인 21위다. 드 팔마의 팬들이 좋아하는 영화로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히치콕의 <현기증>이 1위로 손꼽혔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추종자이며 <캐리>의 존 트래볼타를 눈여겨본 뒤 <펄프 픽션>에 쓰기도 했던 쿠엔틴 타란티노도 <필사의 추적> 예찬자다. “가장 위대한 세편의 영화는 <리오 브라보> <택시 드라이버> <필사의 추적>이다.” (타란티노와 드 팔마의 인터뷰 가운데서)

<뉴욕타임스>의 리처드 제임슨처럼 <천국의 유령>을 꼽는 이도 있고 <가디언>의 앤드루 풀버나 정성일처럼 <칼리토>를 걸작으로 꼽는 이도 적지 않다. 로저 에버트는 <스카페이스>와 더불어 <팜므 파탈>을 최고작으로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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