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하나의 시스템에 머물지 않는 감독이다”
이 인터뷰는 2003년 7월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씨네21>은 <팜므 파탈>이 곧 개봉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1년도 넘은 지금에 와서야 영화는 개봉했고, 더불어 브라이언 드 팔마와 주고받았던 이 인터뷰도 무슨 밀서나 되는 듯이 이제야 봉함을 열었다. 여기에는 그의 장르에 대한 생각과 히치콕에 대한 애증과 영화의 구조에 관한 접근로와 그를 둘러싼 영화 바깥의 이야기들까지 있다. 그의 영화가 창고에서 잠을 자는 동안 같이 동면에 들어갔던 이 인터뷰를 늦게라도 깨우게 되어 반가울 따름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팜므 파탈>에 관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성실한 대답이 실려 있는 인터뷰라는 사실이다.
-<팜므파탈>은 최근 당신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예를 들어, <스네이크 아이> <미션 임파서블>) 특정한 형식의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한다. 마치 장편 안에 단편이 있는 듯한, 또는 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작은 이야기를 먼저 보여주는 식. 이런 오프닝 시퀀스로 영화를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형식이 갖고 있는 기능과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에서 오프닝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떠다니는 헬리콥터나 질주하는 자동차를 비추고 따라가면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관객을 자신의 영화 세계로 안내할 때에는 독특하면서도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영화의 오프닝의 공간과 사람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한다. <팜므파탈>은 고전적인 누아르 필름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이는 그 영화 전체가 일종의 필름누아르 꿈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당신의 영화를 말할 때 더이상 히치콕을 빗대어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동감한다. 그러나, <팜므파탈>에는 이런 상상이 엿보인다. 말하자면, ‘<현기증>의 마들렌/주디가 필름누아르의 로르/릴리로 바뀌어 있는 것 같은 구조’. 무엇보다 필름누아르의 팜므파탈이 치명적인 이유는 그 유혹의 주체가 ‘그녀’ 단 한명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팜므파탈>에는 그 역할이 두 인격체로 나뉘어져 있다. 이것이 필름누아르 영화들과 히치콕으로부터 시작한 당신 영화의 차이가 아닐까? 이 점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나는 <팜므파탈>과 <현기증> 사이에는 별로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히치콕의 <현기증>은 영화사적인 관점에서 매우 영향력 있고 중요한 영화로 자신의 로맨틱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한 남자를 다루고 있다. 반면에 <팜므파탈>은 계속 쫓김을 당하던 여자가 피신 중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둘은 전혀 다른 아이디어로부터 출발됐고 비슷한 점이 있다면 모두 금발이라는 것 정도 아닐까? 사람들은 히치콕과 나와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팜므파탈>보다는 오히려 <씨스터즈>나 <강박관념> 또는 <침실의 표적>처럼 <현기증>에 나오는 사이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팜므파탈>은 추리를 요구하기보다 어떤 철학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의 중요한 요소, 즉, 데자뷰, 공간, 시간에 대해 당신이 설정한 개념을 들려달라. 그 세 가지 요소를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당신이 가장 고심한 것은 어떤 부분인가.
=<팜므파탈>의 많은 부분은 꿈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번의 욕실장면으로 전개되는 이 꿈만으로도 관객은 충분히 영화를 어렵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 대해 평론가의 반 이상은 꿈 이야기 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았었다. 영화를 더 모호하고 어렵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에 여러 가지 요소들을 쓰고 설정을 했지만, 그것들을 논리적으로 맞추기보다는 그것들을 이용해 꿈의 형태 안에서 필름누아르를 표현하는 데 더 많은 초점을 두었다.
-<팜므파탈>을 보고나서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연계하여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팜므파탈>을 연결짓는 이유가 무엇일 것 같나.
=그 이유는 두 영화가 많은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꿈 시퀀스를 이용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대부분은 실제 꿈이지만, <팜므파탈> 의 꿈은 여주인공이 욕실에서 잠들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의 꿈적인 요소는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어서 퍼즐을 맞추듯 영화 곳곳의 꿈들을 맞춰나가야 한다면, <팜므파탈>의 꿈적인 요소는 영화의 한 부분에만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시계들이 항상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꿈일 거라는 것을 알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관객에게 미리 일러주는 것과 동시에) 앞뒤를 맞춘다는 논리적 의미에서였는가, 아니면 영화적으로 말하고 싶은 좀더 큰 다른 생각이 있었는가.
=꿈꾸는 사람은, 꿈속에서 시간이 더이상 흐르지 않기를 원한다. 욕조에서 바라본 시계가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나, 꿈속에서 보이는 그 이외의 다른 여러 상징적인 표시들은 관객에게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꿈에서는 여러 이미지들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속에서의 꿈 또한 그러하다. 나는 사람이 꿈을 꿀 때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을 표현하고 싶었고, 꿈이라는 것은 대개 유혹적이고 자극적이면서도 혼란스럽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은 프리츠 랑의 영화 <진열장 안의 여자>가 <팜므파탈>의 형식에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영화에서 진열장 안 여자는 박사의 대상이다. 하지만 <팜므파탈>에서 여인은 주체이다. 필름누아르 장르와 <팜므파탈>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그 둘은 많은 점에서 유사하지만 다르기도 하다. <진열장 안의 여자>에서의 주인공은 꿈을 꾸고 그 꿈이 실제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꿈에서의 상황이 실제와 전혀 연관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팜므파탈>에서의 로라는 꿈을 꾼 뒤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미래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이는 주인공이 매우 주체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이 점이 아마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한다.
-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니콜라스 바르도 역에 맞다고 생각했나? 그의 직업이 사진기자인 이유는 무엇인가.
=극중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일종의 예술가로, 마치 영화의 감독과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한 공간을 두고 큰 몽타주를 작성하면서 심미학적으로 그것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을 찾아간다. 영화 전체는 그 마지막 한 부분의 심미적인 부분을 완성시키겠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영화 속에서 계속 사진을 찍고, 그것들로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맞춘다. 영화에서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역할은 거의 조연급이고, 그의 예술적 역량을 감안한다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역할일 수 있었는데도 그는 기꺼이 나와 함께 작업에 응했고 잘 따라준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