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메리칸필름마켓(AFM) 탐방기 [1]
2004-11-24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11월로 개최일정 바꾸며 역대 최대규모로 열린 아메리칸필름마켓을 가다

11월3일에서 10일까지 LA 샌타모니카에서는 세계 3대 마켓 중 하나인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이 열렸다. 전세계의 영화업자들이 밀려드는 이곳에서 작은 할리우드의 모습과 집약된 세계 영화 경제의 정글을 마주하게 된다. 현지에서 본 ‘한국영화의 실적’과 ‘한국 제작사의 할리우드 진출 사례’와 ‘아시아, 또는 한국영화 리메이크 붐에 대한 반응’을 전하는 동시에 그곳에서 활동하는 아시아인 프로듀서 2색 인터뷰를 덧붙인다.

프롤로그

25번째를 맞아 11월3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올 2월 열렸던 24회를 포함하여) AFM은 세계 3대 영화마켓 중 하나로 꼽힌다. 매년 2월 말에 열렸으며, 전세계 70개국 이상에서 7천명이 넘는 영화 비즈니스맨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매년 5월 말에 칸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칸 마켓, 11월에 열리던 밀라노견본시(이하 MIFED)가 나머지 두 행사다. 그러나 AFM은 올 2월에 개최했던 행사와 상관없이 11월에 다시 문을 열었고, 이 시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곧 같은 때에 열리는 MIFED 손님들의 발길을 돌려오겠다는 선전포고이다. 이미 10월로 당겨 치러졌던 MIFED에 다녀온 사람들은 “파리만 날렸다”는 말로 일축하여 그곳의 올해 참패를 묘사한다. 내년부터 베니스영화제와 연계하겠다는 계획이 힘없이 나돌긴 하지만 MIFED의 승산을 점치는 도박사들은 거의 없다.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이 열린 LA 샌타모니카의 로에스 호텔은 1층부터 8층까지 호텔 각 방마다 부스가 차려져 있고 수없이 많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두 마켓 사이에서 누가 바보가 되든 간에, 개인적으로 비즈니스 용무가 없는 사람이 이곳 AFM에서 길을 잃고 바보가 되는 것 또한 피차 기정사실이다. 들어갈 때마다 가방 검사를 받고, 엄청난 사람과 그만한 수의 언어들이 웅성대는 로비를 지나 호텔 내부로 향하면 1층부터 8층까지 호텔 각 방에는 부스들이 차려져 있다. 그러고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수없이 많은 계약서에 사인이 이뤄진다. 복도를 지나칠 때마다 배지를 보여주지 않고는 통행이 불가능하고, 몇 가지 종류가 있긴 해도, 스크리닝을 포함하여 행사 전일을 이용할 수 있는 배지 구입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여기는 놀러올 만한 곳이 못 된다. 친분과 돈이 교묘하게 공존하는 시장이며, 돈 없이는 비굴한 미소만 짓게 되기 쉬운 생존의 정글이다. 빈 주머니를 차고, 친절한 미소만 자주 짓는다고, 그 정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을 들여놓는 첫날 알게 됐다. 여기에 예술은 없으며, 영화는 곧 환산의 대상이다. 그 시장의 논리를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을 때쯤, 이번 AFM 탐방기의 성격을 신중히 다시 수정한다. AFM에서의 한국영화 생존 수치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한국 자본의 할리우드 진출 모색에 관한 어느 예와 AFM 개막 초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할리우드의 아시아영화 리메이크 붐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AFM의 정글에서 보고, 기록하고, 느끼고, 만난 사례들로 그 세 단면을 잡아본다.

AFM에서의 한국영화 생존 수치는? 감독 신뢰도 높은 편, 스타 시스템 일본에 편중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 <달콤한 인생>은 신뢰도를 지닌 감독과 이병헌이라는 스타의 힘에 힘입어 이번 AFM에서 320만달러라는 초유의 가격으로 일본에 팔렸다.

10여개 넘는 한국의 영화업체가 이번 AFM의 정글로 뛰어들었다. 올해 부산프로모션플랜(PPP)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만, 그 생존력은 상당하다. 몽골의 신화인 마두금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장선우 감독의 차기작 <천개의 고원>이 일본의 해피넷 픽처스로부터 100만달러 투자를 약속받았고, 미라맥스는 정용기 감독의 공포영화 <인형사>에 배급 및 리메이크 판권 가격으로 130만달러를 지불했다. 대체로 한국영화의 상품성은 “한국 감독들에 대해 신뢰도가 높다”는 이구동성의 지적으로 먼저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스타 시스템에 의한 상승효과가 상당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특히 일본에서 그렇다. 각국의 스타 시스템을 점검하는 글(<스크린 인터내셔널> 11월5일치 AFM 데일리)에서 달시 파켓은 한국의 스타 시스템이 아시아 내의 세일즈를 상승시키는 현상을 풀이하면서, “일본에 영화 판매가를 높일 수 있는 이름”으로 배용준, 이병헌, 원빈, 전지현 등을 거론했다.

이번 AFM에서 두 가지 모두, 즉 신뢰도를 지닌 감독과 인기있는 스타를 동시에 갖춘 ‘상품’ 중 하나가 이병헌이 출연하는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 <달콤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CJ엔터테인먼트가 해외 세일즈한 <달콤한 인생>은 이를 증명하듯이 320만달러라는 초유의 가격으로 일본에 팔렸고, 가도카와 픽처스의 계열사인 닛폰 헤럴드가 극장 배급하고, <후지TV>의 계열사인 포니캐년이 DVD와 VHS쪽을 맡는 형태로 진행된다. 올 부산에서 이재한 감독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일본에 270만달러에 팔린 걸 경신하는 기록이다. 이 정도 되고 보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몇 백만달러 주고 팔았다는 게 무슨 기삿거리나 되겠냐? 그거 쓰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취재하러 온 거냐”고 의아해하며 묻는 사람들의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이제 다른 곳을 둘러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