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메리칸필름마켓(AFM) 탐방기 [4]
2004-11-24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조이럭 클럽>의 프로듀서, 재닛 양 인터뷰

“할리우드엔 아이디어가 너무 없다”

그녀는 목이 쉬어 있었다. 속삭여도 되겠냐고 부탁했다. 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갔다. 1980년대 중국에서 넘어온 이후, 1990년대 도저히 할리우드의 사고로는 만들 수 없었다던 중국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 <조이럭 클럽>으로 이름을 알렸던 재닛 양. 질문 하나에도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화답하는 그녀에게서 저널을 상대하는 능변의 기술을 갖춘 프로듀서의 일면을 엿본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열정의 기원’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한다.

-2002년, <하이 크라임> 이후 아직까지 프로듀싱한 작품이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스튜디오가 제작편수는 줄이고, 편당 제작비는 늘려서, 쉽게 흥행을 예상할 수 있는 공식을 따르는 영화들 위주로 가다보니 인디영화들은 반대로 예산이 점점 더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80년대 중국에서 할리우드로 온 이후, 처음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아시아적인 배우나 내용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원래 내가 갖고 있던 열정과 영화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걸 느꼈고, 그 원래 열정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방향을 고민 중이다.

-현재 준비 중인 작품들은.

=한국, 중국, 일본, 타이를 배경으로 한 각각의 작품들이 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헨리 리의 <태양의 부재시>(IN THE ABSENCE OF THE SUN)라는 실화책을 기반으로 한 영화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와서 한국으로 넘어간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은 <크로싱>(이명세 감독이 지난해 PPP에 들고 왔던 작품)이다. 또 중국이 배경인 다른 영화는 시나리오를 준비 중인데, 이것 역시 실화다. 1930년대 중국으로 건너가 마오쩌둥의 개인 의사가 된 미국 의사에 관한 이야기다.

-할리우드에서 주요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첫 번째 작품을 <조이럭 클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작품이야말로 당신이 말한 본래적인 열정과도 연관이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미국에 살면서 중국 이민자로서의 느낌을 이 책에서 고스란히 느꼈다. 뉴욕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프로듀서인 캐시 케네디라는 사람하고 책 관련 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한 챕터씩 소개를 받게 됐다. 각본을 들고 여러 영화사를 돌아다녔지만, 예상대로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디즈니가 하자고 했을 때는 사실 좀 놀랐다. 일을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마지막에 마케팅하면서 포스터 때문에 갈등이 있었다. 아시아인 주인공들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나무로 깎은 도장 디자인이나 거울에 비친 여자들의 뒷모습 같은 것으로 도배하려고 했다. 마케팅팀에서는 아시아인이 전면에 등장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결국 수정하긴 했지만….

<조이럭 클럽>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작품은 <래리 플린트>인 것 같다.

=<래리 플린트>의 아이디어는 올리버 스톤과 일할 때 시작된 것이다. 원래 올리버 스톤이 구두로 이야기하면 반응을 잘 안 하는 편이라, 트리트먼트로 만들어줬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래리 플린트 역을 빌 머레이와 우디 해럴슨 모두에게 보냈는데 우디 해럴슨이 곧바로 연락해서 출연하게 됐다. 힘들었던 건 코트니 러브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코트니 러브가 워낙 마약 중독이 심해서 어떤 보험회사도 그녀의 마약 보험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보험에 들기 위해서는 100만달러라는 돈을 미리 내야 했다. 회의 끝에 감독과 올리버 스톤, 나를 포함한 프로듀서들이 아무 문제가 없을 경우 콜럼비아에서 되돌려받는다는 조건으로 급료에서 떼어 보험회사에 내주었다. 쫓아다니며 소변검사를 받아왔고, 심지어 보험회사에서는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이 따로 고용되어 현장에 오기도 했었다.

-<웨이트 오브 워터> <하이 크라임>에서의 작업은 어땠는가.

=나는 작품을 정하는 데 원칙이 있다. 실화 바탕인 경우가 많고, 책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내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전략이 무언가를 항상 생각한다. 나는 여성이면서, 아시아인이다. 때문에 여성이 주인공인 이런 스토리들을 작품으로 정하게 된다. <웨이트 오브 워터>는 원래 숀 펜의 부인인, 로빈 펜을 염두에 뒀었다. 혹 숀 펜에게도 관심을 끌면 로빈 펜을 캐스팅하기 좀더 쉽지 않을까 해서 숀 펜에게도 보낸 건데 오히려 숀 펜만 출연의사를 밝혀왔다. <하이 크라임>의 경우에는 여자주인공이 가족과 직업 사이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영화를 리메이크하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할리우드에 너무 아이디어가 없다. 이미 한번씩 다 만들어낸 느낌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건 전이단계다.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 그대로 미국 관객에게 보여지는 과정의 전초전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게 있나.

=한국영화가 있다. 하지만, 지금 준비 중이기 때문에 미신 같지만 부정탈까봐 말 못하겠다. 그냥 아주 유명한 한국 감독의 덜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는 정도만 말해두자.

통역 남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