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판타지 대륙, 그곳에 가고 싶다 [4]
2004-11-25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내 방이 쑥쑥 자라더니 세상이 되었어요

<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샌닥 글·그림 l 강무홍 옮김 l 시공주니어 펴냄

모리스 샌닥은 책장과 책장 사이에 보이지 않는 페이지 수십장을 숨겨놓은 것 같은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작가다. “하루가 지나고 한달, 두달, 석달이 지났어. 맥스는 꼬박 일년쯤 항해한 끝에 괴물 나라에 도착했지.” 이 짧은 글 옆에는 그림 한장. 그러나 잠깐 멈추어 서면 일년이라는 시간이 밀려오는 듯, 혹은 맥스가 타고 넘은 파도가 다가오는 듯, 무한의 여백을 발견할 수 있다. 신경질적일 정도로 촘촘한 펜선을 사용하면서도 꿈처럼 나른한 분위기를 만드는 샌닥은 20세기 최고의 그림책 작가 중 한명이다.

내년에 촬영을 시작할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깊은 밤 부엌에서>와 함께 샌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고, 그의 최고 걸작이기도 하다. 늑대 옷을 입고 장난치던 맥스는 저녁도 못 먹고 방에 갇힌다. 그날 밤, 맥스의 방에선 풀과 나무가 자라고, 바다가 솟아나, 마침내 세상 전체가 된다. 맥스는 맥스호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한다.

마음만 먹으면 스무 단어만으로도 쓸 수 있을 이 이야기는 맥스의 방이 숲이 되어가면서 조금씩 커지는 그림 덕분에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생명을 얻는다. 샌닥은 애니메이션의 오페라와도 같은 <환타지아>를 보고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그림책 또한 이와 비슷하다. 프레임 안에 또 다른 프레임이 있는 비좁은 현실과 프레임을 뚫고 뛰쳐나오는 하룻밤 꿈속의 판타지. 샌닥은 그림으로 글을 설명하려 했던 동시대 작가들과 달리 그림이 홀로 설 수 있는 창작물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존 말코비치 되기>의 스파이크 존즈. 네티즌들은 왜 팀 버튼이 아닌가, 라면서 의문을 표하기도 했지만, 수많은 말코비치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기대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을 영화와 오페라 등 다른 매체로 표현하는 데 흥미를 느껴온 모리스 샌닥 자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톰 행크스도 프로듀서 중 하나다.

변신 악당 올라프 백작과 세 남매의 대결

<위험한 대결>레모니 스니캣 지음 l 한지희 옮김 l 강민희 그림 l 문학동네 펴냄

“만약 당신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살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펴들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밀에 싸인 작가 레모니 스니캣은 이처럼 정떨어지는 문장으로 <위험한 대결> 시리즈를 시작한다. 해피엔딩은 없다, 안됐지만 이 책은 그렇다, 고. 그러나 해피엔딩을 보는 것보단 <위험한 대결> 시리즈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1970년생, 본명은 다니엘 핸들러, 첫 번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중. 이것이 알려진 거의 전부인 레모니 스니캣은 아이들에게 찰나의 행복만을 허용하면서 끝없이 험한 세상으로 등을 떠밀지만, 어차피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이 시리즈는 시작부터 불행하다. 착하고 영리한 세 남매 바이올렛과 클로스, 서니 보들레어는 집에 불이 나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낸 유일한 친척은 올라프 백작. 그는 보들레어 남매가 물려받을 유산을 가로채고 싶어할 뿐이다. 연극을 꾸며 바이올렛과 결혼하려다 실패한 올라프 백작은 배우라는 장점을 이용해서 변장을 해가며 몽티 삼촌 집에서 조세핀 숙모 집으로 옮겨다니는 남매 뒤를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캐스퍼> <시티 오브 엔젤>의 브래드 실버링이 연출하는 <레모니 스니캣: 위험한 대결>은 <눈동자의 집> <파충류의 방> <눈물샘 호수의 비밀> 세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각색했다. 보들레어 남매는 부모가 죽고 몽티 삼촌이 살해되는 불행을 동시에 겪게 된 것. 그 대신 주드 로가 내레이터를 맡고, 메릴 스트립과 캐서린 오하라, 루이스 구스만, 제니퍼 쿨리지 등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화려한 캐스팅을 준비했다. 시리즈의 핵심 악당인 올라프 백작은 짐 캐리가 연기한다. 올라프 백작은 남매가 알아보지 못하도록 계속 모습을 바꾸는데, 짐 캐리가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신축성을 가진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레모니 스니캣: 위험한 대결>은 내년 1월 한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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