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주먹이 운다>·<달콤한 인생> 현장 방문기 [5]
2004-12-15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김지운의 호흡법-필이 꽂히는 명확한 컨셉 전달

<달콤한 인생>의 촬영현장은 치밀하고, 계속 논의를 해가며 진행된다.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한컷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기 위해 무한의 열정과 노력이 가해진다. “<달콤한 인생>은 선우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점점 강도가 세어진다. 폭력적이 되고,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간다. 거기에 따라서 어두운 공간, 빛의 디테일, 강도도 높아진다. 그 느낌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이미 전작들에서 확인되었다. 내러티브가 혼란스러웠던 <장화, 홍련>에서도, 소녀의 후회, 분노 등 모든 감정이 어떻게 회오리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주 강렬하게. “내러티브만이 아니라 이미지, 텍스처, 표정, 뉘앙스 등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 영화는 명확한, 강철 같은 내러티브가 있어서 어떻게 만들어도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구조 안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매치되어서 내러티브로 전달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어떤 장면에서 음악의 삽입이나 편집의 미묘함 같은 것들에 의해서 주제가 선명해지고 한다. 생각해보면 진정성을 전달하려고 할 때 누구나 자기만의 호흡법이 있다. 그것이 어떤 호흡법인가에 의해 주제가 전달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아프다. 너희들도 아프지 않냐, 라고 묻는데 그걸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 결국 주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선명하다. 내러티브가 혼란스러울지라도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의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 하나는, 대중에게 명확한 컨셉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소심한 은행원이 밤에는 반칙왕 프로레슬러로 변신한다. 이 문장 하나로 <반칙왕>이 어떤 영화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작품성은 그 컨셉을 어떻게 표현했는가에 의해 결정되겠지만, 관객은 그 문장 하나로 극장에 간다. 내러티브보다 이미지와 뉘앙스에 몰두하는 김지운의 영화가 대단히 대중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다. “필이 꽂히는 것. 뭔가 있는 것 같다, 란 생각이 들면 거기로 가고 그걸 표현하려 하는데, 마지막에 가면 결국 다시 처음에 필이 꽂힌 그것으로 돌아간다.” 김지운은 명확한 컨셉을, 자신만의 독특한 말투로 전달한다. <조용한 가족>에서 <장화, 홍련>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연극에서 영화로 넘어온 김지운의 영화적 문체가 더욱 깊어지고, 세련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아마도 <달콤한 인생>은 그 정점이 될 것이다.

한 선택의 가혹한 대가, 삶은 부조리하다

필름누아르라는 장르는, 지독한 현실의 은유다. 세계대전의 상처가 안겨준 패배주의와 비관주의. 그것은 21세기에 이르러, 인간의 본질적인 불가능성에 대한 천착으로 더욱 깊어진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나 <인썸니아>의 남자들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 채 부재로 돌아가거나 원시의 공간에 남아야만 한다. 이 도시 안에서, 문명의 한가운데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 결핍, 부재의 공간은 김지운의 영화가 일관되게 보여준 것이었다. ‘조용한 가족’은 결코 정적을 찾지 못하고, ‘반칙왕’은 결코 이 사회의 챔피언이 되지 못한다. 또 하나의 현실 속에서, 아무리 계모를 미워한들 소녀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심오한 미로 속에서도, 그들은 어디론가 나아간다. 그게 김지운의 필모그래피였다.

<달콤한 인생>의 선우는, 아직 달콤한 인생을 맛본 것이 아니다. 그냥 잠깐 맛을 본 것 혹은 꿈을 꾼 것뿐이다. <펄프 픽션>의 존 트래볼타처럼, 선우는 보스의 여자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존 트래볼타는 춤을 추고, 유혹을 견뎌내고, 목숨을 살려내면서 훌륭하게 보스의 심복으로 남는다. 그래봤자 브루스 윌리스에게 개죽음을 당하기는 하지만. 보스의 애인인 희수가, 한 남자와 만나는 것을 포착한 선우는 그러나, 잠시 흔들린다. 그리고 놓아준다. 그게 모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하면서. 희수와 남자는 살고, 보스는 희수의 정절에 기뻐하고, 선우도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보스의 신임을 얻는다. 누구의 손해도 없다. 하지만 그 선의의 선택이, 그를 참혹한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런데, 그건 선택이 아닌 것 같다. 김지운은 도덕적 선택과 인상적 선택을 말한다. “주로 인상적 선택에 좌우되는데, 거기에는 늘 대가가 뒤따른다. 거기에 따른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하지만 도대체 인상적 선택이란 무엇일까. “내가 그동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부조리함이란 것이다. 삶의 아이러니, 불가항력과 불가능성 같은 것들. 그런 점에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의 선택이란, 어쩌면 운명이다. 선우는 냉정하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결핍된 그 무엇이 그를 이끌어간다.

여기서 김지운은 슬라보예 지젝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인간은 보는 것을 언어로 규정한다. 그러나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대체가 필요하다. 이미지나 미신 같은 것들. 인간은 그런 대체물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낸다. <타이타닉>의 핵심은 상류계급의 여자와 가난한 남자의 사랑에 있지 않다.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관객은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뛰어넘는 거대한 비극이 필요하다. 선우 역시 달콤한 인생의 꿈을 꾸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더 큰 비극을 끌어안는다. 불을 지르는 것이다. 그냥 그 결핍을, 불가능성을 안고 가기가 고통스러워서 더 장렬하게, 더 큰 비극을 맞이하는 것이다.” 선우는 하나의 판타지를 보았고, 무의식적으로 인상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운명이다. 비극적 운명에 순응하여,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이다. 그게 비루한 삶을 던져버리는 남자들의 어리석음이다. 김지운은 늘 그런 불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왔고, 그 불완전성이 인간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감독이다.

심오한 이야기 같지만, 김지운은 진지함의 무게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감독이다. 이거 진지해, 라고 무게잡고 이야기하느니, 농담처럼 픽 공중에 던져버리고 자기 할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칙칙하게 할 생각은 없다. 필름누아르라는 장르의 즐거움, 영화 하나를 보는 즐거움을 충분하게 줄 것이다. 촌스럽지 않게, 아주 진정성 있게 안 들리게.” <달콤한 인생>에는 잔혹한 장면들이 꽤 많다.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손가락이 잘려나가기도 하고, 사방에 피가 흥건하다. 하지만 그런 묘사들 역시, ‘현실감보다는 영화적 즐거움’에 매진할 작정이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 부조리하다. 너무 잔혹하고, 너무 뒤죽박죽이고, 너무 우스꽝스럽다.

<달콤한 인생>은, 달콤함에 투항하기에는 무엇인가가 결핍된 남자의 이야기다. 그 불완전성을 자각하기에, 그는 달콤한 인생에 투신할 수 없다. 그냥 빠져들어, 그냥 묻혀버리기에 그는 너무 예민하고, 냉정하다. 그래서 그는 대가를 치르고, 개같이 비참하게 죽어간다. 하지만 그게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적인 길일 수도 있다. “인생에서 궁극에 도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로 가려고 뭔가 안간힘을 쓰면서 가다보면, 뭔가 눈빛이 달라지고, 그 사람의 느낌과 태도가 달라진다.” 그게 바로 달콤한 인생이고, 트루 로맨스이고, 게임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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