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탐색여행, 원정)
미야자키 작품들이 ‘탈일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일본적인 롤 플레잉 게임의 전형(주인공이 길을 떠나 한명한명 새로운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목적을 향해 여행하거나 모험을 겪는 것)이 드리워져 있다. 이것은 하나의 캐릭터에 집중하기보다는 공동체적인 주인공의 경험을 중시하는 미야자키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Retirement(은퇴)
미야자키 하야오는 <모노노케 히메>를 감독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 이야기했고, <센과 치히로…> 역시 미야자키의 은퇴작으로 홍보되었다. 이에 대해 방한한 스즈키 도시오 PD(사진)는 “미야자키 감독은 ‘대체 관객이 얼마나 와줄 것인가’ 하는 기분으로 매 작품이 개봉할 때마다 ‘은퇴할 작정’이라고 말하지만, 손님이 많이 들게 되면 그런 겸허한 기분은 다 사라지고 다시 열심히 다음 작품을 준비하게 된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Steam Punk(스팀 펑크)
스팀 펑크는 SF의 서브 장르로서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한 19세기를 무대로 하는 대체역사 장르다. 특히 스팀 펑크는 일본의 SF문학이나 게임시장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이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완벽하게 다른 방식의 사조와 문물을 받아들이며 발전하기 시작했던 ‘근대’라는 세계에 대한 향수를 크게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미야자키 영화들 역시 ‘증기기관’을 위주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20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울의…>에서는 이것이 ‘마법’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되지만, 거대한 연통으로 연기를 뿜으며 걸어다니는 하울의 성의 외양은 증기기관의 그것과 흡사하다.
Transformation(변신, 변태)
<하울의…>에서 주요인물들은 모두 신체의 변형을 겪는다. 하울의 마법사 견습생 마르클은 노인의 모습으로 시시각각 변신하고, 거대한 몸집의 황무지 마녀는 사랑스러운 보통의 노인으로 변하며, 하울은 미청년에서 괴조(怪鳥) 전쟁병기로 몸을 탈바꿈할 수 있는데다가 불의 악마 캘시퍼는 화염의 모습이지만 사실은 하울의 심장이기도 하다. 영화 속 소피의 모습은 18살 소녀와 90살 노파, 혹은 그 중간 나이의 모습으로 시시때때 다르게 화면에 보여진다(처음 등장했을 때의 소피의 모습과 머리를 자르고 난 뒤의 모습은 작화 자체가 조금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스즈키 도시오에 따르면 이는 “머리를 자름으로써 마침내 히로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야자키 영화에서 이러한 주인공들의 신체변형은 <붉은 돼지> 이후 보여지는 특징으로, 캐릭터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장치로 요긴하게 쓰인다.Utopia(유토피아)
<바람계곡의…>의 바람계곡, <천공의 성…>의 슬러그 계곡, <모노노케 히메>의 타타라 마을, 더 나아가서 <미래소년 코난>의 하이하바까지. 미야자키는 이상적인 공동체 부락을 일종의 유토피아로 제시한다. 그것들은 마치 중세유럽의 봉건사회와도 같은 순박한 서구적 이상향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같은 유토피아상은 전제국가 토르메키아(<바람계곡의…>), 강력한 군사정부(<천공의 성…>), 1인 독재국가 인더스트리아(<미래소년 코난>) 등의 파시즘적인 집단의 등장에 의해 더욱 순결한 것으로 힘을 얻는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같은 유토피아상이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일은 드물다. <하울의…>에서 제시되는,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낸 대안가족은 미야자키가 그려냈던 유토피아의 축소형이라 보아도 손색이 없다.
Villain(악당)
미야자키 영화에 진정한 악당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예외를 찾는다면 <천공의…>의 무스카 정도).
War fire(전화: 戰火))
미야자키 영화에서 불은 전화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바람계곡의…>에서 마을 사람들은 “불은 숲을 하루에 재로 만들지, 물과 바람은 100년에 걸쳐 그 숲을 키웠는데. 우리는 물과 바람이 더 좋아”라고 침략자 토르메키아인들에게 말한다. <하울의…>에서 불의 악마 캘시퍼가 가장 친근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것은 원작에서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던 캐릭터였기 때문. 그래서 미야자키는 캘시퍼의 입을 빌려 아이러니한 처지를 귀엽게 변명한다. “화약의 불은 싫어. 놈들은 예의가 없어!”
Xenophile(외국에의 동경)
한국 비평계는 미야자키 작품들이 ‘탈역사성’과 ‘서구(특히 유럽)에 대한 무조건적 동경’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이것은 미야자키 작품들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일 수 있다. 미야자키에게 역사라는 것은 부재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만이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울의…>의 전쟁장면은 분명히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은유적인 비판을 위해 삽입된 것으로 보이며,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르코 뮐러는 <하울의…>를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유일한 반전(反戰)영화’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하울의…>에 등장하는 유럽적인 배경은 사실 프랑스, 영국, 스위스, 동유럽을 철저히 뒤섞어서 창조해낸 완벽하게 무국적인 판타지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방적인 유럽에의 동경이 아니라 ‘판타지 문학 장르’의 애호가라면 누구나가 자연스레 지니게 되는 문화적 감수성의 표현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일본인이 보는 서양의 모습이다. 미야자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서양을 그린 것이고 그것은 실재와는 다르다.”(스즈키 도시오 PD)
Yen(엔-흥행수익)
현재 일본 역대 흥행순위 1위와 2위는 모두 미야자키의 작품들이다. <센과 치히로…>가 2400만명을 동원해 300억엔의 수익을 올렸고, <모노노케 히메>가 1430만명의 관객동원에 193억엔의 수익으로 2위에 올라 있다. 현재 <하울의…>는 12월5일까지 522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70억엔의 수익을 기록 중이며, 최종적으로는 <센과 치히로…>의 수익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Zeitgeist(시대정신)
미야자키는 파시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 <붉은 돼지>를 만들고 난 이후에는 “지금은 그저 정치를 좌우로 가르지 않는다. 다만 물질문명에 비판적이라는 진보적 경향은 남아 있다”고 술회한다. <붉은 돼지>의 엔딩송에 나오는 가사 “그날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이라고 아무도 말하진 않아. 지금도 똑같이 다 그리지 못한 꿈을 그리며 계속 달리고 있겠지, 어딘가에서…”는 과거 공산당 지지자였다가 현실 사회주의에 실망한 채 이상적인 사회주의에 대한 애정만을 간직하고 있는 미야자키의 개인적인 술회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같은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 은유는 가오나시의 돈을 거부하며 “난 받을 수 없어. 내게 정말 소중한 것은 이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센과 치히로…>의 대사처럼 여전히 미야자키의 기본적인 정서를 유지하고 있고, <붉은 돼지>의 포르코나 <하울의…>의 마법사 하울처럼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인물들에서도 나타난다. “미야자키 감독은 하울이라는 캐릭터를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다.”(스즈키 도시오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