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6개 키워드로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 [4]
2004-12-28
글 : 김도훈
국내에는 낯선,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지의 걸작들

첫 극장용 장편 감독작부터 7분짜리 뮤직비디오까지

1. <마녀배달부 키키>(魔女の宅急便, 1989)

마녀인 엄마와 인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키키는 13살이 되던 날 완전한 마녀가 되기 위해 바닷가 소도시로 수행을 떠난다. <마녀배달부 키키>는 마녀수련(우편배달부 일)에 돌입한 소녀 키키가 사춘기 소녀로서 당연히 겪을 만한 정체성 혼돈을 겪으면서 하나의 인간(마녀)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가쿠노 에이코의 원작동화를 애니메이션화한 <마녀배달부 키키>는 원래 젊은 지브리 스탭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지던 작품이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까지 맡아 완성하게 되었다(이때 작화감독으로 참여했던 곤도 가쓰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다시 작화감독을 맡으며 복귀한다). <이웃집 토토로>로 고조되어 있던 지브리의 흥행신화가 폭발하듯 시작된 첫 번째 박스오피스 성공작이었으며(총관객 246만명), 강하고 자립적인 소녀 주인공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의식은 이 작품을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로 만들었다. 국제영화제 수상 경력이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수입이 불가능하다는 국내 법규 때문에 DVD로도 출시되지 못한 미야자키의 숨겨진 걸작.

2. <온 유어 마크>(On Your Mark, 1995)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본 그룹 차게 앤드 아스카(Chage and Aska)를 위해 제작한 6분40초짜리 뮤직비디오. 사교집단을 기습한 두 경찰이 그곳에서 우상시되던 천사를 발견하게 되고, 정부에 의해 다시 갇히는 신세가 된 그녀를 두 사람이 구해내서 하늘로 날려보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평범한 스토리 라인을 살짝 벗어나 여러 겹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출이 일품이다. 이 짧은 뮤직비디오는 사실 가장 특이한 하야오의 작품이기도 한데, 일반적인 일본 SF만화의 무대나 메커닉을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미야자키는 <온 유어 마크>에서 (오시이 마모루나 오토모 가쓰히로가 살짝 떠오르는) 메커닉이나 미래도시를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귀를 기울이면>의 극장 개봉시 일종의 팬서비스로 동시공개되었다(사실 국내에서도 이 작품을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며, 각종 카페와 블로그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루팡 3세-카리오스트로의 성>(ルパン三世-カリオストロの城, 1979)

국내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으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번째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감독작’에 걸맞은 대접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작품이 본작이다. 몽키펀치의 인기만화 <루팡 3세>(1967)를 TV애니메이션 시리즈화하는 작업에 참가했던 미야자키는, 그때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신의 첫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다분히 성인용인 오리지널 만화를 지금처럼 밝은 분위기로 탈바꿈한 것에서도 미야자키의 손길이 느껴지며, 79년 작품이라고는 여간해서 여겨지지 않는 작화 퀄리티와 역동적인 액션연출은 이 작품을 수많은 극장판 <루팡 3세> 중에서도 여전히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게 만든다. 일본 개봉시에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재평가받았고, 무명의 미야자키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제작에 착수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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