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5 할리우드 빅 프로젝트 [1] - <배트맨 비긴즈>
2005-01-18
글 : 김혜리
FIRST LOOK! 2005 HOLLYWOOD


꿈의 공장은 쉼없이 돌아간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피터 잭슨의 <킹콩>, 팀 버튼의 새로운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SF액션 <우주전쟁>, 리들리 스콧의 로맨틱 서사 <킹덤 오브 헤븐>,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C. S. 루이스의 걸작 판타지소설을 원작으로 한 <나니아 연대기> 7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동화작가 그림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어드벤처 <그림형제>, <시카고>의 롭 마셜이 메가폰을 잡은 <게이샤의 추억>,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되는 <월레스와 그로밋>, 최고의 코믹북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랭크 밀러의 동명 원작을 100% 디지털의 흑백 누아르로 찍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신 시티>. 이상은 소재와 스토리와 상상력과 규모와 비주얼 등의 면면에서 당신을 넘어뜨리기로 작정한, 이름과 제목을 모아놓은 것만으로도 스펙터클이 느껴지는, 올해 할리우드의 빅 프로젝트들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작 뉴스는 이외에도 많았지만 자료와 지면 사정 등을 고려해 12편으로 압축했다. 각 작품에 지면을 할애하는 데 삼은 유일한 기준이 있다면, 글로만 옮기기 어려운 영화의 면면을 대신 말해줄 비주얼 자료가 얼마나 많이 공개되었느냐다. 아무리 담아도 부족하겠지만 이 정보들이, 두눈과 두귀로 확인하기 전까지 당신의 궁금증을 최소한이나마 충족시켜줄 수 있었으면 한다. 편집자

배트맨의 기원, 그 어두운 기억 속으로, <배트맨 비긴즈>

오명은 길고 흉터는 깊었다. 1995년 <배트맨 포에버>가 불러온 실망은 1997년 <배트맨 앤 로빈>의 낙담으로 이어졌고 그 여파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회생을 모색하는 동안 8년이 흘렀다. 시리즈의 최근작 <배트맨 앤 로빈>은 미국 내 흥행조차 고작 1억700만달러에 그쳐 가장 비대중적이라는 <배트맨2>에도 못 미쳤다(<배트맨> 시리즈의 최고 흥행작은, 스크린 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편이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배트맨 앤 로빈> 이후 여러 거장과 다양한 독립영화를 집요하게 맴도는 조지 클루니의 필모그래피도 혹시 3대 배트맨의 회한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속편이냐 프리퀄이냐를 놓고 오랜 시간 망설인 워너는 결국 코믹스 초기작 <배트맨: 영년>에 그려진 검은 영웅의 창세기로 돌아가기로 했다. 스튜디오가 선택한 연출자는- <배트맨> 프랜차이즈의 처지를 빗대기라도 하듯- 기억상실증과 불면의 명감독 크리스토퍼 놀란(<메멘토> <인썸니아>). 놀란이 완수해야 할 과제는 첫째가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과 완전하고도 냉랭하게 절연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팀 버튼의 <배트맨>과도 달라야 한다는 과제일 터다. 과연, 공개된 <배트맨 비긴즈>의 예고편은 슈퍼히어로영화가 아니라 호러나 스릴러의 일부처럼 보인다. 시나리오를 먼저 엿본 평자들도, “어둡다. 어둡기는 팀 버튼의 2편도 마찬가지였으나, <배트맨 비긴즈>는 본격적인 심리스릴러에 가까우며 모든 캐릭터가 잘 빚어진 성격극이다. 형사 존 맥클레인을 처음 만나 빠른 속도로 반한 <다이 하드>의 추억을 상기시킨다”라는 친절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펜과 잉크로 그려진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고 밝힌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 비긴즈>를 액션에 앞서 흡인력 강한 드라마부터 구축하는 영화로 만들려했다. 백만장자의 어린 아들 브루스는 부모가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모든 악에 대한 복수를 맹세한다. 세상에 악감정을 품고 쉽게 분노하는 청년으로 성장한 브루스(크리스천 베일)는 동방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스승 헨리 듀카드(리암 니슨)는, 브루스가 악명 높은 라스 알굴(와타나베 겐)이 이끄는 위험스럽지만 긍지 높은 자객단 ‘그림자단’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수련시킨다. 그러나 입단을 거부한 브루스는 조직 범죄로 썩어들어가는 고담시로 귀환한다. 마피아 돈 팔코네(톰 윌킨슨), 마약 딜러 조너선 크레인(일명 허수아비/실리안 머피)이 초보 영웅의 적수다. 악역을 햄버거에 딸려나오는 장난감처럼 만들어버린 <배트맨 앤 로빈>의 오류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배트맨 비긴즈>의 야심. 라스 알굴은 지성 외에 달리 초인적 힘은 없는 인물로서 신념에 의거하는 악당으로 그려질 예정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텍사스 출신 르네 젤위거의 캐스팅으로 영국 미디어의 호들갑을 불렀듯, 다섯 번째 <배트맨>은 영국 인력이 만드는 미국의 영웅 신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런던 출신의 놀란이 연출하는 것은 물론, 웨일스 태생의 크리스천 베일이 청년 배트맨으로 낙점됐고, 배트맨의 조력자 고든 형사 역의 게리 올드먼, 집사 알프레드로 분하는 마이클 케인, <스타워즈>에 이어 영웅의 교육을 맡은 리암 니슨, 죽은 브루스의 아버지 역의 라이너스 로치까지 모두 영국계이기 때문이다. 웨인가의 친구 루시어스 폭스 역의 모건 프리먼, 브루스의 첫사랑으로 분한 케이티 홈즈 정도가 미국 배우들이다. 주요 촬영지도 런던 북부 카딩턴의 공군기지와 잉글랜드 시골에 세운 고담시 오픈세트다. 고담의 모델은 홍콩의 슬럼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트모빌과 배트맨 의상도 서서히 베일을 벗는 중. 둔버기(차체에 비해 큰 바퀴를 장착한 차) 형태의 배트모빌은 리얼리티에 충실한 슈퍼히어로의 자가용답다는 평판을 듣고 있고, 배트맨 복장의 원형을 제시할 의상은 가면의 귀가 짧고 검정 일색이던 전편들의 옷과 달리 목 둘레에 회색이 보인다.

또 다른 이름의 ‘아메리칸 사이코’를 연기한 크리스천 베일은 체중의 1/3을 감량한 <머시니스트> 촬영을 마치자마자 근육을 요구하는 <배트맨 비긴즈>의 스크린 테스트에 돌입해 슈퍼히어로의 시련을 톡톡히 치러냈다. “둘 다 몸 만들기를 했지만 <아메리칸 사이코>의 육체는 허영의 몸, <배트맨 비긴즈>의 몸은 액션의 몸”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보상이 있다면 배역의 무게. <배트맨 비긴즈>의 배트맨은 역사상 가장 젊은 배트맨일 뿐 아니라 총천연색 악당에 가려 창백한 그림자처럼 보였던 전편의 배트맨들과 달리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운이 아주 좋다면 올해 우리는 여름 한복판에 개봉되는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의 다섯 번째 영화에서, 비토 콜레오네의 젊은 날을 회고한 <대부2>와 유사한 감흥을 맛보는 희귀한 축복을 누릴지도 모른다고 외신들은 기대를 부채질하고 있다.

what’s GOOD: 브루스 웨인은 어찌하다 배트맨이 되었나? 궁금하지 않을 리가!
what’s BAD: <스파이더 맨> <엑스맨>이 이미 나온 지금, 또 다른 영토를 개척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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