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에 복종하는 '코믹북 누아르', <신 시티>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신작 <신 시티>에서 시선을 확 잡아끄는 것은 독특한 비주얼이다.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 화면을 메인으로 삼고 극히 부분적으로 원색 컬러를 사용해 임팩트를 주는 이 표현방식은 동명의 코믹북 원작이 가진 그림체의 특징을 어떠한 주관적 해석도 배제한 채 모사하듯 옮겨놓은 것이다. 어두운 뒷골목의 범죄자들과 그들만큼이나 부패한 공권력이 공존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프랭크 밀러의 <신 시티>는 모던하면서도 화려한 컬러링을 추구하던 90년대 코믹북계의 주류 유행을 거스르고 흑백의 거친 비주얼을 과감히 시도했다. 다크호스 코믹스사에서 출간돼 마이크 미뇰라의 <헬보이>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 <신 시티>는 독특한 그림체 덕에 누아르풍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도 몇 배 강한 악센트를 찍을 수 있었다.
자신이 “코믹북 누아르”라 표현한 <신 시티>에 로드리게즈가 크게 매혹된 것도 그림체 때문이다. 이 작품의 영화화를 오랫동안 맘에 품었던 로드리게즈는 <신 시티>를 영화화할 경우 원작을 각색할 맘은 애초부터 없었다. 폭력과 그늘로 얼룩진 도시의 누아르를 이야기에서뿐 아니라 원작의 장면 하나까지도 고스란히 스크린에 갖다박는 게 그의 목표였다. 로드리게즈는 프랭크 밀러가 자신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서 유독 남에게 판권주기를 꺼리는 <신 시티>를 영화화하기 위해 원작자도 모르게 10분짜리 단편을 찍어 그를 설득했고, 자기에게 설득당한 원작자를 공동감독으로 끌어오기 위해 “공동감독 시스템이란 있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반대한 미국감독조합을 탈퇴했다.
영화 <신 시티>는 원작의 에피소드 열편 가운데 세편을 엮는다. <힘든 이별>(The Hard Goodbye), <그 노란 자식>(That Yellow Bastard), <대단한 살인>(The Big Fat Kill)은 에피소드마다 등장인물이 제각각인 와중에도 그나마 겹치는 캐릭터들이 있어 영화화가 손쉽겠다는 판단으로 선택됐다.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와 함께 한 첫날밤에 그녀를 잃은 남자가 살인자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감금되는 퇴직 직전의 경찰관의 이야기, 부패한 잠복경찰과 그의 마피아 조직에 연루되는 자존심 센 전직 사진기자의 이야기가 각 에피소드의 중심 내용이다. 로드리게즈는 R등급이 나올 것도 괘념치 않고 폭력과 섹스, 증오와 복수 등으로 누덕누덕 기워진 이야기를 만화적 스타일로 과장된 캐릭터들과 함께 담아냈다 한다. 프랑켄슈타인을 닮은 괴팍한 외모의 마브 역은 미키 루크, 금발의 아름다운 연인 골디 역은 제이미 킹, 매사에 그리 순순하지 않은 형사 존 하티건 역은 브루스 윌리스, 그가 술집에서 조우하는 매혹적인 댄서 낸시 역은 제시카 알바, 노란 자식 ‘옐로 배스터드’ 역은 닉 스탈, 사진기자 드와이트 역은 클라이브 오언이 맡았다. 이외에 베니치오 델 토로, 로자리오 도슨, 브리타니 머피, 엘리야 우드, 데본 아오키, 마이클 클라크 던컨 등이 충분히 화려한 캐스팅에 빛을 더한다.
<신 시티>는 <월드 오브 투모로우>처럼 100% 디지털영화다. 배우들은 대부분의 연기를 그린스크린 앞에서 했고, 촬영은 HD카메라로 이루어졌다. 황량한 거리와 지저분한 술집, 어두운 지하 건물 등의 공간적 배경은 컴퓨터 후반작업을 통해 원작 속 세트를 그대로 화면 위에 입힌다. 배우들의 연기 동작과 카메라 앵글까지도 원작을 벗어나지 않는 <신 시티>는 원작이 곧 콘티나 다름없는 영화다. 편집 리듬도 여타 영화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만화적 리듬을 따라 아주 역동적이면서 낯설게 건너뛰는 리듬을 보여줄 것 같다고 클라이브 오언은 이야기했다. 로드리게즈만큼 현장을 꼼꼼히 체크하고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주고 그 자리에서 무서운 속도로 추가 숏의 콘티를 그려내며 공동감독의 몫을 다하던 프랭크 밀러는 이 순도 100%의 디지털 흑백 누아르가 지나치게 원작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이런 건 좀 다르게 찍어보는 게 어떠겠느냐”고 여러 번 권유했지만 로드리게즈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그건 당신이 그린 방식이 아니잖아요”가 전부였다.
답답하게도, 제각각 두툼한 이야기들이 대체 얼마나 어떻게 압축되고 또 세개나 되는 에피소드가 어떻게 서로 엮일 것인지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팬들 사이에서조차 뒷전으로 밀려난 화제인 듯싶다. 우리에게야 <신 시티>의 원작 자체가 낯설기 때문에 사실 더 흥미를 끌 만한 대목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에 관여한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촬영기술도 익힐 겸 타란티노는 <대단한 살인>의 에피소드 중 베니치오 델 토로와 클라이브 오언, 브리타니 머피가 한데 등장하는 시퀀스를 통째로 맡아 연출했다. 개런티는 1달러. 로드리게즈가 <킬 빌2>의 오리지널 스코어 작업을 1달러만 받고 해준 우정의 보답이라 한다.
what’s GOOD: 한때 자신이 만화를 그렸으며 엄청난 만화광이나, 로드리게즈는 코믹북의 핵심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을 것이다. what’s BAD: 이 영화의 또 다른 공식 타이틀은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신 시티>'가 아닌 '프랭크 밀러의 <신 시티>'이다. 영화 사상 그로고 코믹북 사상 가장 원작에 가까운 영화를 만든다는 건 작품에 어떤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인가.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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