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나라 영국엔 <웰레스와 그로밋>이나 <스노우 맨> 같은 부드러운 애니메이션만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필 멀로이는 극단적 표현방식의 작품 활동을 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명이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아니메처럼 아랫도리에 흥분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키 위함이다. <카우보이> 시리즈 중 한편인
에선 펠라치오 → 항문섹스 → 그룹섹스 → 수간으로 점차 올라가는 자극의 수위를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자극만을 추구하는 언론에 대한 일갈이다.)
<세상의 역사>중 첫 번째 이야기인 <글쓰기의 발명>에서 글쟁이의 등장에 대해 감독이 제시한 인류학적 가정은 다음과 같다. 대물을 가진 강자에 밀려 여자를 차지하지 못한 약자가 처지를 비관하여 “무기보다 강한 페니스 (The penis mightier than the sword)”라는 문장을 적는다. 여기서 그 약자는 ‘penis’를 ‘pen’과 ‘is’로 분리하고 “펜은 무기보다 강하다”로 의미를 바꾸자 여자들의 인기를 얻게 된다. 95년 작 <십계명>중 3번째 에피소드를 발전시킨 <편견> 삼부작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 DVD에는 1편과 2편만 담겼다. <편견>은 이지 바르타의 <장갑의 잃어버린 세계>와 존 카펜터의 <화성인 지구침공>을 합친 듯한 구조에 필름 K 딕의 반전을 가진 작품이다.
우주선이 어느 날 ‘조그 필름’이라 표시된 릴을 발견하고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한다. 인간과 조그족의 차이점은 그들의 머리는 인간의 성기처럼 생겼고 성기는 인간의 머리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그들의 키스행위는 인간의 관점에선 성교가 되어버린다) X같은 조그족의 외모와 행동양식에 대노한 지구인이 조그족을 괴멸시킬 함대를 파견할 때 조그족 역시 같은 이유로 함대를 지구로 파견한다. 그러나 지구인으로 분장한 조그족은 30년 만에 무혈 지구정복에 성공한다. 이 사태를 파악한 유일한 인간 드와이트는 아내와 함께 수많은 자녀를 양산하여 이에 대항하려 하지만, 그녀 역시 조그족임을 알고 가족전체를 몰살하고 은둔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무시무시한 비밀을 쳐다보게 되는데... 결말은 DVD로 직접 확인하시길. 하지만 이 결말도 에피소드 3에서 뒤집힌다. (<편견> 삼부작의 도입부는 www.philmulloy.com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필 멀로이의 작품은 애니메이션의 시작으로 돌아간 듯한 간단한 흑백의 캐릭터와 단순한 움직임만으로 모든 가치와 권위에 대한 전복을 보여준다. BFI서 출시한 DVD는 총 24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영어자막은 지원되지 않지만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이해될만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