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타이틀]
조성효의 애니모션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2005-09-05
글 : 조성효
애니메이션 삽입으로 더욱 돋보이는 작품들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와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처럼 실사-애니메이션 합성영화도 아니면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장면에 애니메이션이 삽입되어 더욱 돋보이는 영화들이 있다. 장 비고의 <품행제로>나 베르히만의 <페르소나>에서는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짧게 포함되었지만 <메리 포핀스>나 <닻을 올리고>에서의 애니메이션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되어버렸다.

<헤드윅>

비교적 최근 영화 중 애니메이션이 인상적으로 삽입된 경우를 살펴보자. <헤드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헤드윅이 ‘Origin of Love'를 부르는 장면이다. 노래도 좋지만 에밀리 허블리의 셀 애니메이션이 가사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기 때문인데 이런 앙상블이 나오게 된 데에는 에밀리 허블리의 집안내력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디즈니의 전설적인 애니메이터인 존 허블리였던 것.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다리 넷 달린 고래는 영화의 다른 장면에도 등장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였음이 DVD 이스터에그를 통해 알게 되는데, DVD 삭제장면 메뉴에서 헤드윅의 머리 부분을 클릭하면 에밀리의 설명과 함께 콘티형태로 삭제된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

하비 피카의 이야기를 크롬이 그렸었던 만화를 영화화한 <미국의 광채>에는 만화 속 하비 피카가 살아 움직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만화 프레임 속에 갇힌 하비 피카만을 봐왔던 원작만화의 팬으로서는 가히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말풍선에서 하비 피카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만화 프레임을 그대로 끌고 오질 않나 급기야는 프레임을 뛰쳐나와 하비 피카(폴 지아마티) 뒤에서 불만을 참지 말라며 유혹한다. 이 장면은 크롬이 그린 것이 아니라 게리 리브가 만든 만화/애니메이션 창작집단인 트윈클의 멤버인 존 쿠라모토가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실사와 만화, 다큐와 애니메이션이 잘 조화된 덕에 <미국의 광채>는 AFI에서 선정한 2003년 영화중의 한편이 되었고 게리 리브와 존 쿠라모토는 2분도 안되는 장면으로 자신의 이름을 수상자 명단에 올리게 되었다.

<미국의 광채>

<프리다>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59회 베니스 영화제를 위하여 셀마 헤이엑이 리도 섬을 찾았을 때 퍼펫 애니메이션의 대가인 퀘이 형제의 작품도 짤막한 회고전 형식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퀘이 형제의 작품이 <프리다>에도 포함되었음을 안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 프리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꿈꾸는 악몽장면이 바로 퀘이 형제의 작품이었는데, 1분도 안되는 해골 의사와 간호사의 퍼펫 애니메이션이었지만 퀘이 형제의 팬으로서는 오랜만에 보게 되는 그들의 작품이 반가웠을 것이다. DVD에는 퀘이 형제가 직접 출연하여 그 장면을 어떻게 연출하였는지 짤막하게 소개해준다. 퀘이 형제에 관심 있는 분들은 키노 비디오에서 발매한 <The Brothers Quay Collection: Ten Astonishing Short Films 1984-1993>을 감상하길 권한다.

만일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의 엔딩 크레딧을 다 보지 못하고 상영관을 빠져나왔다면 당신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놓친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 10분 동안 계속되는 엔딩 크레딧에서 벤자민 골드만은 마치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효과를 CG로 구현해낸다. 영화는 보들레르 세 남매가 잠드는 장면으로 끝나지만 앤딩 크레딧은 그들이 여전히 올라프 백작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는 것을 암시한다. 메인타이틀에 등장하는 엘프의 애니메이션도 벤자민 골드만의 솜씨인데 코드1의 DVD 메뉴화면은 온통 벤자민의 애니메이션으로 채워져 있다. 국내서는 9월 중 CJ 엔터테인먼트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아트 애니메이션을 좀처럼 접하기 힘든 때, 영화 속에 포함된 작품으로나마 작가들의 숨결을 느껴볼 일이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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