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7회 서울여성영화제 가이드 [5] - 베라 히틸로바 감독 특별전
2005-04-07
글 : 박혜명
체코 뉴웨이브의 기수, 베라 히틸로바 감독 특별전

여성성과 남녀관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

<베라 히틸로바의 초상>

이란, 터키,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등 올해 유난히 세계 변방으로부터 많은 여성영화들을 길어올리는 제7회 서울여성영화제의 감독특별전 주인공은 체코 감독 베라 히틸로바다. 1960년대 체코 뉴웨이브 운동의 기수로 알려진 베라 히틸로바 감독은 올해로 76살이 되는 노장감독이지만 시들지 않는 창작욕과 뚜렷한 주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만드는 열정파이기도 하다. 제7회 서울여성영화제는 1961년작 <천장>에서부터 1998년작인 <올가미>까지 히틸로바 감독의 극영화 다섯편을 상영한다. 히틸로바 감독에 관한 전기 형식의 다큐멘터리 <베라 히틸로바의 초상>(Journey- Portrait of Vera Chytilova/ 체코/ 야스미나 블라제비치/ 2004년/ 52분)도 함께 선보인다. 이 작품을 연출한 야스미나 블라제비치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활발히 오가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여성감독이다.

베라 히틸로바 감독의 작품들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도발적인 은유나 상징을 스토리와 인물간 관계 속에 또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통해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산부인과를 배경으로 어리고 순수한 여간호사와 구속을 싫어하는 바람둥의 의사간의 로맨스를 담은 <사랑 게임>(The Apple Game/ 1976년/ 92분/ 35mm)은 사랑과 임신, 출산이 지닌 의미를 근접해서 다룬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됐음에도 남자에게 의존하기를 거부하는 건강한 여성상을 제시하는 것과 더불어 히틸로바 감독은 막 태어나는 아이의 모습과 사과 열매의 가쁜 편집을 극의 맥락과 상관없이 시도한다. 가장 최근작인 <올가미>(Traps/ 1998년/ 122분/ 35mm)의 여주인공은 수의사다. 갓 태어난 돼지에게 거세수술을 하는 장면 클로즈업은 <사랑 게임>이 보여준 이미지와 더불어 매우 강렬한 도발에 속한다. <올가미>의 여주인공은 자신을 강간한 두 남자의 성기를 거세한다. 극의 후반부가 촘촘하지 못해 갈수록 힘이 떨어지긴 해도, ‘여자에게 거세당한 남자’라는 설정은 충분히 흥미롭다.

<사랑 게임>
<올가미>

초기작에 속하는 <데이지>(Daisies/ 1967년/ 74분/ Beta)는 생기발랄하고 맹랑한 두 소녀의 인생유희를 비디오 퍼포먼스 형식으로 담은 작품이다. 불연속적인 내러티브, 극단적인 이미지간의 충돌, 젊음과 미모를 이용해 남자들과 즐기려드는 인물들을 통해 <데이지>는 무정부주의적 자유를 꿈꾼다. 히틸로바 감독의 첫 장편 <무언가 다른 것>(Something Different/ 1963년/ 82분/ 35mm)은 사회적 성공에 모든 것을 건 여자 체조선수와 가정에만 충실해온 주부를 대립시키면서 ‘현재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좌절을 그린다. 중편 길이의 <천장>(The Ceiling/ 1961년/ 42분/ 35mm)은 모델 출신이기도 한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작품. 모델을 상품으로 대하는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자기 내면의 연약함이 충돌하는 과정을 낭만적인 분위기 안에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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