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 원컷. 소마이 신지의 영화세계는 이 한마디로 설명된다. 영화평론가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을 빌리자면 “한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컷을 넣지 않고 카메라를 여기저기 이동시키면서, 불투명한 소음으로 가득 찬 상상조차 못할 공간의 변화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일본 영화계는 이런 폭력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인 방법 속에 앙드레 바쟁이 30년 전에 정착시킨 ‘공간적 깊이에 의한 데쿠파주’라는 테제를 초월하는 새로운 원리가 구현되었다고 믿고, 그의 영화를 광신적으로 숭배했다.”
원신 원컷의 원칙
1980년 만화 원작을 각색한 <꿈꾸는 열다섯>으로 데뷔한 소마이 신지는, 첫 작품부터 일관된 원신 원컷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가장 실험적인 영화 <숀벤 라이더>의 7분40초간 지속되는 첫 장면은, 3대의 크레인을 이용하여 컷을 나누지 않고 수영장에서 운동장으로, 다시 교문으로 이어지는 긴 시공간을 하나의 호흡으로 끌어들여 전설이 되었다. 소마이 신지는 자신의 영화가 ‘감정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때문에, 원신 원컷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신 원컷으로 캐릭터와 사건을 잡아내면, 그들이 순간에 느끼고 반응하는 육체의 리듬을 온전하게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소마이 신지는 컷을 나누지 않고, 끊임없이 카메라를 움직이면서 그 공간에 가득 차 있는 무엇인가를 잡아낸다. 열정과 분노, 폭력과 섹스 그리고 웃음과 죽음까지도 그 원신 원컷 안에서 들끓고 있다. 소마이 신지의 영화를 어떤 것에 비유한다면, 불꽃놀이 혹은 카니발 정도가 될 것이다. 곧 사라져버릴, 그러나 현존하는 모든 질서와 균형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절대적인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소마이 신지의 영화에는 존재한다. 그것을 ‘도망에 이어 도망, 탈선에 이어 탈선을 하는 아나키한 영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닛카쓰의 계약 조감독을 거쳐 프리로 활동하던 소마이 신지는 70년대의 문제작 <청춘의 살인자>와 <태양을 훔친 남자>의 현장에 참여한 뒤 아이돌영화의 막을 연 <꿈꾸는 열다섯>으로 데뷔한다. 당시 서른두살의 소마이 신지는 80년대 일본 뉴웨이브 중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감독이었지만, 의외로 초기작은 아이돌영화였다. 80년대에 약진했던 가도카와 영화사의 아이돌영화 전략과 소마이 신지의 실험적인 영화가 일치했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였던 야쿠시마루 히로코를 기용한 원신 원컷<세라복과 기관총>은 전형적인 아이돌영화의 스토리를 지녔고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그외의 모든 것은 파격이다. <꿈꾸는 열다섯>에서 아다치 미쓰루 만화의 여주인공 같은 면모를 보였던 야쿠시마루 히로코는, <세라복과 기관총>에서 기존의 아이돌을 뛰어넘어 신비한 여신으로 승천한다. 야쿠시마루 히로코만이 아니라 구도 유키, 사이토 유키 등의 아이돌 스타도 소마이 신지의 영화를 통해 배우로 거듭난다. 이후 소마이 신지의 필모그래피 절반은 10대가 주인공이었다.
날 것 그대로의 육체의 리듬
소마이 신지는 왜 아이돌영화를 만들었을까? 단순한 상업적 선택이었을까? <꿈꾸는 열다섯>을 찍을 때, 소마이 신지는 거의 하루에 한 장면 정도를 찍는 속도로 나갔다. 배우들은 긴 장면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했고, 모든 스탭들이 탈진할 정도로 고된 현장이었지만 소마이 신지는 멈추지 않았다. 놀라운 카리스마로 모든 것을 지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보았을 때, 관객은 물론 배우와 스탭들 역시 인정했다. 소마이 신지는 원신 원컷을 통해서, 기쁨과 고통을 발산하는 육체를 있는 그대로 떠오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유로 소마이 신지는 원신 원컷이 보여주는 육체의 리듬에 집착했다. 이성이나 논리로 사고하지 않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궁극의 순간이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소마이 신지 영화의 기적이었다. 소마이 신지가 아이돌에게 집착한 것은, 바로 그 육체의 신성(神性) 때문이다. 아이돌이라는 존재, 10대의 육체에는 바로 그 기적의 순간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세라복과 기관총>에서 브리지 자세를 한 이즈미가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떤 감흥이 온다.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는 아나키한 순간이, 소마이 신지 영화의 곳곳에서 튀어오른다. 소마이 신지는 아이돌영화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아이돌영화의 반란이며 해방, 해체였고 <숀벤 라이더>에서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필름 위에서 불타오르는 육체가 갈 곳은 과연 어디일까? 소마이 신지의 대표작으로 제1회 도쿄국제영화제 영시네마 부문 대상을 받은 <태풍클럽>은 태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혼돈과 광기를 유려하게 그려낸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조금씩 들뜨기 시작한다. 소녀들이 키스를 하고, 한 소년은 짝사랑했던 소녀를 강간하려 든다. 도움을 청하려 전화를 걸지만, 선생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 아이들은 체육관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옷을 벗고 밖으로 뛰어나가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불가사의한 흥분 상태에서, 평소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태풍클럽>은 일본사회의 억압적인 질서와 태풍이라는 비일상적인 환경의 카니발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하지만 그 다음은 무엇인가. 도쿄의 고등학교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던 소년은, 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거리를 방황하던, 그를 좋아하던 소녀는 무사히 학교로 귀환하지만 더이상 소년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풍클럽>의 아이들은 다시 질서로 숨어들어가거나, 다른 세상으로 가야 한다. 결국 불타오르는 육체의 종착역은 죽음의 시간인 것이다. 약동하는 육체는 언제나 죽음과 만나고 있다. <꿈꾸는 열다섯>에서 소년이 정사(情死)를 꿈꾸고, <세라복과 기관총>의 남자들은 왜 모두 죽어야 하는 것일까. 소마이 신지의 모든 영화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리워져 있다.
생명력과 육체의 찬양
그러나 소마이 신지는 죽음을 찬양하지 않는다. 소마이 신지가 갈구하는 것은, 원신 원컷의 생명력이고, 육체의 돌진이다. 소마이 신지의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혹은 배경으로 흐르는 유행가의 순간이 의미하는 것처럼, 순간의 충일감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섹스에서도 드러난다. 5번째 영화인 <러브 호텔>은 70년대 가장 도발적인 만화가이자 현재는 영화감독인 이시이 다카시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소마이 신지는 한때 닛카쓰 로망 포르노의 조감독을 했고, 필명으로 로망 포르노의 시나리오를 쓴 적도 있다. <러브 호텔>에서 모든 것을 잃고 절망하여 자살하려던 남자는, 우연히 부른 콜걸의 성적인 생명력에 경악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도쿄 상공 어서 오세요>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소녀가 천국으로 가기를 싫어하고, 삶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소마이 신지가 원하는 것은 육체이고 삶이다. 그 모든 것이 충돌하며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카니발인 것이다. <이사>의 비파호수에서의 축제, <여름 정원>의 노인의 죽음들도 사실은 재생의 이야기인 것처럼.
13번째 작품이자 유작인 <바람꽃>은, 소마이 신지의 영화답지 않은 진부한 ‘테크닉’의 작품이다. 소마이 신지는 어째서 <바람꽃>을 만든 것일까. 뻔한 멜로드라마 같은 <바람꽃>이지만, 그 모든 것은 세심하게 예정되어 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홋카이도로 간 엘리트 공무원과 유흥업소의 여인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죽음에서 벗어난다. 그것은 어떤 욕망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보는 다른 시선이다. 소마이 신지는 <바람꽃>에서 더이상 육체의 카니발을 찾지 않는다. <바람꽃>은 제목 그대로, 바람에 흩날리는 세설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극단적인 삶과 죽음의 회오리바람을 보여주었던 소마이 신지는, 유작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며 원신 원컷의 마지막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