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태풍> 블라디보스토크 촬영현장 [2] - 곽경택 감독 인터뷰
2005-07-06
글 : 김도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태풍>의 곽경택 감독

“다들 된다는 믿음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냈다”

곽경택 감독은 예전보다 살도 10kg 이상 빼고, 머리도 깍두기 스타일로 짧게 잘랐다. 감독 자신이 건강한 모습을 지켜야만 지난 11월부터 한국과 타이와 러시아를 유랑민처럼 돌고 있는 스탭들을 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나자마자 그간 <태풍>의 이미지나 스토리에 대해서 극도로 노출을 꺼려와서 원성이 높았다고 전하자 “오래 찍어야 하니까. 개봉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괜히 조금씩 보여드렸다가 ‘벌써 개봉했나?’ 이런 말 나오면 안 되지 않냐”며 능글맞게 우회로로 들어선다.

-<똥개>를 끝내고 나서 김형욱에 대한 영화를 준비 중이었는데, 결국 <태풍>을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

=사실 <똥개>보다 <태풍>의 시놉시스를 더 일찍 만들어놓았었다. <똥개>를 촬영하면서도 끝내자마자 <태풍>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태풍> 역시 남자 이야기다. 두 남자 캐릭터는 어떻게 빚어낸 것인가.

=TV에서 탈북자 가족들이 영사관에서 손잡고 통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거기 있는 꼬마의 눈동자가 너무 불안하더라. 저런 아이가 자라서 원한을 가진 해적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게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씬이라는 캐릭터는 역사적으로 세팅이 된 인물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세종이었다. 씬과는 대비가 되는,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 남자의 느낌이어야 했다. 세종을 만드느라 골머리를 엄청 썩었다.

-그렇다면 명주라는 여성 캐릭터는 어떻게 두 남자 사이에 배치되는 것인가.

=명주는 증오로 가득한 인물과 선한 다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기준을 가진 건강한 젊은이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만드는 중심축이다. 우리가 태어난 나라를 모국이라고 그러지 않나. 명주란 캐릭터는 마음속에 항상 모국에 대한 용서와 그리움이 있어서 두 사람을 다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세 인물의 축을 그렇게 설정하고 나니까 비로소 캐릭터가 나오기 시작하더라.

-이정재, 이미연과는 첫 작업이다. 어떤 배우인지 파악하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관찰하는 버릇이 있는데, 두 사람은 어땠나.

=이미연과는 찐하게 몇번에 걸쳐서 술자리를 했다. (웃음) 그래도 아쉽기는 하다. 짧은 기간 동안 빡빡한 스케줄로 어려운 작업을 부탁했고, 해서 여유없이 첫 촬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장동건과 <친구> 끝내고 나서 ‘한 작품만 더하면 진빼이(진짜)를 다 뽑아먹을 긴데’ 이런 생각이 들었듯이, 이미연에게서도 그런 기분이 슬슬 들기 시작하는데 촬영을 막바지만 남겨둔 상태라 굉장히 아쉽다. 사실 이정재와 서로 오픈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이정재가 장동건, 정우성과 친하다. 그래서 내가 어떤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테고, 나도 장동건과 정우성을 통해 이정재를 좀 아는 상태였고. 이러니 서로 계속 견제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더라. 게다가 촬영 전에는 아무리 꼬셔도 술을 안 먹더라고. 결국 장동건이 도움을 줬다. <무극> 촬영하다가 와서 술 한잔 하기로 했는데 이정재와 내가 ‘감독님’, ‘정재씨’라고 서로를 부르니까 ‘형, 왜 그래요? 정재 너는 왜 그래? 두 사람 지금쯤은 형, 동생 할 줄 알았는데 정말 황당하다’ 그래서 내가 내친 김에 ‘봐라 임마. 인제 행님이라 불러라’ 그랬지. (웃음)

-<친구>의 ‘내가 니 시다바리가?’ 장면처럼, 배우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놓아두고서 기대 이상의 컷을 뽑아먹은 적이 있나.

=내가 흡혈귀인가 뽑아먹게. (웃음) 솔직히 말하면 <친구> 때는 그런 걸 조금 뽑아먹기도 했다. (웃음) 이번에는 굳이 그럴 필요없더라. 서로 사이가 너무 좋은 배우들이라 같은 전법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저 배우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모니터를 보는 나는 볼 수 있는 특유의 얼굴, 톤, 목소리와 몸짓이 있지 않나. 모니터 보여주면 감독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거다.

-<친구> 이후 장동건의 발전은 어떤가.

=더 진해졌다. 이제 이 친구는 스스로 망가질 줄을 안다. 콰지모도도 연기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는 이렇게 고백하더라. ‘감독님, 아직 조금 남아 있어요.’ (웃음)

-제작비가 초과하고, 제작기간이 늘어나는 것 때문에 충무로의 우려가 그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영화 기술력의 최대치와 정점을 집대성하는 작품을 드라마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그래서 최고의 연기자와 스탭들로 팀을 구성한 것이다. 최고의 스탭이 뭔가. 서로 아끼고 믿어주는 거 어닌가. 부담이 클 때마다 식구들끼리 서로 힘이 되어주면서 여기까지 왔다.

-<남극일기> <역도산> 등 자본을 많이 들인 대작영화들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덩달아 걱정되는 점은 없나.

=그런 영화들이 제작되는 이유는 그만한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자본이 있다는 소리는 그런 영화가 나올 만하다는 소리다. 그건 감독의 잘못이 아니라 자본들이 실수한 거다. 감독이란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생한 작품들이 사랑을 못 받는 사태를 보면 너무 안타깝다. 아, 저 감독이 어떻게 이걸 헤쳐나갈 것인가. 그런 걸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도 <챔피언>으로 그래봤고. (웃음)

-배우의 연기와 인물의 감정에 가장 밀접하게 몰입해서 감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특수효과가 필요한 대규모 세트 촬영에서는 어떤 식으로 연출에 접근했나. 특수효과가 들어가는 부분들은 스탭들에게 일임한 것인가 아니면 배워가면서 직접 컨트롤한 것인가.

=<태풍>의 기술적인 부분들은 어차피 우리 스탭들도 이전에 못해본 것들이다. 옛날 개발도상국 한국에서 처음으로 반도체를 개발할 때 일본에 파견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했지 않나. 우리도 똑같이 했다. 수조 촬영을 위한 세트는 할리우드영화들의 메이킹 다큐를 보고 만들고, 물 미끄럼틀 역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김블장치 같은 것도 영국에서는 5t밖에 못한다면 우리는 그걸 개량해서 십몇톤을 올리고. 다들 된다는 믿음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냈다.

-<챔피언>과 <똥개>는 흥행과 평단에서 기대 이상의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지금 와서 두 작품에 대한 감정은 어떤 것인가.

=다 예쁘다. (웃음) 알다시피 <챔피언>은 작품을 끝내고 나서 힘든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 작품에는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다. 똑같이 애쓴 작품인데도 내가 사적인 감정을 참지 못했던 점이 참 아쉽다. <똥개>는 어떻게 보면 <챔피언> 이후 자유롭지 못했던 나, 그리고 세간의 이목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를 오해받지 않게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 것 같은 영화였다.

-한국영화 기술력의 최대치를 보여주겠다는 장담을 여러 번 했는데.

=촬영의 홍경표, 미술과 세트의 청솔아트, 특수효과의 정도안, CG의 강종익 등 <태풍>에 참여하는 모든 기술스탭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건 다들 성격도 제각각이고 제 잘난 맛에 살지만 새로운 걸 하면서 희열을 느낀다는 거다. 내가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스스로 겁이 났다가도 결국 해내고, 또 거기에서 오는 성취감을 만끽하고 산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기술력의 최대치라고 건방지게 말하는 이유도 다 이들 덕분이다. 이 정도 스탭들이면 기술력도 마인드도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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