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태풍> 블라디보스토크 촬영현장 [3] - 이미연 인터뷰
2005-07-06
글 : 김도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태풍>의 최명주 역으로 2년 만에 스크린 돌아온 이미연

“작품 선택, 사실은 느낌으로 한다”

아침 8시의 블라디보스토크 광장. 흐트러진 머리칼과 아무렇게나 걸쳐입은 듯한 의상. 영화 촬영을 위한 모습 그대로 나타난 이미연은 약간 피곤한 기색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에너지를 쏟아서 연기하면 삭신이 쑤신다. 소염제, 파스… 약만 늘어난다”며 웃어젖힌 그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포즈를 취하는 순간만큼은 에너지를 되찾은 듯 생생해졌다. 누추한 의상에 당황했던 사진기자의 셔터 소리도 덩달아 탄력을 받는다.

-입은 옷과 몸상태를 보아하니, 명주라는 역할이 대충 가늠은 된다.

=20년을 자기 뜻과 상관없이 험난하게 살아온 여자다. 그런데 그 인생역정은 생략하고 망가진 이후부터 보여줘야 하니, 한신만 촬영해도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는 기분이다. (온몸의 멍을 보여주며) 차라리 액션장면 찍다 이랬으면 남들이 고생했다고 치사나 하지. (웃음) 몸이 아픈 상태라 항상 기운없이 자빠져야 한다. 또 가슴에 멍을 안고 사는 여자이기도 하고.

-시나리오에 ‘즐겨라’라고 쓰여 있던 게 좀 섬뜩했다.

=힘들다. 지금까지 해온 다른 영화들의 느낌과는 다르다. 원래 촬영 전에 술먹고 흐트러진 모습도 보여가며 감독과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럴 만한 시간도 없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정신적인 부담이 컸다.

-<중독> 이후 2년 동안 영화를 쉬다가 <태풍>에 합류했다. 오랜만의 영화 출연인데.

=작품을 선택할 때 나름대로 많은 걸 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느낌으로 선택한다. 그냥 느낌이 오는 것 같다. 나는 연기자로서의 욕심도 있는 사람이고, <중독> 이후 2년 만이니까 이왕이면 영화 전체를 책임지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태풍>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2년간 한번도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나.

=사실 놓친 영화들도 꽤 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도 제의가 들어왔었지만 <명성황후>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사극에 또 출연하기가 망설여졌었고. 왜 영화가 하고 싶지 않았겠나. 사실은 지금이 제일 연기하기 좋은 나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중독> 끝나고는 너무 지친 상태였고 ‘즐길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때’였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태를 벗어나서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자 마땅한 게 없더라. 좋은 작품도 하고 좋은 감독도 만나고 싶은데, 확신이 드는 영화가 없었다.

-곽경택 감독과의 첫 작업은 어떤가.

=직접 액션신 리허설 때 연기도 혼과 열정을 담아서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 분명히 호텔 방에서 몰래 먹는 약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웃음) 숨이 가쁠 정도의 긴 호흡으로 수많은 스탭을 데리고서 정상적인 인물이 하나도 없는 영화를 어떻게 연출할 수 있을까. (웃음)

-강렬한 두 남자 캐릭터 사이에서 장식품으로 소비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 그럴 위험이 없도록 감독이 잘 찍어온 것 같고, 앞으로도 믿는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자란 세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현실에 대해서는 많이 무뎌진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내가 정말 분단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잊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만큼 작품이 크게 와닿았다. 그러다보니 명주라는 역할은 내가 하든 누가 하든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분량이 적긴 하다. 하지만 분량이 뭐가 중요한가. 18년을 연기하면서 얻게 된 교훈은, 남들이 어떻게 보든 겁내지 말고 좋은 작품이라면 도전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힘든 작업인데도 에너지를 잃지 않는 이유는, 현장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닌가.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충무로에서 영화하면 몸버린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도 영화배우라고 불리는 게 좋았다. 물론 아직까지도 힘들 때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 현장에서 내가 받는 에너지는 결코 다른 곳에서 받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란 게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안 잡히는 것이, 약간 꿈꾸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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