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3] - 잔 모로 인터뷰
2000-02-29
글 : 박은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평생공로상의 프랑스 배우 잔 모로

"오슨 웰스는 내게 감독을 꿈꾸게 했다"

“로제 바딤이 오늘 죽었다. 내 사랑을 담아,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 잔 모로(72)의 허스키 보이스가 커다랗게 울려퍼지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올 베를린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는 그는, “유러피언 시네마의 산증인인 잔 모로에게 이 상을 바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집행위원장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이 모든 기쁨을 로제 바딤 감독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프랑스 기자들이 불어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등 사소한 신경전이 있었으나, 기자회견 자리에서만 4개국어를 구사해보인 잔 모로의 대답은 명쾌했다. “내 어머니는 영국인이고 아버지는 프랑스인이다. 주지시켜줘서 고마운데, 날 그냥 유럽인으로 생각해달라(Let’s be European.)” 불확실한 사실을 들먹인 이들은 잔 모로의 즉각적인 정정 발언에 주춤해야 했고, 마땅찮은 질문을 한 기자들은 은근슬쩍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장은 그렇게 온통 ‘마담 모로’에게 압도당하는 분위기였다.

올 베를린은 잔 모로를 위해 그의 대표작 15편을 엄선해 프로그램을 짰다. 회고전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것이 바로 잔 모로의 회고전이다. 잔 모로가 첫손에 꼽은 <마드모아젤>을 비롯, 루이 말의 <연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줄 앤 짐> 등은 진작부터 매진 사례를 빚어, 유럽이 사랑하는 배우로서의 명성을 실감케 했다. 프랑수아 트뤼포,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오슨 웰스, 루이스 브뉘엘 등과 호흡을 맞추며 ‘누벨바그의 아이콘이자 뮤즈’로 활약한 잔 모로는, 영화사에 둘도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자 ‘신여성의 지성’, 그리고 식지 않는 정열이다. <에버 에프터> 등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 그는 지금 뉴욕에 연극 한편을 올린 상태고, 올 가을 영화 한편을 연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생공로상 수상은 물론 회고전까지 열리고 있다. 감회가 어떤지.

=지금 이 상은 평생의 영화 경험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감정의 동요가 이는 건 당연하다. 20∼30년 전의 영화들을 보면서 많은 추억에 잠긴다. 그 시간의 간극은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는 대신, 함께 일했던 감독들의 재능과 열정에 감사하게 한다.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관점에서다. 또한 영화 속의 젊고 어린 나를 본다. 내가 어땠는지, 내가 뭘 했는지. 이제 ‘다 자라서’ 돌이켜보건데, 나는 그리 형편없는 배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연극 연기로 시작했는데, 영화 연기로 전향한 이유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극장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여행가서 묵은 호텔 부근에 극장이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연기에 매혹된 것 같다. 연극 무대에 서면 관객과 좀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영화 연기는 또 다르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사는 삶이다. 영화처럼 삶과 유리된 동시에 밀접한 것도 없다.

-아까 로제 바딤을 언급했다. 루이스 브뉘엘과의 작업은 어땠나.

=난 그를 매우 사랑했다. 심지어 그에게 “내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랬더니 그는 “그건 끔찍한 일”이라면서, “당신이 내 딸이면, 아무도 못 보게 옷장 속에 가둬야 할 것”이라고 대답하더라.

-오슨 웰스와의 마지막 작품은 불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찍은 영화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판타스틱한 경험이었다. 공개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불운한 작품이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나와 웰스와의 관계는 매우 긴밀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파워풀한 동시에 연약하고, 어떤 면에선 자괴적인 사람이었다. 촬영하면서 그와 내가 호텔방 위아래층에 묵었는데, 시가 연기가 창으로 쏟아져내려오면, 그가 테라스에 나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제작비 수급문제로 고생이 심했고, 심지어 며칠간 실종되기도 했다. 그리곤 (잠시 사이를 두어) 모르겠다. 말하기 힘들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오슨 웰스는 내가 감독의 꿈을 꾸게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줄 앤 짐>

-당신은 두편의 극영화와 한편의 다큐를 연출했다. 배우보다 감독 하기가 더 힘든가.

=두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배우는 자신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동시에 감독을 비롯한 다른 스탭과의 관계를 원만히 꾸려가면 된다. 그러나 감독은 모든 스탭과 배우들을 책임져야 하며, 경제적인 측면까지도 관장해야 한다. 그 책임은 대단히 막중한 것이다. 난 두편의 영화를 연출했지만, 그것을 ‘연출’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은 그냥 순리대로 흘러온 것 같다. 뭔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을 때 기회가 생겼고, 그래서 만든 거다. 그리고 몇년 전부터 2000년 가을에 영화 한편을 더 연출한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예전에 장 르누아르가 써준 시나리오를 토대로, 줄리엣 비노쉬를 캐스팅해서 만들 거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다른 작품들을 제쳐두고 <마드모아젤>을 특별상영작으로 고른 이유가 뭔가.

=나는 내 대표작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건 배급자나 극장주의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은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악평만 자자했다. 장 주네가 쓰고 토니 리처드슨이 연출한 이 영화를 지난해에 다시 봤다. 아름다운 동시에 위험한 영화라 느꼈고, 그래서 결정했다. 한번 뒤집어보자고. 난 평생 편견에 저항해 왔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박수)

-<연인> <마드모아젤> 등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여성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다.

=그런 여성들을 연기할 때 카메라 앞에서 난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그 때문에 떠들썩해진 세상을 대할 때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다른 여성들이 그런 캐릭터를 통해 뭔가 느낄 수 있길 바랐다. 배우는 연기할 뿐이고, 나머진 모두 관객의 몫이다.

-마타하리를 연기하기도 했는데,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스파이 영화의 경험에 대해 한마디 해주길 바란다.

=마타하리가 스파이였나. 어떤 사람들은 그냥 창녀라고 하던데. (웃음) 베를린이 스파이와 무관하지 않은 도시라고? 그래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대답 못하겠다. 냉전(cold war)이 나쁜 거라는 생각은 한다. 지금은 대신 수많은 열전(warm war)이 벌어지고 있지. 그것 역시 불행한 일이다.

-독일이 유럽의 할리우드가 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할리우드는 할리우드다. 합작하고 개방하는 지금의 추세가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뭔가. 관객의 취향이다. 관객은 뭔가 유럽적인 것들을 갈구하고 우리를 그것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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