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1] - 수상작 리스트
2000-02-29
글 : 박은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베를린영화제 2월20일 폐막, 황금곰상은 <매그놀리아>

할리우드의 패기, 유럽과 교감하다

<매그놀리아>

공공장소에도 영어 표지판 하나 없는 이곳 독일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 영어할 줄 알아”하고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월20일 밤, 열이틀의 행사를 마감하는 폐막식 자리에서 금곰상 수상자 폴 토머스 앤더슨이 독일어를 모른다고 사과하자, 관객이 보인 반응이다. “정말?” “예스!” 마치 록 공연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유럽 관객과 교감한 할리우드의 젊은 감독은 그제야 “이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다. 심사위원 모두에게, 그리고 베를린에 감사한다”고 달뜬 얼굴로 소감을 전했다. <매그놀리아>의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은 수상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스타였다. 그는 이미 관객이 가장 많은 찬사를 보낸 작품을 만든 감독, 배우를 제치고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거의 유일한 할리우드 감독이었다.

“오스카가 저버린 영화, 우리가 살렸다”

금곰상 이외의 관심거리도 있었다. 심사위원장 공리가 본선에 진출한 장이모에게 과연 상을 주겠느냐를 점치는 일이었다. 폐막식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공리는 떨리는 목소리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에 장이모의 작품을 호명했다. 폐막식에서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장이모 감독은 공리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지만, “수상의 모든 영광”은 <집으로 가는 길>의 주연배우 장지이에게 돌렸다. 심사위원상 수상자 빔 벤더스가 “베를린에서 본 많은 영화 중에 유독 내 가슴을 울린 영화(<브레이킹 더 사일런스>)가 있었다”면서 공리에게 장미꽃을 바치는 해프닝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페막식장이 조금 썰렁해질 뻔했다.

<베를린 모르겐포스트> 등 몇몇 독일 일간지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로 이미 <매그놀리아>의 수상을 점쳤다. <매그놀리아>를 “시간과 공간과 내용을 비범한 이야기 속에 하나로 녹여낸 총체의 예술”로 평했던 독일 언론들은, 수상 결과가 나오자마자 “오스카가 저버린 영화를 우리가 살려냈다”며 득의양양했다. 이들이 <매그놀리아>의 금곰상 수상을 대견해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몇년 내리 기준이 불분명하고 보수적이던 베를린영화제가 이제 제자리를 찾았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한때 빔 벤더스의 <밀리언달러 호텔>과 키아로스타미풍의 터키 영화 <5월의 구름>이 수위를 다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 ‘역시 베를린’이라는 냉소가 흐르기도 했다고. <매그놀리아>에 대상이 돌아간 것은 그러나, 최선이 아닌 차선의 결단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 절반 이상은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으니, 나머지 작품끼리 ‘도토리 키재기’를 한 셈이다. 애초 할리우드영화가 6편이나 후보에 올랐고, “독일영화의 약진”을 운운하며 독일영화를 3편 끼워넣었던 데서부터 짐작할 수 있었듯, 금곰상과 은곰상 등의 본상은 결국 미국(<매그놀리아> <맨 온 더 문> <허리케인 카터>)과 독일(<밀리언달러 호텔> <리타의 전설> <파라디소>)이 반반씩 나눠 가졌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있었다. 앨프리드 바우어상을 수상한 오가타 아키라의 <소년 합창단>, 게이 레즈비언 영화에 수여하는 테디 베어상의 <타는 바위에 떨어지는 물>(프랑수아 오종), 공식 프로그램에서 특별 상영한 케네스 브래너의 로맨틱 뮤지컬 <사랑의 헛수고>는 관객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 작품들. 이 밖에 파노라마 부문에선 독일 동성애자들에 관한 다큐 <패러그래프 175>, 포럼 부문에선 일본의 <먼데이>와 그리스 사회풍자극 <법의 사계절>이 큰 호응을 얻었다. 일본영화가 강세인 포럼 부문에는 <고추 말리기>와 <노래로 태양을 쏘다> 두 작품의 한국영화가 초청됐다. <고추 말리기>는 포럼 부문에서 “한국인의 정서에 공감한” 관객의 성원으로 ‘스페셜 멘션’되기도 했다. 또한 베를린영화 견본시에선 <쉬리> <텔미썸딩>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등을 선보였는데, 특히 <쉬리>의 마켓 시사에는 유럽의 배급관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고, 영화제 데일리 <무빙 픽처스 데일리>는 강제규 감독과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관객 40만명 동원, 그러나 성과는 숫자뿐?

영화제 개최를 위한 지상 최적의 장소 포츠담

1만2천명의 영화기자와 배급자를 포함, 모두 40만명이 다녀갔다는 올 베를린영화제는 관객 동원에 있어선 사상 최대의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최첨단 대형 멀티플렉스, 크고 작은 시네마테크, 심지어 영화박물관까지, 다양한 영화시설이 몰려들기 시작한 포츠담이 영화제를 위한 지상 최적의 장소로 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올해부터다. 그러나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로서, 이렇다할 화제작 없이 할리우드 스타에 의존한 행사구성으로 일관한 올해의 성과란 ‘숫자’뿐이다. 모리츠 드 하델른 집행위원장은 수상자 전원을 폐막식에 불러모은 자신의 노고를 자찬하는 등 끝까지 문제점을 파악 못하는 눈치였다. 이제 베를린영화제는, 프로그램 구성에 성의를 보이고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는 여전한 숙제를 안고 100년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수상작 리스트

황금곰상

폴 토머스 앤더슨 <매그놀리아>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 장이모 <집으로 가는 길> 장이모

최우수감독상: 밀로스 포먼 <맨 온 더 문>

여우주연상: 비비아나 비글로, 나디아 울 <리타의 전설>

남우주연상: 덴젤 워싱턴 <허리케인>

심사위원상: 빔 벤더스 <밀리언달러 호텔>

단편 황금곰상: 장 루슬로 <알프레드 르프티에 바치는 영화>

단편 은곰상: 파벨 쿠츠키 <미디어>

영화예술 평생공로상: 잔 모로

특별 개인공로상: 로버트 드니로

블루엔젤상: 폴커 슐뢴도르프 <리타의 전설>

앨프리드 바우어상: 오가타 아키라 <소년 합창단>

베를리날레 카메라: 이치가와 곤 <도라 헤이타>

FIPRESCI(국제예술영화평론가협회)상

경쟁 부문: 클로드 밀러 <마법의 방>

포럼 부문: 사부 <먼데이>

파노라마 부문: 롭 엡스타인, 제프리 프리드만 <패러그래프 175>

CICAE(국제예술영화연맹)상

파노라마 부문: 코너 맥퍼슨 <솔트 워터>

포럼 부문: 디모스 압델리오디스 <법의 사계절>

테디상: 프랑수아 오종 <타는 바위에 떨어지는 물>

칼리가리상: 디모스 압델리오디스 <법의 사계절> (스페셜 멘션: <먼데이>)

평화상: 데보라 호프먼, 프랜시스 라이드 <낮으로의 긴 밤여행>

NETPAC(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리투파르노 고시 <바리왈리>, 나케 유지 <나비노 고이> (스페셜 멘션: <고추 말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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