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4] - 장이모 인터뷰
2000-02-29
글 : 박은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심사위원 대상작 <집으로 가는 길>의 장이모

“단순한 얘기일수록 표현하기 힘들다”

장이모의 베를린 귀환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50년대 연인의 사랑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이야기가 발휘할 수 있는 감동의 극한을 시험하는 듯했다. 중국의 전통, 고유한 정서와 이미지가 어우러진 구식 러브스토리에 이상하게 가슴이 짠해졌다는 고백은 국적을 막론하고 관객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터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我的父親母親)은 두 연인의 애틋한 사랑이라는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섬세한 심리의 결을 녹인 유려한 영상에 담아낸, 소박한 동시에 화려한 영화다. 추억의 빛은 결코 바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인지, 오늘이 건조한 다큐 느낌의 흑백인 반면, 어제는 황홀한 만큼 아름다운 총천연색이다. 영화는 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마을 길목까지 관을 둘러메고 걸어오는 전통 장례 절차를 고집한다. 아들은 간소하게 무리없이 치르자고 설득해 보지만, 어머니는 “네 아버지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며 뜻을 꺾지 않는다. 아들은 오래된 사진 속에서 젊은 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고, 그들의 옛이야기를 떠올린다. 도시에서 시골마을로 온 스무살의 앳된 교사 아버지와 마을토박이였던 열여덟살의 어머니는 첫눈에 사랑을 느끼고, 수줍게 서로의 감정을 확인했다. 아버지는 정치적인 문제에 얽혀 도시로 가버렸지만, 어머니는 가을과 겨울을 마을 입구에서 내리 기다렸고, 두 사람은 재회한 다음 다시 헤어지지 않았다. 부모의 사랑을 떠올린 아들은 전통 장례 의식이 “집으로 오는 길을 잊지 말라”는,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당부임을 깨닫고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책상서랍 속의 동화>에 이어 다시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맞다. 둘 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교사가 등장한다. 본래는 한편만을 영화화할 생각이었는데, 서로 완전히 다른 영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했다.

-왜 하필 이 소재를 영화화하기로 했나.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외국에서 일하느라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그런 자전적인 경험이 이 영화를 이끌었다. 또다른 이유는 감정적으로 밀착돼 있는 두 연인의 관계를 통해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고 모든 것이 상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래는 참으로 각박할 것이다. 중국인들이 인간관계를 통해 간직하는 사랑과 인정이야말로, 시대를 불문한, 인간사의 가장 중요한 ‘에센스’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자전적인 얘기라면, 영화화하기 부담스럽진 않았나.

=이건 완전한 자전 영화가 아니다. 내 어머니와 나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러나 그 감정만은 깊이 공감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 관객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이 영화를 만든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

-매우 단순한 이야기면서, 감동을 준다.

=단순한 얘기일수록 표현하기 힘들다. 표면적으로 단순한 이야기지만, 정치적인 배경과 연관시킬 때 간단치 않다. 두 사람이 40년을 함께 보냈다는 건 결코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그간 정치적 변화도 많았고 적잖이 역사가 흘렀다. 중국 전통화에는 채색하지 않고 남겨두는 ‘여백’이라는 것이 있다. 어려운 중국영화 한편을 전통식으로 만들었다고 대답하고 싶다.

-연인의 이별이 문화혁명 때문이라거나, 정치적인 문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암시는 나오지만, 그 배경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렇다. 영화 속에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 시기에 일어난 정치적 사건이 영화의 중심은 아니다. 난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특정한 이유 하나를 단 것 뿐이다. 문화혁명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영화는 그간 너무 많이 만들어졌고, 내가 의도한 바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고, 그러면서 더욱 가까워지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제작사로 둔 중국 감독의 입장은 어떤 건가.

=이 영화는 컬럼비아 픽쳐스 아시아에서 제작했는데, 해외 제작사와 합작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제작비의 출처가 어딘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큰 돈을 투자할 만큼 내 영화를 믿는다는 사실은 기쁘다.

<집으로 가는 길>

-장례식을 치러주는 사람들이 무상으로 도와주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 역시 황금만능 풍조가 팽배하다고 들었는데, 그 반대 상황을 집어넣은 특별한 의도가 있나.

=맞다. 그건 특별한 일이다. 지금 중국은 급변하고 있다. 돈을 통하지 않고는 뭐하나 제대로 안 된다는 것도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단순한 시골 사람들이 교사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공짜로 일해주는 장면을 통해, 그간 중국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영화에서 역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데, 촬영을 어디서 했나.

=촬영장소는 베이징에서 차로 4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경치가 매우 좋았을 뿐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삶이 매우 생생하고 시적이라 맘에 들었다. 보자마자 매료당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담아낸, 화려한 비쥬얼이 인상적이다. <책상서랍 속의 동화>의 밋밋하고 소탈한 비주얼에 대한 반작용인가.

=나는 다른 종류의 영화는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토리에 맞춰 스타일을 정한 것이다. 단순하고 진솔한 사랑이야기, 그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아름다운 배경이 필요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두 사람의 스토리도 함께 자라나는 거니까.

-배우 연기 지도에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

=배우들에게 대강의 스토리만 알려줄 뿐 시나리오를 미리 읽지 못하게 한다. 온전한 대본은 촬영 직전에 줄 때가 많다. 배우는 관객의 눈에 그럴싸하게 비칠 만큼 믿을 만해야 한다. 너무 복잡하거나 지쳐 보이면 안 된다. 난 배우들을 혹사시키는 게 싫다. 촬영 강행군으로 쉴 틈을 안 주는 일은 없으려 한다. 늘 열려 있고 자유롭길 바라며, 생생하게 깨어 있길 바란다.

-늙은 어머니의 방에 <타이타닉> 포스터가 걸려 있다. 왜 소품으로 썼는지.

=특별한 의도는 없었지만, 그게 중국의 리얼리티다. 작은 마을 사람들은 도시에서 온 것이라면 뭐든 반긴다. 그게 뭔지 잘 모르면서, 도시에서 온 거니까 최신유행이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촬영하고 나서 우리끼리도 많이 웃었다.

-요즘 중국영화 산업은 어떤가.

=간단히 대답하기 어렵다. 중국영화인들은 영화만들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경제적인 상황이 안 좋은 데다, 거대 미국영화가 들어오고 있고, 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요즘 중국영화가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당분간 어려움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다가서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정치적인 부담이 있나.

=모두 알 듯이 중국엔 검열이라는 것이 있고, 그게 현실이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점은 개인적인 얘기지만, 아티스트로서 작품 속에 어떤 주제를 담아내겠다고 밀고 나갈 때는 그 결과에 대해 불평할 수 없다. 그것이 또한 현실이다.

-공리가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

=공리는 훌륭한 배우다. 그녀를 능가하는 배우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오래도록 함께 일한 동지이자 친구였다. 내 영화를 좋아해주길 바라지만, 판단은 객관적으로 해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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