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위기의 한국영화산업 [1]
2005-07-14
글 : 이영진
글 : 김수경
글 : 문석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는 이상징후들- 한국영화의 위기를 진단한다

적색경보! 충무로는 지금…

실로 치열한 한주였다. 제작자 대 매니지먼트사, 강우석 감독 대 최민식, 송강호의 대결이 라운드를 거듭하며 펼쳐졌다. 신문들은 큰 지면을 헐어 대결구도를 부각시켰고, 온라인 매체들은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의 상황을 분 단위로 생중계했으며, 방송은 좀더 생생한 화면을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여기서 부각된 것은 두 세력간의 대립뿐이었다. 이 대립의 배경은 그저 이 ‘싸움구경’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한 양념 정도로만 다뤄졌다. 그리고 곧 새로운 가십거리가 생겨날 것이고, 제작자와 매니지먼트의 대립은 금세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별로 다뤄지지 않은 이번 사태의 본질에는 한국 영화산업이 앓고 있는 중병이 자리한다. 시스템이 채 갖춰질 새도 없이 양적 팽창만을 거듭해온 한국 영화사업에선 한동안 이 놀라운 성장의 과실을 둘러싼 모험이 벌어지고 있었다. 영화 하면 돈 번다는 풍문은 온갖 자본을 불러들였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애처로운 움직임도 계속됐다. 하지만 2001년을 기점으로 한국영화의 수익률은 꺼지기 시작했다. 시장 규모에 대한 세밀한 예측없이 대작이 제작되고 치솟은 개런티는 가라앉을 줄 모른다. 이 와중에 충무로를 노크하는 거대한 통신자본의 존재는 재정비의 기회마저 갖지 못하게 할지 모른다. 관객이 줄어들고, 영화가 수익을 남기지 못하며, 자본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대규모의 자본이라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결말은 이제 과실을 따먹는 데서 씨앗을 뿌리고 묘목을 심는 문제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자는 제작자의 제안에 매니지먼트가 수용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공동의 위기감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영화의 구조적 문제와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찬찬히 들춰볼 때만 한국 영화산업은 건강한 재도약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6월 하순을 뜨겁게 달궜던 영화제작자와 매니지먼트사, 배우간의 공방이 결국 큰 상처와 일말의 성과를 남긴 채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6월23일 밤 강우석 감독의 발언으로부터 시작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거쳐 6월29일 심야에 배포된 강우석 감독의 공개서한과 30일 최민식, 송강호의 입장표명으로 마무리된 이번 사태는 한때 한국영화의 제작 중단 사태를 맞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빚어냈지만, 결국 양자간의 소통을 통해 해결됐다. 하지만 불똥은 여전히 남아 있다. 6월28일 발표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회장 김형준 한맥영화 대표)의 성명에 매니지먼트협회준비위원회(회장 정훈탁 싸이더스HQ 대표)가 수용의사를 밝힘에 따라 외양상으로 제작자와 매니지먼트-배우 사이의 대립은 해소된 듯하지만, 실제로는 이제 실마리를 찾았을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양자가 공히 현재 한국 영화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느 한쪽의 탓이 아니라 제작, 투자, 매니지먼트 등 모두의 책임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가장 밑바닥에는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현단계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존재한다. 제작자쪽은 한국영화가 최근 들어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이 속도에 비해 배우의 몫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느끼고 있고, 매니지먼트와 배우는 한류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이 급속히 커나가고 있는 탓에 이러한 증가세는 수용 가능하다고 받아들인다. 매니지먼트협회쪽이 밝힌 입장에서 제협의 문제의식은 수용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며 발전하는 영화산업과 매니지먼트산업, 국내 엔터테인먼트의 현실을 인식하고, 좀더 발전적인 방법을 모색함이 우선이라 생각됩니다”라고 한 대목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대변한다. 또 제작자들이 배우 개런티 상승과 지분에 대한 요구가 제작·투자의 수익률을 낮추는 주된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는 반면, 매니지먼트와 배우는 이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의 매니지먼트와 배우는 받은 개런티만큼 연기뿐 아니라 투자 활성화, 공동 개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영화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률 저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의 두 주체가 잠정적이나마 화해국면에 들어선 것은 공멸의 위기감이 현재 충무로를 감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약 이 사태가 호황기 때 터졌다면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을 것”이라는 한 제작자의 말처럼, 최근 한국 영화산업의 여러 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다양한 이상징후에 대한 위기의식이 이들의 잠정적 화해를 이끌어냈다는 이야기다.

작년 가을부터 극장 관객 감소세

올해 들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한국영화의 이상징후는 극장의 관객 감소현상이다. “극장에 손님이 없다”는 아우성은 지난해 가을부터 터져나왔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관객 수는 뚜렷한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연초부터 5월까지의 서울지역 관객 수는 1712만여명으로 지난해의 1933만여명에 비해 11.3%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3년의 같은 기간 관객 수인 1660만명과 흡사한 수치다. 롯데시네마의 이동호 부장은 “지난해에 비해 관객 수가 20% 이상 빠져나간 것 같다. 올해 우리 목표가 2천만명인데, 상반기에는 목표인 1천만의 80%밖에 못 채울 것 같다”고 말한다.

이같은 관객 감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영화의 부진이라는 사실과 만나게 된다. 한국영화만을 놓고 보면, 올해 5월까지의 서울지역 관객 수 882만여명은 지난해의 1315만명에 비해 33%나 줄어든 수치다. 특히 올해 한국영화의 작품당 관객 수는 평균 21만명으로 지난해의 41만2천여명과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같은 차이는 우선 지난해에 초대형 히트작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존재했다는 점과 올해 <깃> <당시> 등 독립영화의 개봉이 많았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스크린 수와 2001년 97%를 필두로 2002년 13.4%, 2003년 25.7%씩 치솟았던 관객 수 증가세를 생각하면, 한국영화의 성장세가 둔화됐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극장쪽은 이에 대해 올해 상반기의 라인업이 지난해에 비해 약화된 탓에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두편의 1천만 관객 영화와 <말죽거리 잔혹사> <어린 신부> 등이 상반기에 집중됐는데, 올해는 <그때 그 사람들>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 <댄서의 순정> <혈의 누> <남극일기> 등 기대작들의 성과가 미진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년 같으면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는 흥행이 됐을 텐데 관객 취향이 조금 바뀐 듯도 하다”는 메가박스 서동욱 부장의 이야기처럼,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불신감이 축적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이동통신사의 카드할인 축소, 아웃도어 스포츠의 인기 상승 등 또한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수익률은 떨어지고 자금은 바닥나고

<친구>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한국영화 흥행 부진은 자연스레 수익성의 악화로 이어진다. 2001년 <친구> 등의 흥행으로 29.3%의 수익률을 기록했던 한국영화는 2002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같은 대작의 실패로 -9.7%로 적자 국면에 들어섰고, 2003년에는 -8.8%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1천만 관객을 각각 끌어모았던 2004년은 어떤가. 영진위 김미현 정책연구팀장은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다소 오차가 있겠지만 제작비와 극장매출만으로 거칠게 계산하면 투자, 제작부문이 대략 5%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한다. 흑자전환? 아니다. 수익률이 소폭 성장으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를 제외하면 수익률이 -15% 선으로 급락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영진위가 가집계한 바에 따르면, 편당 5.5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정작 대부분의 영화사들은 신음을 흘렸지만 언론의 1천만 관객 돌파 환호에 묻혀 듣지 못한 것이다.

1억원을 투자했을 때 1500만원을 잃는 구조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의 젖줄 역할을 했던 투자조합의 영상펀드는 점차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영진위가 최근 발간한 ‘한국영화 수익성 분석과 투자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누적된 조합 결성총액은 3956억원이지만, 현재 남은 투자 가능액은 1086억원에 불과하다. 상당액이 이미 손실을 통해 공중으로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기존 조합의 해산시기가 임박했고 2002년 이후 새로 결성된 조합 수가 적은데다 올해 신규로 결성될 조합의 결성총액도 30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보여 공적 펀드 자금의 가뭄은 더욱 심각해질 분위기다.

때문에 “현재 한국영화에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투자·제작부문 수익률의 위기”라는 이승재 LJ필름 대표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진다. 한국 영화산업 전체의 이익률은 2001년 24.0%, 2002년 8.7%, 2003년 7.0%로 호조를 띠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는 2001년 14.9%, 2002년 18.1%, 2003년 18.0%로 계속 커나가는 극장부문의 수익률에 힘입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러한 극장의 성장세조차도 투자·제작쪽의 마이너스 수익률 때문에 한국영화가 부실해진다면 유지되기는 어렵다. 극장 관객의 폭발적 증가에는 생활권 깊숙이 파고드는 멀티플렉스의 증설뿐 아니라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이 커다란 요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투자·제작부문의 수익률을 플러스로 전환하고 이를 안정화하지 못한다면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영화의 수익률을 마이너스로 전환시킨 가장 큰 요인은 비용증가다. “2001년의 29.3%라는 결과에 도취된 영화인들이 방심한 결과”라는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의 이야기처럼 한국영화의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001년 31억5천만원이던 평균 총제작비는 2002년 36억원, 2003년 45억3천만원으로 계속 뛰어올랐다. 여기에는 이 상승폭을 능가하는 스타들의 개런티와 함께 감독 등 스탭 전반의 인건비 상승, 느슨한 제작관리, 시장을 계산하지 않은 무리한 기획 등 총체적인 요소들이 한데 응축돼 있다. 배우와 매니지먼트사의 “제작비 상승이 개런티 때문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분명 타당성을 갖고 있다.

수익원이 극장에 제한돼 있다는 사실도 수익률 저하를 부추긴다. 영진위 통계에 따르면 전체 한국영화 매출에서 극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74%, 2002년 75%, 2003년 76%로 절대적이다. 극장수익과 비디오·DVD 등 부가판권 수익이 거의 대등한 미국, 일본과 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극장 비중이 지나치게 큰 현재의 수익구조는 와이드릴리즈 전략을 더욱더 부추기고 있으며, 과거 비디오 판권액만으로도 가능했던 다양한 해외영화의 수입을 가로막고 있다.

제작자-매니지먼트사·배우 갈등 일지

6.23 밤
강우석 감독, 일간지 기자들 상대로 간담회 열고 “스타 개런티 때문에 한국영화 망한다”고 입장 밝혀. 이 과정에서 최민식과 송강호 언급.

6.24 오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임시총회 열고 매니지먼트사와 배우의 공동지분 등 부당한 요구 거부키로 결의하고 6월28일 기자회견 열기로 결정.

6.25 오전
각 일간지에 강우석 감독 발언 중심으로 매니지먼트사와 배우의 폐해 기사 게재. <조선일보>는 강우석 감독이 최민식과 송강호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고 적시.

6.28 오전
제협 기자회견 열고 매니지먼트와 배우의 폐해 지적하고, 효율적 협력시스템과 합리적 정책을 개발해 제작자 표준제작규약을 작성할 계획 발표. 이 과정에서 “악순환의 책임이 제작사, 투자자, 매니지먼트사, 배우, 감독, 스탭 어느 한쪽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혀.

6.28 오후
매니지먼트협회 준비위, 긴급회의 열고 “제협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향후 발전적인 형태로 수용해 나갈 것”이라며 사실상 제협의 요구를 받아들여. 강우석 감독이 최민식과 송강호의 실명 거론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 표명.

6.29 오전
최민식, 송강호 기자회견. 강우석 감독에게 언론을 통해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

6.29 밤
강우석 감독, 공개서한 통해 사과의 뜻 전달.

6.30 오후
최민식, 송강호, 강우석 감독 사과 받아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