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군인가 점령군인가
최근 KT·KTF는 싸이더스픽쳐스와 인수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싸이더스에 대한 실사작업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제 주식가치 평가작업과 인수 협상을 거치면 KT는 싸이더스픽쳐스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이 계약이 성사될 때 싸이더스쪽으로 넘어가는 자본은 300억∼4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현재 KT는 싸이더스 외에도 충무로의 다양한 업체들과 인수를 조건으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쇼박스의 경우처럼 대기업에까지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임 남중수 대표이사가 취임하는 8월이 되면 KT의 충무로 공략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충무로 진출에 앞장선 쪽은 SK텔레콤이다. SK는 올해 초 한국 최대 매니지먼트 업체 싸이더스HQ의 모회사인 IHQ의 2대 주주가 됐고, 내년에는 최대 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콜옵션까지 확보했다. SK텔레콤은 현재 300억원이 넘는 영상펀드를 구성 중이며, 충무로 업체들과도 간간이 접촉 중이다. 이들 통신업체들이 충무로에 가져왔거나 가져올 자본은 현재 알려진 것만 따져도 1천억원에 가깝다. 지난해 한국에서 제작된 모든 영화의 총제작비가 3400억원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을 1990년대 초의 삼성·대우 등 대기업, 1990년대 중반의 금융자본, 2000년대 초의 멀티플렉스 자본처럼 새로운 주도자본으로 꼽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총제작비의 1/3 규모인 1천억원 유입 예상
통신자본의 충무로 진출은 꽤 오래전부터 예고된 바였다. 콘텐츠와 결합할 수밖에 없는 통신사업의 속성상, 수년 전부터 영화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해왔던 것. 이들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게 한 촉매제는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이다. 위성 DMB가 지난 5월 본방송에 들어갔고, 지상파 DMB 또한 머지않아 방송에 돌입함에 따라 이 방송을 전달하는 통신업체로서는 콘텐츠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진 것이다. 현재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 통신업체들이 DMB를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활로로 꼽고 있기 때문에 영화계를 둘러싼 경쟁 또한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통신업체의 충무로 진입의 영향은 자본의 풍족화나 부가판권 시장의 확대 등에만 머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충무로 인사들이 “자본은 무조건 환영한다”는 입장에서 이들을 반기고 있으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신업체의 막대한 자본은 한국영화의 자본난을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겠지만, 그 액면만큼의 효과는 발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본이 펀드 형태로 조성돼 고루 분배되기보다는 영화쪽의 창구가 되는 특정 업체들을 중심으로 투자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재 LJ필름 대표는 “기존 CJ, 쇼박스, 롯데에 KT, SK텔레콤의 자본이 들어와 4∼5강구도가 형성되고, 대자본간의 경쟁도 치열해져 유력 제작사 또는 매니지먼트들을 놓고 땅따먹기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이렇게 되면 영화계 내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우려된다. 이은 MK픽처스 대표는 “중소 투자·배급사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합종연횡을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익부 빈익빈 심화, 부가판권 시장 큰 타격 우려도
또 하나의 우려는 DMB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가뜩이나 취약한 부가판권 시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인은 “통신업체들이 영화펀드를 조성하거나 투자를 하면서 제작된 영화를 극장보다 DMB에 먼저 걸자는 주장을 했다고 들었다. 이럴 경우 DMB라는 플랫폼을 알릴 수야 있겠지만, 엄청난 손실이 날 것이다. 설사 극장 개봉 직후 DMB로 간다 해도 비디오, 케이블TV, 공중파 등 기존 부가판권 시장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통신자본에 대한 또 하나의 우려는 DMB 사업이 실패하거나 한국영화 성적이 부진하면 영화계에서 빠져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비디오 기반의 대기업과 금융자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이들이 오히려 끝까지 남을 플레이어들이라고 생각한다. 네트워크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콘텐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통신자본 자체는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라는 이은 대표의 말처럼, 결국 통신자본은 한국 영화계의 체질개선이라는 방향에 맞춰 사용한다면 보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
“통신자본이 충무로에 자본공여 역할 해주길”
-통신자본의 유입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나.
=어떤 돈이 들어와도 괜찮다. 예전 금융자본이 들어올 때처럼 돈은 똑같다. 영화산업이 성장성, 수익성이 있으니까 들어오는 것 아니겠나.
-통신자본이 충무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멋모르고 들어와서 몇달 동안은 적응이 안 될 것이다. 그러다가 자기 역할을 찾아갈 것이다. 일차적으로야 DMB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들어오는 것인데, 설사 영화가 DMB에 적합치 않다는 판단을 하더라도 영화에 투자가 성공적이면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수익률만 있다면 말이다.
-충무로의 전체 수익률이 안 좋은데.
=성장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관객이 많아지고 영화가 나아지면서 전체적으로 산업이 성장하고 있지 않나.
-통신자본에 기대하는 바가 있나.
=물론 자기 목적이 있어서 들어왔지만, 그게 실현되는 가운데 충무로에는 자본공여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DMB라는 사업이 수년 뒤에야 본격화될 것이니, 아무리 비관적으로 봐도 통신자본은 몇년은 충무로에 남을 것이다. 그동안 돈을 벌어다줘야 한다.
-기존 자본과 충돌할 가능성은 있을까.
=영화산업이 그나마 산업화돼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CJ와 쇼박스가 있어서 이들이 자본을 무기로 마구 휘두르지 못하는 것이다. 음반업계 같은 경우는 심각한가보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이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우려되는 바는 없나.
=별로 없다. 통신자본 유입으로 산업화가 진전되면 머지않아 외국자본이 들어올 때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계 주요 자본흐름도
1992년
삼성, 1억5천만원 들여 <결혼이야기> 비디오 판권 구입. 대기업의 충무로 진출 신호탄
대우, <미스터 맘마>(1992)에 제작비의 50%에 달하는 3억원 투자1993년
삼성, CATV 산업을 위해 영화전문채널 캐치원 개설1994년
대기업의 영화투자 본격화. 전체 제작편수 65편 중 대기업 투자작, 30% 수준인 20편으로 급증
삼성, 명보극장 2관 대관해서 극장업에도 진출1995년
삼성(<돈을 갖고 튀어라> <총잡이>), 대우(<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제작비 전액투자 삼성영상사업단 출범
제일제당, 드림웍스에 3억달러 투자1996년
제일제당, 멀티플렉스 사업 시작
대우, 영화 자체제작 선언
LG, 쌍용에 이어 현대도 영화사업 진출 의사 밝혀
충무로 토착자본의 상징이었던 곽정환, 이태원 탈세 혐의로 구속
일신창업투자, <은행나무 침대>로 충무로 진입1997년
선익필름 부도로 충무로 제작사 위기감 증폭
제이콤, <인샬라> 흥행실패로 제작 축소
일신창투, 외화 수입 시작1998년
SK, 영화사업 철수
시네마서비스-일신창투-삼성영상사업단의 3강 체제1999년
<쉬리> 배급을 끝으로 삼성 영화사업에서 철수
동양, 대우 소유의 영화전문채널 DCN, 메가박스 인수 결정
금융자본시대 개막. 일신창투 외에 미래에셋, 국민기술금융 등 영화투자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 제작에 500억원 극장사업에 2500억원 투자 발표2000년
CJ, 시네마서비스와 투자배급 시장에서 2강 체제 구축
로커스와 합병한 우노필름, 싸이더스로 재출범2001년
로커스홀딩스, 시네마서비스 인수 발표2002년
CJ, 코스닥 등록
CGV-롯데-메가박스, 멀티플렉스 체인간 경쟁으로 전국 스크린 수 1천개 눈앞
튜브엔터테인먼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실패로 휘청2003년
CJS 연합 무산2004년
MK버팔로 출범
CJ, 플래너스 인수
CGV 관객 1억명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