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위기의 한국영화산업 [3] - 제협 vs 매니지먼트
2005-07-14
글 : 이영진
제작자협회-매니지먼트 싸움, 근본적 원인은 수익률 저하

누가 악순환을 멈출 것인가

매니지먼트사의 무리한 요구가 수익률 악화의 주된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제작자들.

제작비를 줄여라. 그리고 수익률을 높여라. 최근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매니지먼트사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6월28일, 제협은 매니지먼트쪽의 무리한 공동제작, 제작지분 요구가 제작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고, 더 나아가 수익률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스타 캐스팅을 요구하는 투자사들의 요구에 제작사들은 무한경쟁에 돌입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심지어 제작사 스스로 캐스팅을 위해 배우 또는 매니지먼트에 공동제작 혹은 제작지분을 내주겠다고 제안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제협의 이같은 강경 발언은 사실 다급한 호소이기도 하다.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제작사가 시나리오 개발에서 제작까지의 과정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구조”라면서 “한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데 급급해 새로운 영화를 기획하거나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따지는 일은 소흘히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설령 흥행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빚 갚고 지분 주고 나면 (제작사에) 남는 것이 없다”는 그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다. 영진위가 가집계한 바에 따르면, 2004년 한국영화 투자·제작부문의 수익률은 대략 5%의 소폭 상승을 기록했지만,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편당 1천만명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를 제외하면 수익률이 -15%로 뚝 떨어진다. 42억원에 머물렀던 제작비가 다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올해 또한 수익률 제고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양측 공동 테이블 마련 합의로 사태 일단락

더이상 졸라맬 허리가 없다는 제작자들의 심정이 전달된 것일까. 한때 강우석 감독의 발언으로 인해 매니지먼트와 제협의 갈등의 파고가 높아졌지만, 매니지먼트협회준비위원회쪽은 “제작자들의 결의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현안에 대한 공동 테이블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내 최대 매니지먼트사인 싸이더스 HQ의 정훈탁 대표는 “다들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많이 싸우고 했는데 이제는 큰 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며 8월에 매니지먼트협회가 사단법인화되면 제작자들과 좀더 구체적인 논의까지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협은 시장의 크기에 걸맞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서 표준제작규약안을 만들어 매니지먼트쪽과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 안팎의 분위기는 양쪽이 격한 대립을 피했고, 이후 책임있는 단체간 협상이 조만간 이뤄진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고 있다. 제작비 상승과 수익률 저하는 사실 한국영화의 성장에 있어 딜레마였다. “제작비 상승은 시장 사이즈가 확대된 데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면서, 지금 한국영화가 처한 곤란은 “시장의 확대에 비해 제작비가 지나치게 높아진 데서 기인한 것”이라는 이승재 LJ필름 대표의 진단은 다시 말하면 제작 주체들의 공동 노력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매니지먼트쪽의 처사에 대한 제작자들의 비난이 언론에 의해 지나치게 부각됐지만, 제협은 사전부터 매니지먼트사에 책임을 모두 돌리지 않고 제작자들에게도 자성을 촉구하는 등 노력을 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실마리를 찾았을 뿐” 해결과제 산적

강우석 감독에게 공식 사과를 요청한 배우 최민식과 송강호.

현재 양쪽이 협의와 대화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갈등은 봉합된 것처럼 보이나 적정 개런티 산정 등 합리적인 해법 도출까지의 과정이 순탄할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제작자들이 스타급 배우들의 고액 개런티 등을 문제삼을 경우 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제협은 제작비에 따라 일정 비율의 개런티 상한선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매니지먼트쪽이 이 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한 제작자는 “우리쪽에선 고액 개런티가 상당한 부담이라고 느끼는 반면 매니지먼트쪽에선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공동제작, 제작지분 요구 등은 모르지만 개런티 문제에 관해선 입장 차이가 상당한 것 같아 해결점을 쉽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제협으로선 매니지먼트와의 담판 말고도 안정적 자본 유인을 위한 수익률 제고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극장과의 수익·배분문제다. 현재 한국영화의 부율은 5:5로, 극장 매출의 60%가 수입사에 돌아오는 외화보다 불리하다. “스크린당 좌석 점유율이 평균 7∼10% 정도 높아 극장주에게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낮은 비율로 수익을 분배받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발표된 영진위의 보고서는 수익·배분율을 외화와 동일한 수준으로 개선할 경우, 평균 수익률이 13% 개선되어 2002년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마이너스 수익률이 플러스로 전환된다는 조사를 담고 있다.

김혜준 영진위 사무국장은 이럴 때일수록 프로덕션 스스로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편당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 여전히 촬영 일정 지체 및 혼선으로 인한 제작비의 무모한 증가 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없다. 이에 대한 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 MK픽처스 대표도 “개별 제작자들의 반성과 분석이 모든 개선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수익률 개선을 위한 안정적인 자본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한 한국영화 제작자들. 매니지먼트와 1라운드를 벌인 이상 쉴 틈 없는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김정수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 굿플레이어 대표

“우리한테만 모든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번 갈등이 왜 빚어졌다고 보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빚어지는 진통이라고 본다. 밥그릇 싸움은 정말이지 아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것 아닌가. 제협처럼 우리도 전체 업계를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려고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갈등이 불거지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뭔가.

=사실 우리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제작 자본 자체가 배우들 위주로 가지 않나. 수요가 특정한 쪽으로만 몰리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배추만 찾다보면 배추값이 뛰고, 무값도 덩달아 뛰는 것이고. 그런데 우리한테만 모든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 같아 좀 안타까웠다. 최민식 선배님이 기자회견에서 기사 보고 ‘숨막히더라’고 하셨는데 꼭 그 기분이었다. 또 우리가 작품 선정 등에 있어서 배우들을 좌지우지한다고들 아시는데 그랬다면 내가 왜 영화 만들면서 이병헌, 이정재를 쓰지 않겠나. 본인들이 직접 선택하고 결정하는 거다.

-제협쪽에서 표준제작규약을 만들겠다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기여도 없는 공동제작, 제작지분 요구는 거부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기준에 따라 기여를 인정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디테일하게 작성돼야만 초기 단계서부터 의견 차이가 있다면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제협쪽에서는 제작비에 맞게 개런티 최대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준비 중이던데.

=어떤 배우들의 경우, 한번 올린 개런티를 절대 안 내리는 경우가 있긴 하다.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융통성이 없으니까.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상한선이라고는 안 했으면 좋겠다.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가 곤란하지만 할리우드의 경우 톰 크루즈는 순제작비의 30%를 개런티로 가져가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많아야 제작비의 10∼15% 정도다.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0년 전과 비교해서 제작비 중 개런티 비율이 오른 것도 아니다.

김형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한맥영화 대표

“중요한 건 이 사안이 그냥 묻혀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자회견 전후로 바빴겠다.

=지난 5일 동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사이에 배우들이 출연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다. (웃음)

-매니지먼트쪽의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답변 중에 애매모호한 것들이 있어서 지금 확인 중이다.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야 좀더 명확해질 것 같다. 중요한 건 이 사안이 그냥 묻혀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쪽과의 협의 대상은 어느 정도인가. 이를테면 부율 같은 사안들도 포함되나.

=물론이다. 가리지 않고 논의할 생각이다.

-기여도가 있는 경우에는 공동제작, 제작지분 요구를 인정하겠다고 했는데. 기여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면 안 되겠지. 매니지먼트쪽과 함께 머리를 맞대봐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시나리오 보고 나서 여기 고쳐달라, 저기 고쳐달라, 하는 걸 갖고서 아이템 개발에 참여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좀 곤란하지 않겠나.

-표준제작규약안의 경우, 어떤 내용이 포함될 것인가.

=이제 조사를 시작한 상태다. 제작비 대비 개런티 상한선도 얼마가 적정한지 의견을 다양하게 구해볼 계획이다.

-제협쪽에서 극장쪽과의 부율문제를 먼저 건드리지 않아서 의외다.

=부율문제는 전에 한번 제기한 적 있잖나. 당시에 논의가 제대로 되지 못했었다. 7월5일에 다시 제협 운영위원회를 여는데 이 자리에서 부율을 비롯한 수익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사안별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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