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3]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2000-02-22
글 : 김현정 (객원기자)
랭보보다 아름다운 피닉스보다 치명적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25)의 얼굴은 격렬한 충돌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의 얼굴은 또한 눈이 부시다. 케이트 윈슬럿에게 가래침 뱉는 법을 가르치는 그 유명한 <타이타닉>의 한 장면에서조차 여성관객의 찬탄은 극장을 메운다. 석양 무렵의 하늘처럼 빛과 그늘이 경계를 무너뜨리며 섞여 있는 그의 얼굴은 신의 세심한 붓질이 스쳐간 듯하다. 그 위에 침 한 줄기쯤 흘러내린들 어떻겠는가. 디카프리오의 타액이라면 수많은 소녀들이 크리스털 잔을 받쳐들고 덤빌 것이다. 그러나 디카프리오를 감싸는 광채는 배우에게 넘어야 할 담장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소녀팬들의 탄성 속에 머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카프리오는 한편으로 거친 반항아로 행동한다. 나이보다 일찍 팬 양미간의 주름 때문에, 웃고 있지 않을 때의 디카프리오는 항상 성난 표정으로 보인다. 금빛의 물줄기처럼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버리면 그는 공격하려는 ‘레오’, 다시 말해 사자가 된다. 그러나 이 또한 함정이다. 파리 명사들의 식탁을 걷어찼던 <토탈 이클립스>의 시인 랭보, 마약에 취해 거리를 떠도는 <바스켓볼 다이어리>의 10대 짐은 디카프리오를 제임스 딘과 리버 피닉스의 계보에 올려놓았다. 하나의 이미지에서 달아나려 하면 또다른 이미지가 그를 가둔다.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금발 소년의 숙명일까? 여린 입술을 열 때마다 눈썹과 눈과 코의 분노는 무너지고, 한없이 입맞추고 싶은 소년만이 남는다. 그 모습은 도시의 갱이 된 90년대의 로미오 그 자체이지만, 디카프리오는 눈물 흘리는 연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셔츠를 벗으면 디카프리오의 분열은 더욱 심해진다. 한올의 털도 없이 매끈한 가슴은 남자라도 한번쯤 뺨을 대보고 싶도록 유혹적이다. 가녀린 목과 안쓰럽도록 동그스름한 어깨는 안기기보다 폭 안아주고 싶다. 그의 얼굴은 진저리나는 가난을 겪어보았던 현실의 디카프리오와 새아버지에게 학대당하며 모진 고생을 한 <디스 보이스 라이프>의 토비를 담지만, 그의 육체는 고생이라고는 모른다. 길고 가느다란 디카프리오의 손가락은 부랑자가 아니라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시트 속에 품고 애지중지 해야 할 것 같은 소년. 그래서 디카프리오는 한번도 연인을 구원하는 기사가 되지 못했다. 로미오는 추방당하고, 로즈가 살아나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타이타닉>의 잭은 파랗게 얼어 물 속으로 멀어져 간다. 그의 헌신에 관객은 눈물과 사랑으로 보답하나, 그럴수록 존경하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디카프리오 사이의 거리도 함께 멀어진다.

리버 피닉스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에서 영원히 멈추어버렸다. 디카프리오는 리버 피닉스가 죽은 스물세살에 이미 두살을 더했다. 숙명 같은 그의 아름다움도 곧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아직 그는 꿈의 연인, 젖은 두눈을 웃게 만들 수 있다면 세상 무엇도 아깝지 않을 소년이다. 걱정근심은 그를 지켜보는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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