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드 로(27)는 스크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탄성을 자아내는 배우다. 그의 어깨는 잊혀진 시대의 귀족처럼 당당하며, 단호한 입술은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 밑의 깊은 주름은 파란색과 녹색을 오가는 눈동자에 사색의 깊이를 더한다. 황금처럼 빛나는 금발이 후광으로 느껴지는 주드 로는 <그리스 신화>에 비유하자면, 아폴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상적인 남성미의 화신으로 추앙했으며 세상의 유일한 빛이었던 태양신 아폴론.
유전자로 계급을 결정하는 <가타카>의 미래사회가 한순간이나마 설득력을 가지는 까닭도 주드 로가 연기하는 제롬 때문이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힘겹게 계단을 오를 때 제롬은 어찌할 수 없이 초라하지만, 의자에 앉는 순간,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는 당당한 우성인자가 된다. 그때만은 관객도 유전자의 품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구가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주정할 때도 제롬은 운명의 굴레를 극복하려는 빈센트(에단 호크)의 투쟁을 희미하게 만든다. 주드 로는 그처럼, 태양과 같은 배우다. 옆에 선 배우들의 빛을 덮어버린다.
그런 주드 로가 파멸을 부르는 연인이라는 사실은 이상하다. <미드나잇 가든>의 난폭한 남창 빌리였을 때조차, 음탕한 유혹자로 보이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후덕한 지방 유지 윌리엄스였다.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망치고 때로는 주드 로까지 희생시킨다. <리플리>의 톰 리플리는 그를 향한 사랑이 거절당했기 때문에 절망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열기로 뒤틀린 사바나의 <미드나잇 가든>. 그곳에 생겨난 욕망과 거짓의 수렁에도 주드 로가 있다. 그러나 이 모두는 그가 주도한 것이 아니다. <와일드>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소중하게 사랑한 동성의 연인 알프레드(주드 로) 때문에 모든 것을 잃지만, 그는 변함없이 무심하다. 결국 사람들이 그에게 주었던 만큼의 사랑을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모든 살인이 일어났다. 소유할 수 없는 사랑은 죽여버리라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니던가. 아름답지만 냉정한 주드 로는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까움의 대상이다.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면 상관없겠지만, 버림받은 사람들은 그를 잊지 못한다. 그같은 사람은 다시 없을 것이므로.
사랑하는 사람의 냉정한 태도는 때로 잔인하게까지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죽이고 싶을 정도로 애달픈 사람이 단 한번이라도 웃어줄 때 밑바닥까지 간 절망은 순식간에 희망의 절정으로 솟구칠 것이다. 한없이 오만해 보이는 주드 로에게 여전히 사람들이 매달리는 까닭은 그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살해한 주드 로의 시신을 망연하게 껴안고 있는 리플리처럼, 관객은 그가 부드러운 눈길을 보내는 찰나를 잡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