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6] - 라이언 필립
2000-02-22
글 : 김현정 (객원기자)
향기로운 그 입술, 청춘을 입맞추었네

만나는 여자들마다 녹아내렸다던 전설의 돈 주앙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먼지 한점 섞이지 않은 햇살 같은 소년, 천상에서 추락한 듯한 천사의 얼굴. 옆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이마와 코와 턱의 선이 얼마나 완벽한 각도를 그리며 떨어지는지 알 수 있는 라이언 필립(25)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에 영감을 주었던 소년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향기를 품은 그 입술이 무언가를 호소할 때, 하늘이 내린 천재 미켈란젤로도 욕망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에서 무심하게 드러내는 그의 나체는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유혹이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소년이 순진무구해 보일 때는 조심해야 한다. 짧게 곱슬거리지만 짓궂지 않은 머리카락과 키스의 자취가 남아 윤기있게 빛나는 입술은 신의 특별한 은총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는 결국 인간이다. 독을 품지 않은 아름다움이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언뜻 보기에 그저 금발의 미소년일 뿐인 필립이 벗고 뒹굴고 신음하는 R등급(미성년자관람불가) 10대 영화에 주로 출연해온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필립은 조각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자신의 미를 과시하지 않는 에드워드 펄롱이 아니다.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 속에서도 유혹을 모르는 <영 인디아나 존스>의 숀 패트릭 플래너리와도 다르다. 그는 스물다섯 나이에도 10대처럼 어려보이지만, 10대로 보이는 육체에서도 질식할 것 같은 관능을 뿜는다. 아버지의 성적 환희를 위해 새어머니와 정사를 벌이도록 강요받는 <리틀 보이 블루>의 지미는 바로 그런 소년이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의 세바스찬이 조신한 여고생들을 휩쓰는 플레이보이라면 지미는 성인여성들이 비밀스럽게 욕망하는 필립의 뒷모습을 드러낸다. 바라만보아야 하므로 한숨지을 수밖에 없는 그 보송한 엉덩이의 매혹을.

동시에 그는 남성의 시선도 고정시킨다. <다비드>가 남성들이 흠모하는 조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게이로 출발한 필립의 경력도 쉽게 이해가 간다. 1992년 필립은 하이틴 드라마 <One Life to Live>의 게이 빌리 역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어 97년에도 급진적인 감독 그렉 아라키의 <노웨어>에 게이로 등장했다. 아직 스타가 아닌 청춘 배우에게 이것은 모험이다. 게이를 사랑하고 싶은 여성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라이언 필립이다. 자신있게 빛나는 눈빛을 잠시 버리고 애절하게 바라보면, 순결을 서약한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의 아넷도 무너져버리고 만다.

라이언 필립은 결코 브래드 피트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될 수 없다. 디카프리오와 달리 그의 반항은 좀더 강렬한 유혹을 위한 것이다. 독기를 품었다지만, <칼리포니아>의 연쇄살인범 브래드 피트처럼 치명적인 독성도 아니다. 남자가 되기 직전의 어디쯤에서 멈추어버린 라이언 필립. 그 때문에 도리어 그는 모든 사람들이 쓰다듬고 핥아주고 싶어하는 스타가 되었다. 이쯤에서 어딘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라이언 필립도 알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누구도 그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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