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원작자와 감독이 만났을 때 [3] - <타짜>의 허영만+최동훈
2005-07-27
사진 : 이혜정
정리 : 김수경

“타짜는 화투장을 든 사무라이”


<비트> <사랑해> <타짜> <식객>의 창조자 허영만은 1947년생, 일명 해방둥이 세대다. <범죄의 재구성>으로 한국형 사기꾼 영화의 탄생을 알린 최동훈 감독. 그의 아버지도 1947년생이다. <비트> 이후 오랜만에 <타짜(타짜꾼의 준말,노름판에서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로 싸이더스와 재회하는 원작자 허영만과 이 작품을 연출할 최 감독은 이날 처음 만났다. <오자병법> 치병편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자주 되뇌던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幸生則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필사즉생의 ‘각오’, 행생즉사의 ‘방심’은 만화 <타짜>라는 우주를 꿰는 씨줄과 날줄이다. 지리산 두메산골에서 태어났고, 우연히 화투판에 뛰어들어 한순간에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주인공 곤. 그는 숨은 타짜 평경장을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도박판의 모든 것을 전수받는다. 30년간 자신이 그린 승부사의 세계를 집대성한 <타짜>의 아버지 허영만과 <타짜>의 시나리오 초고에 골머리를 싸맨 <타짜>의 다음 선수 최동훈 감독이 일요일 저녁, 안국동 선술집에 부자지간처럼 나란히 앉았다. 평경장과 함께 한 곤의 모습처럼 두 사람이 갓김치와 서산 막걸리를 오물거리며 나눈 <타짜>, 영화, 만화에 대한 ‘언어’의 수작(酬酌).

최동훈 | 백윤식 선생님은 평경장 역을 권해볼까 하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허영만 | 평경장은 드라마에서 기점이 되는 인물이지. 잘 어울릴 것 같아.

최동훈 | 평경장 멋지잖아요. 저는 그런 게 멋있어요. 꼰대가 뭔가를 가르쳐주거나 장렬히 전사할 때.

허영만 | 실은 우리는 술먹고 전사하지만. (웃음) 예전에 <비트> 쫑파티를 할 때였어. 한참이 지나고 김성수 감독인지 차승재 대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나한테 경례를 붙이면서 “한명 전사” 이러는 거야. 그러고보면 차승재도 상당히 저돌적인 것 같아. 우리는 소심해서 돌다리 두드리다가도 안 건너는데. 이 친구는 계산을 딱 끝내면 순식간에 건너는 거지. <범죄의 재구성>은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해보면, 좀더 감췄어도 되는 건데 싶어. 너무 빨리 관객이 눈치를 채버리는 면이 있어. 끝까지 감추고 가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최동훈 | 네, 그러고 싶은 욕심은 있었는데 영화 매체 특성 때문에 불가능했던 점이 있었어요.

허영만 | 하긴 설정상 1인2역이라는 암시가 있었던 점 때문에도 결말을 감추기에는 어려웠을 것 같아. 최 감독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어?

최동훈 | 임상수 감독님 밑에서 연출부를 하다가 데뷔했어요.

허영만 | 그게 중요한 것 같아. 처음 만나는 선생이 자기 인생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물론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첫 번째 선생을 잘 만나는 게 정말 중요해.

최동훈 |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저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지금은 임상수 감독님이 술친구라고만 하시지만.

허영만 | 악동 이미지이면서 문제작을 만들어내는 임 감독 같은 사람들이 영화계에서 아웃사이더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정을 받는 게 그 판이 발전한다는 징조야.

최동훈 | 예전에 백윤식 선생님도 임 감독님과 한 작품을 하셔서 “그럼 최 감독은 임 감독의 부하인가?” 하시기에, “부하라고 할 수 있죠”라고 했어요. (웃음) 기분 좋더라고요.

허영만 | 그래도 그건 좀 낫네. 산꾼들은 노예라고 하더라고.

최동훈 | 왜 노예라고 하나요?

허영만 | 전에 박영석이가 그러더라고. “저는 노예가 전국에 있어요.” 영석이가 원정 한번 다녀오면 수고했다고 뭐 하나씩 들고 줄줄이 서울로 올라와. 제주도 노예, 부산 노예. 산에서 살아남으려면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제 대장이어야 하니까 그런가봐.

최동훈 | <타짜> 1부 지리산 작두(이하 1부)를 영화화하기로 결정하신 특별한 배경이 있으신가요?

허영만 | 나는 1부로 고집한 적 없어. 창영화사 대표가 1부가 제일 적합하겠다고 했고, 차 대표도 1부가 제일 좋다고 하더라구. 항간에서는 4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긴 했어. 나로서는 1부를 성공해서 2, 3, 4부를 다 가면 좋지. (웃음)

최동훈 | 모든 게 제 책임이네요. 제가 1부를 망쳐먹으면 나머지가 나올 수 없으니까.

허영만 | 그럼 끝이지.

최동훈 | 저도 개인적으로 1부가 제일 좋았어요. 나머지 2, 3, 4부는 드라마가 아주 세고 복수극 느낌이 강해요. 그에 비해 1부는 본질적인 걸 담고 있어요. 일대기를 그리는데 그 속에는 한 인물의 선택이 드러나는 타이밍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평경장의 죽음을 앞에 두고, 곤이가 그만둘 수도 있잖아요? 이건 제 해석이지만 곤이가 수차례 선택의 순간에 놓이는 지점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허영만 | 시대상이 많이 반영되지만. 지금 세대들이 화투를 사실 잘 모른다. 고스톱이나 알지, 두장빼기는 잘 모른다고. 끗수를 가지고 승부하는 도박 자체를 아는 관람객이 얼마나 될까 싶어.

최동훈 | 그렇게 많지는 않겠죠.

허영만 | 트럼프를 소재로 한 외국영화들을 봐도 관객이 그것을 다 아는 게 꼭 중요하지는 않을 것 같아.

최동훈 | 원작에 대사로 나오지만 이게 꽃싸움이잖아요. 아마 영어제목도 그렇게 될 텐데. 워 오브 플라워. 마지막에는 거의 사무라이들이 대결하는 느낌이죠.

허영만 | 노름꾼들 인터뷰하면서 느낀 게 칼 대신 화투짝 들고 전쟁을 하는구나 싶었어. 칼싸움은 일합, 이합이 되겠지만 이건 화투장 한장 잘못 던지면 파멸이니까. 그들 말로는 큰 판을 앞두고는 너무 긴장하니까 마약까지 한다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큰 판이 많이 일어나지 않아. 특히 옛날에는 전쟁 직후에 무슨 돈이 있었겠어. 실제로 80년대 부동산 투기 붐이 일고 오히려 큰 판이 많았지. 극중에 염전 훑으러 가자고 하잖아. 하지만, 염전 가봐야 거기 뭐 돈이 얼마나 있겠어?

최동훈 | 예전에는 좀 되지 않았을까요?

허영만 | 한판해서 손을 털고 나올 정도는 아니었겠지. 원래 돈이라는 게 9억원 있으면 10억원 채우려고 하는 거야. 한판해서 1억원 따면 다음에 한번만 더하면 바로 2억원인데 하는 생각에 끌려다니는 거지. 그게 인생이야.

최동훈 | 실은 아버지가 소금도매업을 하셔서 우시장처럼 현금을 그 자리에서 거래하는 걸 몇번 본 적이 있어요.

허영만 | 지금도 활동하시고?

최동훈 | 네. 염전을 하시는 건 아니고 도매만. <남극일기> 소금, 저희 아버지가 다 까신 겁니다. (웃음) 아드님은 뭐하시나요?

허영만 | 직장 다녀.

최동훈 | 왜냐하면 저희 아버지도 47년생이라서요.

허영만 | 아 그래? 그런데 이 놈은 월급타면 아버지한테 용돈을 안 줘.

최동훈 | 아버님이 더 잘 버시니까. (웃음) 저희 아버지가 좀 까지셔서 결혼을 일찍 하셨데요. 농으로 너랑 나랑 띠동갑이다. 이러시거든요.

허영만 | 우리 아버지는 만약에 살아계셨다면 정말 좋은 술친구가 됐을 것 같아. 술 좋아하셨거든.

최동훈 | 감독 데뷔하는 아들을 위해 극장에 찾아가서 표를 100장이나 사셨어요. 장사꾼이니까 물론 깎으셨죠. 그리고는 그걸 지인들에게 다 돌렸지만 제 영화를 거의 제대로 이해하신 분들은 별로 없었어요. 아버지랑 선생님 인상이 되게 비슷하세요. 아버지는 살빠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으세요.

허영만 : 난 예전에는 이스트우드였는데 사람들이 지금은 폴 뉴만이래.

최동훈 | 곤이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셨나요?

허영만 | 시발점은 <48+1> 이후에 도박만화를 다르게 해보고 싶었어. 와중에 출판사 사장이 타짜 한 사람을 안다는 거야. 함양에 은퇴한 노름꾼이 있는데 자기가 신기한 걸 봤다고. 사실 노름꾼은 술을 좋아해도 절대 취하면 안 되거든. 그런데 그 사람은 술을 짝으로 갖다놓고 마시는 사람이야. 어느 날 친구들이 와서 술대작을 안 해주고 고스톱만 치고 있으니까. 이 사람이 화투판에 다가가서 “팔광 없어진다” 하면서 쓱 짚더래. 그게 없으면 화투를 칠 수 없으니까. 친구들이 온몸을 다 뒤지고 생난리를 치는데도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판이 깨졌다고 하더라고. 만나러 갔더니 그 사람 말고 한 사람이 더 있어. 둘 다 깡패지. 돈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도 돈을 온전히 가져나오기가 더 어려우니까. 만나보니 극중에 묘사된 그런 사람들이더라고.

최동훈 | 은퇴한 노름꾼이라는 개념도 특별한 것 같아요.

허영만 | 거기서 배경이 나오는 거지. 짝귀 같은 사람도 실제 모델이 있어.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노름꾼들이 재밌는 말을 하더라고. 그 사람들 고민이 경마를 못 끊어서 버는 걸 다 갖다 바친다는 거야. 제각기 약점이 있는 거지.

최동훈 | 어떤 사람은 여자, 어떤 사람 경마인 거죠.

허영만 | 그렇지. 나중에 트럼프를 할 때는 이윤희라는 친구한테 도움을 받았지.

최동훈 | 네, 그분은 <범죄의 재구성> 때 저도 뵌 적 있어요.

허영만 | 그 친구가 소개해준 사람이 많이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 행방불명이야.

최동훈 | 아마 감옥에 가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저도 <범죄의 재구성> 준비할 때 그런 경험이 있어서요.

허영만 | 그렇겠지, 안 그러면 이렇게 연락이 안 될 리가 없어.

최동훈 | 제가 취재 때 만난 화투치는 분은 “화투의 꽃은 기술자가 아니라 설계자다” 그러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정 마담 같은 사람이 설계자잖아요. 언제나 설계자가 주도하는 거죠.

허영만 | 설계자가 돈을 만드니까. 일단.

최동훈 | 설계자(사기도박을 위해 돈을 대고, 호구들을 불러모으고 화투판을 짜는 사람)가 프로듀서이고 기술자(일명 선수. 화투를 치는 사람, 타짜)는 감독이죠.

허영만 | 기술자가 큰돈을 버는 경우는 거의 없어. 실제로 요즘처럼 여러 사람이 작업에 들어가지 않을 테고. 요즘 같으면 1억원을 따도 사전작업, 전주, 뭐 떼주고 하면 기술자가 갖는 돈은 극히 적다고. 그러니 만날 기술자는 전주나 설계자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고. 옛날에는 기껏해야 주먹쟁이나 하나 달고 다녔겠지. 내가 알던 한 형제는 하나는 주먹이 끝내주고, 하나는 화투를 기가 막히게 다루는 사람이었어.

최동훈 | 환상의 조합이네요.

허영만 | 우리처럼 배짱 적은 사람들이 화투를 치다가 돈을 땄다. 상대가 칼 하나 팍 꽂으며 “너 임마 만화나 잘 그리지, 그냥 가” 하면 나와야지 뭐. (일동 웃음) 깡다구 싸움인 거야.

최동훈 | 주먹잡이에서 타짜가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허영만 | 왜냐하면 그들도 실제로 화투를 다룰 줄은 알거든. 기술자가 떨거나 하면 ‘차라리 내가 해’ 이렇게 되는 거지.

최동훈 | 실제로 화투나 도박을 잘하시나요?

허영만 | 우리 집안은 원래 화투를 안 쳐. 술마시는 걸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끼리는 엄포만 슬쩍 놓지. 친구들끼리 칠 때는 “나 들어가면 니들 다 거지 된다” 그러는 거지.

최동훈 | 대체로 믿으시죠?

허영만 | 응, 그러다가 언제 실제로 한번 붙었는데 그날따라 친구 셋이 나한테 다 털린 적은 있어. 실제로 고스톱 치면 승률은 5.5 대 4.5쯤이었던 것 같아. 고스톱 제일 쉽게 치는 법이 하나 있긴 해. 뒷장을 두장 집어오는 거야. (일동 웃음) 우리끼리니까 칼 꽂고 그럴 일도 없고. 들키면 장난이고. 남이 점수나면 섞어버리면 되니까.

최동훈 |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실제로 사용해보신 적이?

허영만 | 그러면 내가 너무 우스울 것 같아서 아직 써보진 못했어. 일반인들은 이것에 제일 쉽게 속아. 왜냐하면 남이 패 떼어가는 것은 안 보고 자기 패만 본다고. 다섯장을 가져가도 몰라. (웃음) 남을 알고 자신을 알아야 하는데 자기 패만 연구해. <타짜>는 송강호씨가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노름꾼이 너무 예쁘면 안 되니까. 저놈을 죽여야 내가 사는 거잖아. 그 판에 정의가 어디 있어. 히틀러가 이겼으면 다른 놈이 전범되는 거야. 나는 돈을 잃었지만 의리를 지켰다. 그건 똥 같은 얘기지. 의리 택한 놈이 왜 노름판에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런 점이 있어야겠지만. (웃음)

최동훈 | 영화도 그걸 적나라하게 보여주게 될 것 같아요. 영화 <타짜>도 휴머니티는 없어요. 오히려 휴머니티가 그 인물의 발목을 잡거나 약점으로 작용하게 될 거예요. 자비롭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행동을 하고 대가를 치르는 거죠. <타짜>는 저도 사연이 많아요. <범죄의 재구성>을 끝내고, 1974년에 있었던 카빈소총 사건을 소재로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졌어요. 그전에 <타짜>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걸 어떻게 영화로 해요?”라고 했죠. 그게 1년 전. 그리고는 금고털이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차 대표님이 손을 꼭 잡으시며 <타짜>를 하라고 하시기에 다시 읽었죠. 쓰러지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밝힐 수 없는 몇몇 조건이 가능하면 하겠다고 말했어요. 차 대표님이 ‘그래라’ 하시더라고요. 주위에서 일제히 그러더군요. “너는 죽었다, 이제.” 이유는 굉장히 많은 인물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타짜> 1부에만 80여명이 비중있게 나와요. 제임스 엘로이 원작의 <LA 컨피덴셜>에는 200명이 나와요. 그 소설과 영화를 대조해서 보며 3개월을 보냈어요.

허영만 |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구나.

최동훈 | 영화는 숏게임인 것 같아요. 운동경기로 말하자면 결승전 한판. 인물을 정리하면 그 사람들이 달릴 수 있도록 드라마라는 엔진을 다는 거죠. 요즘 고민은 화투를 어떻게 예쁘게 찍을 것인지 고민하는 거죠. 도박이란 무엇인가가 보일 수 있도록. 허 선생님도 출연하셔야죠?

허영만 | 지리산이 배경이니까, 박영석이랑 나랑 둘이 지나가다가 여기는 어디요? 이런 걸 하면 되지 않을까. 산꾼(등산가)들이니까.

최동훈 | 만화가로 사시는 건 어떠세요?

허영만 | 평생 한 가지 일만 했다는 것도 축복받은 거지.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면 등대지기 했을 거야 분명히.

최동훈 | 콘티나 숏은 어떻게 준비해서 들어가시는 편이세요?

허영만 | 전체 이야기의 시작과 결론을 정해놓고, 중간은 50∼60%는 정해놓고 들어가지. 안 그러면 흔들려.

최동훈 | 제가 좋아하는 허 선생님 그림은 낭패의 순간을 포착하는 장면이에요.

허영만 | 화실에 마스크라는 화일이 다섯권 정도 있어. 신문에서 스크랩한 각계각층의 사람들 얼굴만 모아놓은 거지. 만화로 그냥 과장해서 만들어 그리지 않고, 살아있는 얼굴에서 특징을 잡아내서 표현해야 하니까. 평경장도 실제 얼굴을 토대로 만들었어.

최동훈 | 제가 받은 느낌은 허 선생님 그림들을 보면, 이 인물을 촬영할 때는 트랙아웃, 트랙인을 해야지 그런 느낌이 딱 들 때가 있어요. 그런 건 메모해놓죠. 하지만 기차의 뒤칸도, 담배를 필 수 있는 통로도 없어져서 큰일났어요. 어디서 찍나 걱정이에요.

허영만 | 그런 기차가 없나?

최동훈 | 철도청에서 모두 없애버려서요. 사실 <타짜>는 송강호씨에게 먼저 갔어요. 송강호씨는 박찬욱 감독이 하면 하겠다고 했고요. 박찬욱 감독은 도박을 몰라서 거기 서스펜스가 있다는 걸 모르세요. 물어봤더니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거절하셨다고.

허영만 | 사실 알아야 좋은 건 아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을 만든 이장호 감독은 1루로 가면 1루타, 2루로 가면 2루타, 3루 3루타인 줄 아는 사람이다. 실제로 이현세도 야구할 때 3루로 뛰어가는 인간이다. 내가 목격자잖아.

최동훈 | <타짜>는 10대들은 잘 모를 것 같아요. 20∼30대부터 좋아할 것 같은데.

허영만 | 관객층이 30∼40대로 가면 3번씩 봐줘야 하는 거 아냐. (웃음). 10대를 노리지는 말자고.

최동훈 | 권총이 나오는데 배경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세요?

허영만 | 전쟁을 겪은 나라니까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라고 보는데?

최동훈 | 고다르가 말한 “총은 발사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봐도 드라마에 총이 나오는 것은 도움이 되는 부분이죠.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총을 구하는 구체적인 배경도 마련되었고, 그 총은 언젠가 영화 <타짜>에서 발사돼요.

허영만 | 그 내용은 좋은데, 나중에 관객이 추리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해. 관객의 아이큐를 믿고 불필요한 노출은 피하는 게 좋은 거야. 원작은 일단 영화로 넘어가면 원작자의 손을 떠나는 거야. 그쪽 전문가들이 있으니까. 포기는 아니고 기대는 항상 있지만 내가 지나치게 간섭하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중간중간에 연락이 잘 안돼. 나 모르는 사이에 많이 진행이 되고 이런 상황이 되기 쉬우니까. 관여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 지금도 최 감독이 확정된 걸 처음 알았어. 최 감독이 물망에 오른 건 알았지만. <48+1>까지만 하더라도 충무로에서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고, <비트>는 아카데믹한 영화공부를 했고 젊은 사람들이었다는 차이였겠지. 영화계가 앞으로도 계속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러한 변화를 통해서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야. <48+1>의 경우에는 영화화를 통해 만화를 다른 매체로 발전시키는 것 자체만 해도 고맙고 영광이었어. 지금은 좀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있기도 하고. 사실 영화화되는 작품이 원작의 스토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야. 가장 궁금한 것은 원작만화를 얼마나 벗어났는가 하는 거야.

최동훈 | 저는 그 부분에는 자신있어요. 선생님에게 저는 최소한 시나리오에서 이것은 있다라고 보여드릴 건 있어요.

허영만 | 최 감독의 각색에 대한 내 이야기는 그저 참조만 하면 돼. 공은 최 감독에게 넘어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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