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0년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 [6] - <가위> 外
2000-01-11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가위>

이런 영화

혜진의 친구 은주가 가세한 이후로, 서클 멤버들의 인생항로가 심각하게 꼬여가자, 선애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은주의 등장과 맞물렸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속에서 죽음을 부르던 불길한 아이 경아를 떠올린 선애는, 지금의 은주가 과거의 경아라는 증거를 잡아낸다. 충격 속에서 밤거리를 헤매던 혜진은 은주(경아)가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걸 본다. 2년 후, 모임의 멤버들은 하나둘 비참한 죽음을 맞고, 남겨진 혜진은 은주가 죽던 그날 밤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불길한 아이, 검은 고양이, 악몽 그리고 거울. 공포 영화 마니아가 아니라도 짐작할 수 있는 공포의 키워드를 전면에 배치한 <가위>는 그래서, 낯설지 않은 공포 영화로 다가온다. 피범벅과 사지절단의 충격요법 대신, 감성을 파고드는 둔한 공포와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화면으로 관객을 조여올 것이라고. 젊은 친구들 7명이 이끌어가는 이야기인 만큼, 또래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모던하고 세련된 영상을 만드는 것 또한 중대 과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삼부엔터테인먼트 시절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김익상 프로듀서가 이끄는 뮈토스 필름으로 터를 옮겨왔다.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까>에서 정지영 감독의 조연출을 거친 안병기 감독의 데뷔작. 15억원 안팎 규모로, 튜브 엔터테인먼트에서 전액 투자한다.

감독 한마디

“데뷔를 준비하면서 나의 고민은 할리우드영화와 대적할 수 있는 우리 영화는 어떤 장르일까 하는 것이었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크림> <여고괴담> 등의 성공을 바라보며, 이제 공포 영화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일종의 자신감을 얻었다.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정서와 부합하면서 현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제대로 파고드는 그런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다. ‘죽음을 부르는 그녀’라는 모티브는 매혹적이다. <가위>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적 편견으로 고립된 한 여인과 그를 둘러싼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포라는 장르에 담아 경악할 만큼 실감나게 그려낼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가위눌림’처럼 꿈과 현실이 뒤섞인 몽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관객이 어느새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빨려드는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차츰차츰 긴장의 수위를 높여가며 한꺼번에 터지는 스릴과 긴장, 그리고 수위를 높인 전율까지, 무시무시한 재미를 주는, 철저히 관객을 위한 영화를 하고 싶다. <나이트메어> 시리즈처럼 <가위> 시리즈를 만들 수 있길 바란다.”

<유린네이션>

이런 영화

서울에 우인이란 남자가 산다. 동사무소 말단공무원인 그는 남다른 집안 환경 때문에 사무실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도쿄에는 아야라는 10대 소녀가 산다. 화목한 집안의 분위기가 마땅치 않은 아야에겐 구두를 사모으는 게 유일한 취미다. 삶의 거처는 전혀 다르지만, 이들은 똑같이 존재의 벽에 갇혔다. 어느 날 아야는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우인은 인터넷에 뜬 아야의 육체를 탐닉한다. 손끝 하나 닿지 않은 채로 그들의 격렬한 만남이 이뤄지는 곳, 그곳이 바로 포르노사이트 ‘유린네이션’이다. 이재용 감독은 상업 영화의 틀에 갇혔던 데뷔작 <정사>에서 훌쩍 달음질쳐 ‘이상한 나라’ <유린네이션>으로 들어간다. <유린네이션>은 실물을 보기 전엔 감잡기 어려운 영화처럼 보인다. 인물이나 내러티지 구성이 비관습적이며, 이야기체 영화에서 벗어나있다. 따라서 감독 하기나름으로 얼마든지 다른 영화가 나올 법한데 감독이 <정사>에서 보여줬던 재능, 곧 이야기의 상투성을 잘 짜여진 미장센과 캐릭터, 음악과 편집으로 돌파한 화면 장악 능력을 생각하면 <유린네이션>의 세계가 그의 의도대로 구축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 일본과의 합작을 타진 중이며, 순제작비 15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감독의 한마디

“<유린네이션>은 첫작품에 비해 좀더 내가 하고 싶었던 영화에 가까운,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다. <유린네이션>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써 컴퓨터시대를 살아가는 두 사람을 통해 젊은이들의 만남, 사랑, 그리고 섹스의 한 단면을 보여줄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가깝지만 먼 서울과 도쿄, 두 도시의 이야기다. 두 도시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만큼 어느 도시든 상관없지만 서울과 도쿄을 선택한 건 무척이나 닮아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도시라서다. 우리에게 일본을 상징하는 도시로써 도쿄는 금지된 욕망과 관능이 흐르는 도시로 여겨지기도 한다. 소재가 파격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자극적인 것들로 가득찬 이 시대에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나 누드사진은 더이상 파격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포르노 사이트는 극중 인물을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중심은 아니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우연한 만남에 늘 관심에 있었다. TV를 지나 인터넷이 환경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는 도무지 만날 것같지 않은 낯선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영화다.”

<단적비연수 : 은행나무 침대2>

이런 영화

세기말을 <쉬리>로 장식한 강제규 프로덕션의 새해 첫 프로젝트는 96년작 <은행나무 침대> 후속편 <단적비연수: 은행나무 침대2>. 연출은 강제규 감독과 10년 동안 고락을 같이한 신인 박제현 감독이다. <은행나무 침대>의 속편격이지만 내용은 무려 천년을 거슬러 올라간 태고적 이야기다. 전생의 인연이라는 모티브에서 시작해 드라마틱한 서사구조에 첨단 테크놀로지를 더해 새로운 판타지 멜로를 선보인다는 구상이다. <은행나무 침대>의 궁중악사 종문, 미단 공주, 황 장군, 현세의 선영 등 네 인물의 전생을 만들어내고, 전생에 네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했는지를 그린다. 설정된 캐릭터는 ‘이별마저 받아들이는 한없는 사랑’-단(김석훈), ‘운명을 거스르는 절대적이고 비장한 사랑’-적(설경구), ‘이룰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슬픈 사랑’-비(최진실), ‘소유할 수 없는 애절한 사랑’-연(김윤진), ‘천하를 지배하기 위한 야심찬 계획과 뜨거운 열정을 지닌 여족장’-수(이미숙) 등이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정령의 ‘신산’아래 매족과 화산족이라는 두 부족이 살고 있었다. 천하를 탐한 매족은 화산족과 전쟁을 치르고 신산의 저주를 받는다. 수백년 후, ‘비’는 화산족의 피를 받은 ‘수’에 의해 매족의 희망으로 태어난다. 야욕을 가진 ‘수’는 천하를 지배할 욕심으로 화산족의 피가 흐르는 딸 ‘비’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 화산족에 살게 된 ‘비’는 같은 또래의 무사 ‘단’과 ‘적’의 우정에 끼여들고, 왕손인 ‘연’과는 친구가 되지만 이들 앞에 펼쳐지는 비극적인 사랑과 운명이 영화의 내용이다. 서해안 매립지에 만드는 수천평의 갈대밭, 제주도 오픈세트와 함께 경남 산청에 메인 세트를 지어 촬영한다.

감독 한마디

“<은행마무 침대>에 나온 네 인물을 태고 이야기로 거슬러가 그들의 운명적 사랑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영화의 시작이다. 이들의 비극적 사랑은 무겁고 큰 배경이 아니라 야욕을 가진 여족장 수의 개인에서 출발했다는 설정이다. ‘적’과 ‘단’ 사이에 ‘비’가 끼여들면서 이들의 우정은 파행으로 치닫고, ‘적’은 집요하게 끝까지 사랑하는 파격적인 사랑을, ‘단’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희생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다. 태고의 이야기라 비주얼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미술쪽에서 부담이 크다. 상상력으로 그려야 하는데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액션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드라마, 인물이나 화면 등 영화적인쪽의 부담은 많이 덜었다. 개인적으로는 강제규 필름 이름으로 쌓아온 성과에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나는 예술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다. <쉬리>가 닦은 토대 위에서 철저하게 관객에게 재미있는 영화로 서비스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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