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99 여배우 트로이카 [3] - 전도연
1999-02-08
글 : 조종국
90년대 말 스크린을 적시는 눈물의 여왕

여배우에게 대단히 실례되는 말이지만, 전도연(26)은 미모가 대단히 뛰어난 배우는 아니다. 이마는 적당히 나와 짱구로 불리고, 모델 같은 늘씬한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다.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강하지 않고, 10대 청소년들이 숭배할 만한 메리트도 약하다. 그런데 왜 충무로의 제작자들은 캐스팅 0순위 그룹에 그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걸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접속>에 전도연을 캐스팅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명필름의 심재명 이사는 “발군의 미모가 아닌 것은 전도연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배우로서 배역의 선택 폭이 넓고, 다양한 캐릭터 개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외모의 영화적 이미지도 좋고 감수성이 뛰어나다. 시나리오를 논리적·지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해석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배우로서의 자질은 높이 살 만하다는 말이다.

‘전도연은 이제 시집만 잘가면 되겠네’하며 TV에서 <우리들의 천국>이나 <종합병원> <젊은이의 양지>에 혼을 놓고 있던 관객들에게 <접속>의 전도연은 의외였다. 평범해 보이는 이미지 탓에 의외성은 더 커 보였다. 의외성은 무한한 잠재 가능성이었고, 전도연은 무섭게 확인해주고 있다. 한 배우가 연속 출연한 두편 모두 80만(<접속>), 70만명(<약속>)씩의 관객을 불러모은 일은 적어도 한국영화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물론 이 영화들의 관객 흡인력이 모두 전도연의 힘은 아니겠지만 그의 연기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전도연과 영화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필요충분조건 구실을 한 셈이다.

<접속>은 전도연의 ‘팔자’를 바꿔놓은 영화다. 그를 캐스팅하는 것에 부정적 의견도 있었고, 막상 촬영이 시작됐을 때도 충무로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TV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영화에 출연했다가 망신당한 반짝 스타가 한둘이 아니었다. 또 연기력보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가공되는 TV연기를 우려했다. TV에서 잔뼈가 굵은 전도연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유는 좀 달랐다. TV에 얼굴 비추는 횟수가 뜸해지면 하루아침에 ‘갈 수 있다’고 걱정했던 것. “TV는 관객의 반응이 즉각적인 데 비해 영화는 터울이 길어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도연은 <접속> 촬영중에도 적잖이 조바심을 냈던 것이 사실이다. 연일 차에서 새우잠을 자며 촬영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뭐해?’라고 건네는 인사 듣는 것이 초조함을 더했다”. 하지만 전도연이 마치 산중과 속세를 가르는 듯 영화와 TV의 경계를 넘어 여유를 찾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접속>의 흥행 돌풍은 무서웠다. 영화, TV드라마는 물론 온갖 출연 제의가 쏟아졌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전도연에게는 분수령이었던 셈이다. ‘잘나갈 때 더 잘나가기 위해 애쓰는’, 급부상한 스타들이 뻔히 알면서도 피해가지 못하는 함정을 전도연은 가뿐히 뛰어넘은 셈이다. 무수한 출연 제의를 물리치고 연기 욕심 하나로 난데없이 가극 <눈물의 여왕>에 출연했다. “<접속>을 본 관객의 호응이 좋다고 즉각 반응하는 것보다 한풀 죽이고 신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극이나 하고 있을 때냐”는 반조롱을 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약속> 개봉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약속>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비슷한 멜로영화에 연달아 나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멜로의 여왕, 눈물의 여왕으로 불리기보다 연기로 승부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내 마음의 풍금>을 고른 것은 감성이 맞아서다.

전도연이 출연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머리 굴려서 계산하기보다는 감성에 많이 기대는 편이다. <약속>이나 <내 마음의 풍금>도 ‘감성적인 판단’이었다. 이 대목에서 <접속>을 연출한 장윤현 감독의 충고에 귀 기울일 만하다. 장윤현 감독은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 좀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과제를 던졌다. 느낌과 감성에 기대 출연작을 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연기 세계가 정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전도연이 ‘벗는 영화’ 찍는다!”는 소문으로 수군거린 적이 있다. 완전히 사실무근은 아니다. 어떤 작품을 염두에 두거나 제안을 받고 출연 결정은 한 것은 아니지만 벗는 영화에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다. 아니, 출연하고 싶어한다. 자극을 받은 것은 <위대한 유산>과 <정사> 때문이었다. “영화가 의미있고, 벗은 몸과 섹스신을 예쁘고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 영화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전도연은 이제 나름의 연기관을 주장할 만큼 성숙했다.

내가 본 전도연

장윤현(<접속> 감독): 스타성이나 미모, 화려함으로 승부하지 않아도 연기로 대성할 연기자.대립되는 이미지를 조화시킬 줄 아는 연기는 쉽지 않다. 한석규를 높이 사는 것은 그런 점에서 거의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도연도 예를 들어 기쁨과 슬픔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대립이미지를 조화시킬 줄 아는 배우다.

이영재(<내 마음의 풍금> 감독): 화려한 젊음과 미모가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와 넓은 연기폭으로 잠재된 무한한 변신의 가능성을 가진 배우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긴 생명력을 예감한다. 연기하는 전도연은 '예쁜 여우' 같다.

출연작

<접속> 감독 장윤현 출연 한석규, 전도연/ 1997년/ 80만명 -쇼핑 호스트로 일하는 수현 역. 전도연이 첫 출연한 영화로 극중 동현과 컴퓨터통신으로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 사이의 소통을 그린 멜로영화.

<약속> 감독 김유진 출연 박신양, 전도연/ 1998년/ 70만명 -주먹세계의 보스를 사랑하게 된 여의사 희주 역. 통속적인 영화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의 연기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칭찬을 들었다.

<내 마음의 풍금> 감독 이영재 출연 이병헌, 이미연, 전도연/ 1999년/ 3월 개봉예정 -열일곱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선생님을 사랑하게 된 홍연 역. 더이상 현세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의 심성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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