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강추! 부산영화제의 한국영화 7편 [1]
2005-10-0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일 한국영화 기대작 7편

세상의 모든 프로그래머와 관객은 자국영화가 빛을 발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10주년을 맞이한 올해 부산영화제는 어떨까. 프로그래머와 관객이 꿈꾸는 바람, 한국영화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장으로 화할 수 있을까. 다행히도 올해 <씨네21>이 ‘발견’한 한국영화들은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 특히 ‘새로운 물결’ 부문의 작품은 한국 영화계가 마르지 않는 우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든든한 행보를 보여준다. <썬데이 서울>은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벗어난 키치적 감수성의 탈(脫)장르 오락영화이며, <용서받지 못한 자>는 휴가 나온 병사의 현재와 과거를 하나의 올무로 엮어 한국 남성의 원죄의식을 폭로하는 놀라운 데뷔작이다. 내성적인 고교 수영선수의 성장을 그린 <피터팬의 공식>은 10대영화의 상투성을 비웃듯 잔인한 성인식의 진실을 관객에게 던져준다. ‘한국영화 파노라마’ 부문의 세 작품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여자, 정혜>의 이윤기 감독은 <러브토크>를 통해 데뷔작의 비범함이 가짜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두명의 부산 출신 감독 오석근과 전수일은 그들의 최고작인 <연애>와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으로 원숙한 작품세계의 정점을 보여준다. ‘크리틱스 초이스’ 부문에서는 300만원으로 만든 175분의 대작(?) <좋은 배우>를 만날 수 있다. 독립영화계에서도 독립한 채 영화작업을 하고 있는 신연식 감독의 작품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다.

여기에 소개하는 7편의 작품들을 제외하고 2005년 한국영화의 베스트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것이다. 10살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느 해보다도 풍족한, 월척만을 싣고 귀항한 한국영화의 만선이다.

기억과 시간의 삼부작 마지막편

전수일 감독의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아주머니, 제가 어디 살았는지 아세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에서 유년 시절의 집을 찾아 종일 마을을 헤매다 결국 허탕을 친 남자는 술에 취해 늙은 술집 여주인의 손목을 붙들고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하소연을 한다. 집을 아예 못 찾거나 술주정까지는 아니었어도, 언젠가 근 20여년 만에 고향 속초를 찾았을 당시 전수일 감독은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인 경험이 있다. 유년 시절의 집이자 아버지가 운영하셨던 사진관 자리를 힘겹게 찾아야만 했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크게 변하지 않은 고향 마을이었지만, 그의 기억은 많은 점에서 흐릿했다. 그 경험은 신작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부추긴 계기가 됐다. 이른바 전수일 감독은 이 영화를 “전작 <내 안에 우는 바람>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와 함께 기억과 시간의 삼부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한다.

부산에 사는 영화감독 상규(안길강)는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고향 속초에 사는 숙모가 6·25 때 헤어진 숙부를 찾으러 중국 옌지에 가는데 동행이 되어달라는 전갈이다. 속초로 가는 길에 상규는 고속버스 안에서 본 영화(김선재)에게 관심을 둔다. 그리고는 그가 묵는 속초 어느 민박집에서 그녀를 다시 만난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으러 태백에 가는 영화를 상규는 무작정 따라 나서고, 상규와 영화는 폐촌과 폐광이 되어버린 지역을 함께 돌아다닌다. 하룻밤을 같이 지낸 뒤, 영화는 상규를 떠나고, 상규도 숙모가 실향민을 상대로 한 사기범에 걸려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부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들려오는 숙모의 부고에 상규는 다시 속초를 찾는다.

“실제로 속초에 사는 사람 90%가 실향민이다. 내 아버지쪽도 실향민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민박집도 실향민들이 많이 사는 아바이 마을에 있는 것이다. 속초는 내게 역사적인 장소이고,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다.” 이 말은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 감독의 개인사적인 맥락으로 얽혀 있어도, 일기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 그의 전작들과 크게 차이를 갖는 지점도 여기다. 전수일 영화의 주인공들은 깊은 관념의 이미지들과 함께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파고드는데, 이번 영화의 경우에는 그 질문을 감싸안는 한축이 역사라는 거대한 실체다. 게다가 그 역사와 상관을 맺으면서 도리어 개인의 관념도 풍요해진다. 그래서 이 영화에 사용된 상징의 중핵은 감독의 이런 설명에서 알 수 있다. “부모 세대들은 이북에서 내려와 고향을 잃어버리고, 영화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하고, 여주인공은 동생을 찾지 못한다. 그건 어떤 잊혀졌던 걸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또 태백과 탄광지역은 곧 사라지는데, 그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얼마간 있다. 그런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과 부유함에서 뭔가 전달하고 싶었다.”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하기 힘든 어둠 직전의 시간을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건 자신의 존재를 투명하게 인식하는 짧은 시간이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는 제목은 그런 뜻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에는 ‘개인과 역사 사이의 시간’까지 겹쳐 흐르고 있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에 나온 <내 안에 우는 바람>

<내 안에 우는 바람>

영화가 시작하면 소리없이 한 화면이 보인다. 주인공 영화감독은 그 장면을 편집 중이다. 다름 아니라, 이 영화는 전수일 감독의 첫 장편 <내 안에 우는 바람>의 장면들이다. 소년, 청년, 노년의 세 시기를 상징적으로 묶어낸 영화였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기억과 시간에 관한 삼부작으로 명명했듯, “영화를 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는 전수일 감독은 삼부작의 첫 시작을 그 첫 번째 작품의 몇몇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을 보며 바닷가에서 담배 피우는 소년, 과거의 기억으로 흘러들어가는 청년의 클로즈업. 영도 다리 밑에서 불을 쬐는 노인의 모습 등이다. 감독은 “이 삼대에 걸친 모습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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