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강추! 부산영화제의 한국영화 7편 [3]
2005-10-0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글 : 이다혜

‘믿거나 말거나’식의 유쾌한 3색 범벅

박성훈 감독의 <썬데이 서울>

<썬데이 서울>은 가십 기사와 반나체 사진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잡지다. 그러나 그 세대에 속하는 69년생 박성훈 감독은 <썬데이 서울>을 신문기자들이 놓치고 지나간 사건의 이면을 취재하여 재미있는 르포 기사도 썼던 잡지로 기억하고 있다. 도색영화로 오인받을지도 모르지만, 그 제목을 선택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사기꾼과 양아치 기질이 농후한 두 청년이 목격한 세개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영화 <썬데이 서울>은 평범한 척 시치미 떼고 시작하여 허풍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첫 번째 이야기는 패기없고 나약한 고등학생 도연(봉태규)의 성장담이다. 학급 짱에게 수모를 당하며 살던 도연은 열여덟살 생일을 맞이하면서 몸에 털이 나고 닭고기를 탐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충격에 빠진 도연에게 부모는 우리 가족이 사실은 늑대인간이며, 동족하고만 짝짓기를 해야 한다고 설명해준다. 도연은 절망에 울부짖지만, 뜻밖의 해피엔드가 그를 맞이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공포영화에 가깝다. 한적한 국도에서 자동차가 고장나자 남자(박성빈)는 전화를 빌리러 외딴집에 들어간다. 혼자 집을 보고 있던 무표정한 소녀와 죽음의 공포가 무엇인지 설파하는 남자. 마침 다이얼이 달린 구식 TV에선 연쇄살인자에게 살해당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세 번째는 황당무계한 무협판타지다. 오토바이 뒤에 관을 매달고 무예림으로 찾아든 청년 태풍(김수현)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낮이고 밤이고 무예를 연마한다. 무예림 관장과 태풍 사이엔 누구도 모를 비밀이 숨어 있다.

<품행제로> <S다이어리>의 프로듀서였던 박성훈 감독은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세 가지 에피소드가 모두 상업영화로 투자받기는 힘든 시나리오였다. 자본보다는 크리에이티브의 논리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여러 가지 아이템 중에 골라낸 이야기를 하나로 모았다. 그래서 <썬데이 서울>의 이야기들은 장르와 감성이 제각각이고, 사이사이 끼어드는 목격자에게도 그들만의 분위기를 심어준다. 난잡하나 자유롭고, 방황하는 듯 제 갈 길을 찾는다. 그 가락이 그 노래인 영화가 아니었으면 싶었던 박성훈 감독은 세심하게 에피소드를 조율했다. “애청했던 TV프로그램 <추적 60분>을 보면, 숨어서 찍을 필요가 없는데도 꼭 몰래 찍더라고.” 도시 괴담에 속하는 늑대인간 이야기는 그처럼, 들켜도 별일은 없겠지만 굳이 추적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었다. 한적한 펜션을 빌려 찍은 두 번째는 <헬나이트> <13일의 금요일>처럼 폐쇄된 공간이어서 더욱 긴박한 느낌을 주고, 세 번째는 세상이 뭐라 해도 나 홀로 진지한 주성치 코미디의 분위기를 닮았다. 조악한 컴퓨터그래픽마저도 반드시 조악해야만 할 것처럼 비장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러닝개런티를 약속하고 무상으로 데려온 제작진이다. 봉태규와 이청아를 비롯해 “트렁크 가득 손수 옷가지를 싸가지고 오셨던” 김추련과 설득을 거듭하여 캐스팅한 정소녀, 비장하고 딱딱한 표정이 천생 무술배우인데다가 실제 무예의 달인인 김수현 등이 이 영화의 배우들이고, 스탭들도 오랫동안 충무로에서 경력을 쌓아온 이들이다. 그 인건비를 더하면 순제작비 7억원 규모인 <썬데이 서울>의 제작비는 30억원 규모로 늘어난다고. 그들이 기꺼이 두달을 바친 <썬데이 서울>은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벗어나 그저 재미있게 세상을 뛰노는 아이와도 같은 영화다.

DJ DOC가 떴다

비장한 무협청년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도복을 갈아입는 내공을 시연하는 사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청년들은 한담을 주고받는다. “아, 내 첫사랑 밍키가 생각나네그려.” “그런데 꼭 저기서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나?” 두 번째 에피소드의 음산한 분위기를 단번에 뒤엎는 이 양아치 양반청년들은 DJ DOC다. 박성훈 감독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출연을 섭외하다가 그들을 만났고, 출연은 무산됐어도 꾸준히 친분을 유지해왔다. 구시렁구시렁 애드리브의 묘미를 발산하는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수줍음을 탔던 이는 이하늘이었다고. 도연의 아버지를 연기한 사람은 <S다이어리>의 권종관 감독이다. 본디 털이 많은 그는 와이셔츠 옷깃 사이로 비져나온 털무더기를 점잖게 정리하는데, 굳이 털을 새로 붙이진 않고 본인의 털을 가운데로 모아주기만 해도 충분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아직 배역을 밝힐 수는 없으나 이현우와 김수미가 짧은 순간 진한 인상을 남기고, 에필로그 포장마차 손님을 눈여겨보면 공동 제작자인 <썸>의 장윤현 감독도 발견할 수 있다. 우정출연이라 말하기엔 너무나도 비중이 컸던 용이 감독은 세개의 에피소드를 엮는 목격자 중 한명. 연기라고 믿기엔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양아치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유려한 연출의 초저예산 영화

신연식 감독의 <좋은 배우>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 ‘배우’라는 단어를 당신의 직업으로 치환한다면, 혹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세요?”라고 질문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하겠는가. <좋은 배우>는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막연한 불안을 표출하는 말로 튀어나온 “좋은 배우요”라는 답을 캐묻는다. 무엇이 좋은 배우일까. 질문은 점점 본질로 다가간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배우는 왜 필요한가. 그 의문은 “2005년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는 신연식 감독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좋은 배우>라는 말에서 방점은, ‘배우’가 아닌 ‘좋은’에 찍혀 있다.

고시생 수영(이현호)은 자기 길을 찾고자 극단에 들어간다. 실험극 공연을 준비 중인 극단 배우들은 매일 연습을 강행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확신은커녕 혼란만 가중된다. 수영은 연기 수련을 위해 입산했다는 지환(이종수)을 찾아 함께 서울로 돌아온다. 하지만 지환도 지환의 연기도 극단의 다른 배우들과 앙상블을 맺지 못하고, 증폭되던 갈등은 마침내 최악의 출구를 찾는다. 지환과 영석(이정한)은 마치 연극 내용에서처럼 유혈 사태를 빚는다.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만나는 신인 신연식 감독의 <좋은 배우>는 밀도있는 구성과 유려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75분을 실감치 못하게 하는 치밀함이 배우들의 연기와 촬영, 편집, 대본, 음악 등 영화적인 모든 요소에서 묻어난다. <좋은 배우>는 영화 속에 연극이 등장하는 액자식 구조를 가진 작품이지만 영화의 중반쯤부터, 액자의 틀은 점점 투명해진다. 연극에서의 상황은 실제 상황과 대칭되고, 흑백영화인 점을 십분 활용한 연출은 무대 밖 장면들도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잡아냈다. “배우 캐스팅이 되면 그 배우에 맞게 인물을 설정해 시나리오를 썼다”는 신연식 감독의 말처럼 실제와 연기가 구분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배우들의 연기는 흡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편집까지 도맡아 한 최용진 촬영감독의 특이한 거리두기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편집 리듬도 돋보인다.

주인공인 수영은 영화를 시작하고 맺는 주인공이지만 방관자이며, 다른 모든 인물들의 반응을 그대로 투사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인물이다. 마치 그 남자가 거기 없었던 것처럼. 지환이 수영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토해낸 “다 버려야 해”라는 말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수영에게서 같은 말을 들은 재희다. 배우들이 타인을 향해 내뱉는 말은, 점점 스스로를 향한 독백처럼 들린다. 남을 타이르고 가르치기 이전에 진짜 불안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음이 대사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던 질문과 타인에 대한 온갖 충고는 점차 그 남루함을 드러낸다. “어떤 인생을 살든지 버리는 건 있어요”라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바쁜 게 편해요”라는 수영의 체념어린 말은 그래서 섬뜩한 울림을 갖는다. 당신은 우연 때문에 인생을 즐기는 사람인가, 우연 때문에 인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인가. 혹시 당신은 지금 삶에 너무 둔감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175분짜리 장편을 300만원으로 찍었다고?

신연식 감독은 전작 <피아노 레슨>을 단돈 30만원에 다섯번 촬영하고 완성했다. 배우들을 노개런티로 섭외한 대신 함께 연기 스터디를 하면서 “(돈 빼고) 연기를 배울 수 있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자 노력한” 그는 전작의 10배에 해당하는 300만원의 돈으로 175분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장편’ <좋은 배우>를 완성했다. 혼자 모든 스탭의 밥값 계산까지 도맡아야 했던 신연식 감독은 충격적으로 적은 제작비가 가능한 이유를 “시나리오 초고 단계에서부터 예산에 맞는 작품을 기획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배우가 출연하겠다고 하면 그는 그 배우에 맞는 인물을 만들어 시나리오를 썼다. 장소 섭외도 마찬가지. 다른 배우에게 맡기기 민망한 역은 직접 한다는 그는 <좋은 배우>에서 연출자로 출연했다. “작품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저예산이 가능했다.” 제작비 300만원 중 200만원은 감독과 이 영화 출연진들이 제작한 ‘집단 알바’ 영상물 제작으로 보탠 것이었다고. 신 감독과 <좋은 배우>의 출연진은 현재 연기 스터디를 계속하며 연극을 준비 중이고, 차기작과 차차기작까지 힘차게 얼개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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