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강추! 부산영화제의 한국영화 7편 [2]
2005-10-06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글 : 김도훈

낯선 도시, 세 남녀의 아픔과 체념은 계속되고

이윤기 감독의 <러브토크>

<러브토크>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뉴커런츠상)을 받은 <여자, 정혜>의 이윤기 감독의 두 번째 선물이다. <여자, 정혜>의 주인공이 상처와 고독 사이의 긴 통로를 떠다니는 내면의 풍경이었다면, <러브토크>는 피할 수 없는 체념에 익사할 듯한 사랑을 추가했다. 대신 형상이 뚜렷했던 상처가 어슴푸레한 기운의 기억으로 바뀌었다. 사랑은 관계의 배치이니 인물이 늘었다. LA에서 화려함과 퇴폐가 공존하는 마사지 테라피 숍을 운영하는 써니(배종옥), 뚜렷한 목적없이 타인의 도시로 건너와 써니의 아래층에 유령처럼 사는 지석(박희순), 지석이 붙잡지 못한 사랑의 대상으로 유학과 라디오 상담 프로그램 ‘러브토크’의 진행을 병행하는 영신(박진희). 써니가 영신의 ‘러브토크’에 머뭇거리며 접속을 시도하면서 세명의 관계는 고리처럼 묶여 돌아간다. 이들 곁에는 또 다른 고리가 따라붙는다. 써니에게 섹스 이상의 소통을 원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하는 마사지 숍의 청원 경찰, 지석의 굳은 마음을 위무하는 댄스 홀의 라틴 아가씨, 영신의 유부남 애인. <여자, 정혜>의 테마를 이어가는 듯한 인물군이 타인의 도시에서 타인의 시선처럼 미끄러지는 사랑을 그려간다. <여자, 정혜>에서 창백한 내면이 가까이 숨쉬는 듯 느껴졌던 건 정혜에게만 집중됐던 밀도 때문이다. <러브토크>는 이 밀도를 여럿에게 분산시키는 대담한 변화를 꾀했다.

“많은 인물의 만남과 만남 이후의 상황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스케치처럼 바라보려 했다. 보통 스케치는 가벼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짧은 일상을 스케치하더라도 그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게 엮어가다보면 결국은 한 사람의 복잡한 내면이 여러 사람을 통해 버라이어티하게 드러나는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러브토크>는 요즘 평균 제작비의 절반 정도를 가지고 100% 가까운 현지 촬영을 해냈음에도 LA를 배우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국의 도시에게 인물만큼 중요한 표정을 부여한 건 물론 필연이다. 감성적으로 흘러넘치는 음악에 마치 내레이션 같은 역할을 주는 것처럼. “이 도시는 한국에 비해 쉽게 타인과의 접촉이 이뤄지지 않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개인은 고립되고 그러다보면 매체나 혼자 할 수 있는 뭔가에 집착하게 된다. 이게 한국 사람에게 굉장히 낯설고 비인간적으로 보이고 한 인간을 끝없이 외로워 보이게 만든다.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러브토크>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한다는 건 나를 표현하는 것과 등치된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의 감정과 기억과 슬픔)을 표현한다는 건 불가능한 시도처럼 보인다. <러브토크>의 이 망설임은 너무 커서 언뜻 모던한 신파처럼 느껴진다. <러브토크>의 망설임은 체념에서 비롯한 어쩔 수 없는 주저함인데 오히려 여기서 희망을 찾는다. 그 끝은 수렁이 아니라 새로운 지지대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준비가 되기 위해선 많은 상처들과 기억들을 끌어안고 체념하거나 한없이 기다리거나 하는 경험을 한 뒤에야 또 다른 사랑을 기약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정혜, 써니, 영신, 이 세 여자는 닮은꼴?

세 여자는 닮아 보인다. 인생을 자기 스스로 원만하게 잘살게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살면서 움츠러들다보니 자기 표현이 더 안 되고, 해보려 하면 머피의 법칙처럼 또 후회하고 어긋나게 되는 소심한 캐릭터들이라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차이점이 더 크다. 정혜의 상처에 비하면 두 사람은 굉장히 정상적인 상황에 가깝다. 그런데 그들 안에는 정혜보다 더 복잡한 생각 구조를 갖고 있고, 그래서 정혜보다 더욱 어렵게 살고 있다. 이 외로운 여자들에게 상처받는 남자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건 흥미로우나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상처를 주는 건 악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답답하고 어리석은 캐릭터들의 일면이 실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니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폭력의 수레바퀴, 군대를 고발한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가끔 신문 단신에 등장하는 죽음이 있다. 일병의 자살. 사람들은 연인의 변심과 고참의 구타를 조심스레 추측한다. 그렇게 한해에만 100명에 가까운 젊은이가 스스로 삶을 지운다. 단편 코미디 <남자의 증명>으로 미쟝센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윤종빈 감독은, 신문의 단신으로 소비되는 자살의 이면을 상상했다. “그들이 휴가 나와서 죽기 전까지 어떤 일들을 했을까? 친구들과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하며 하룻밤을 불안 속에서 보냈을 거다.” 그는 7공수부대 복무 중의 기억들을 안고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영진위 제작지원금 1천만원과 미쟝센영화제 상금 500만원에 개인자금 500만원을 보탠 제작비와 디지털카메라 1대, 15여명의 스탭을 모아 촬영을 마쳤다. 가난한 학도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졸업작품전의 관객만이 아니었다. 청어람은 영화의 가편집본을 보자마자 투자와 배급을 결정했고, 믹싱과 (디지털을 필름으로 바꾸는) 키네코 작업을 거친 영화는 온전한 모습을 찾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휴가 나온 병사의 하루를 따라가며 한국의 남성에게 원죄처럼 남아 있는 기억들을 되살려내는 영화다. 태정은 중학교 동창이자 군대 시절 자신의 후임이었던 승영의 전화를 받는다. 승영은 끊임없이 태정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한다. 그들의 하룻밤이 진행되어가면서 군대 시절의 기억들이 군데군데 삽입된다. 태정은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명문대 출신 승영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지만, 군대의 비논리성에 항거하는 승영은 왕따가 되어간다. 태정이 제대하자 승영은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후임병 지훈에게는 똑같은 상처를 대물림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세계를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물광’이다. 훈련소를 퇴소한 병사들은 전투화에 물광 내는 법부터 배운다. 구두약과 물을 적절히 배합한 뒤 정성스레 전투화를 닦으면 전투화는 거울처럼 빛이 난다. 하지만 왜 물과 구두약이 섞여 광을 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태정은 승영에게 설명한다. “물과 기름이 서로 안 섞이려다보니까 광이 나는 거야.” 승영은 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군대에서는 비논리의 논리를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런 의문없이 물광을 내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모두 용서받을 수 있을까.

<용서받지 못한 자>는 약관의 젊은 영화학도가 만든 졸업작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야기와 형식이 능숙하게 가봉되어 있다. “보통 플래시백은 이야기라기보다는 설명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나는 <대부2>처럼 두개의 다른 시간대가 함께 현재진행하는 것처럼 보여지길 원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현재와 과거는 균열없이 이어져 미스터리를 풀어가듯 비극적인 종말로 향하고, 카메라는 “관객이 현실과 과거를 뛰어넘으며 알아가는 거리가 딱 이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에 적절하도록 미디엄숏으로 냉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렇게 봉합된 이야기와 형식은 위계질서로 점철된 군대와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내시경을 들이대듯 속으로부터 들여다본다. “군대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조직이다. 이성이 필요없는 조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조직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조직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 윤종빈 감독은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 군생활 ‘잘’했습니까? 물광은 ‘잘’내셨습니까? 근데 왜 물과 기름이 광을 내는 건지 물어는 보셨습니까?

윤종빈 감독도 출연했다는데…

<용서받지 못한 자>의 현실감은 생생한 연기에 의해 또 다른 힘을 얻었다. 믿음직한 고참이지만 병영밖에서는 하릴없는 청춘에 불과한 태정은 <마들렌>(2002), <잠복근무>(2004) 등에 출연한 하정우가 연기했다. 그를 제외한 배우들은 대부분 연극무대에서 활동 중인 신인들. 특이한 점은, 남자관객에게 몸서리칠 정도의 현실감을 던져주는 배우들의 군인 연기가 현역제대한 하정우를 제외하고는 완벽한 ‘연기’라는 사실이다. 윤종빈 감독은 “디테일하게 쓴 대사와 최소 10회 이상의 리딩연습”을 통해 군생활의 세부적인 묘사들을 배우들에게서 끌어냈다. 가장 대상화되고 처연한 연기는 감독의 몫이었다. 윤종빈 감독은 끝끝내 폭력의 수레바퀴에 짓눌리는 지훈을 직접 연기했다. “마땅한 배우를 못 구한 것도 사실이지만, 나 스스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고, 또 재미있을 것 같았다. 연기도 연출도, 나는 재미있어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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