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 가이드 [2] - 프리뷰 ①
2005-11-09
글 : 김혜리

당한 여자

감독 다카하시 반메이 | 출연 시모모토 시로, 야마지 가즈히로, 사노미 요시코 | 67분 | 제작 다카하시 프로덕션 | 1981년

걸출한 핑크 무비 감독 다카하시 반메이가 1981년 만든 수작. 그해 다카하시 반메이는 17편의 핑크영화를 연출했다. 띠동갑인 젠상과 히로시는 가출소녀 찾기부터 남창 노릇까지 공중전화로 잡다한 청탁을 접수해 먹고사는 해결사다. 둘이 자주 들르는 술집의 미미는 젊은 히로시를 짝사랑하지만, 정작 미미를 사모하는 남자는 젠상이다. 자기를 갉아먹는 삶에 지쳐가던 두 남자는 야쿠자 보스의 정사 사진을 찍으면 큰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인생 역전을 꿈꾼다. 결국 히로시는 미미에게 희생을 부탁하고 두 남자와 ‘한패’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어온 미미는 순교자 같은 태도로 응한다. 짧은 러닝타임과 그 대부분을 지배하는 섹스신에도 불구하고 극히 단순한 장면으로 날것의 감정을 섬뜩하게 드러내는 화술과 돌파력이 인상적이다.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조감독으로 크레딧에 올라 있다.

아바시리 번외지

감독 이시이 데루오 | 출연 다카쿠라 겐, 난바라 고지 | 92분 | 제작 도에이 | 1965년

사나이의 고독을 노래한 숱한 유행가를 한데 뭉뚱그려 영화로 만들어놓은 듯한 흑백 탈옥영화. 1965년부터 72년까지 18편이 제작된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머나먼 오호츠크 (중략) 그 이름은 아바시리 번지없는 땅.” 주연배우 다카쿠라 겐이 부르는 애수에 찬 주제가처럼 세상에서 동떨어진 홋카이도의 오지 아바시리에 줄줄이 엮인 죄수들이 도착한다. 주인공 다치바나 신이치는 전과 2범이나 성정이 바른 사나이. 다리가 불편한 여동생과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인색한 노인과 결혼했다가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매 순간 생각하며 형기를 채워간다. 그러나 가석방의 희망이 보일 즈음, 죄수들 사이에 탈옥 계획이 세워지고 사슬에 묶인 몸인 다치바나는 거부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과격한 죄수 곤다에 이끌려 설원을 헤매게 된다. 의로운 교도관, 정체를 숨기는 범죄의 고수 등 정형화된 감옥영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절정부의 긴장감은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폭주기관차> 못지않다.

필살4 한 풀어 드립니다

감독 후카사쿠 긴지 | 출연 후지타 마코토, 무라카미 히로아키 | 131분 | 제작 쇼치쿠 외 | 1987년

서민의 원한을 풀어주는 프리랜서 복수 전문가들의 활약을 그린 액션 시대극 시리즈의 4탄. 모태가 된 TV드라마의 첫 연출자였던 후카사쿠 긴지가 메가폰을 잡았다. 비겁죄로 녹봉을 반년 감봉당한 미나미마치 현청의 나카무라 몬도. 항의해보지만 소용없고 아내와 장모의 구박만 심하다. 시동 출신인 미모의 오쿠다가 새 판관으로 부임하자마자 주군 직속 무사들의 횡포로 한 가난한 노인이 죽는 비극이 일어난다. 노인의 딸은 해결사들의 비밀집회에 복수를 청원하고 남몰래 해결사로 부업을 뛰는 나카무라가 이에 응한다. 내러티브를 이끄는 미스터리는 그다지 절묘하지 않지만 유머, 관능, 액션, 의분 등 모든 면에서 한순간도 주춤대지 않는 연출이 호쾌하다. 각기 개성있는 무기를 쓰는 남녀 해결사, 어린 남매를 데리고 3인조로 일하는 떠돌이 무사의 캐릭터가 미국 만화의 슈퍼 히어로를 방불케 한다.

벚꽃동산

감독 나카하라 슈운 | 출연 나카지마 히로코, 쓰미키 미호 | 96분 | 제작 아르고 픽처즈 | 1990년

벚꽃처럼 눈부시면서도 붙잡을 수 없는 10대 소녀들의 청춘의 빛을 포착한 탁월한 학원물이다. 매년 개교기념일에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을 무대에 올리는 명문여고 연극부. 개막 2시간 전 연습실에서 남자친구와 밀회하는 2학년생 무대감독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소녀들이 모여든다. ‘문턱’을 넘는 기분으로 파마를 하고 나타난 연극부장 유코, 전날 담배를 피우다 걸린 노리코, 내심 공연이 중단되길 바라는 주인공 치요코를 중심으로 조용하지만 치밀한 드라마가 실제 시간에 근접한 흐름으로 펼쳐진다. 오직 소녀들의 미묘한 감정과 학교 안 공간만으로 우아한 형식을 만들어가기 위해 감독은 카메라를 마치 접속사를 구사하듯 움직여나간다. 막 어른이 되려는 소녀들이 품은 생에 대한 야망, 소녀들 사이의 사랑과 실연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에 실려 유려하게 그려졌다. “우리에겐 한해뿐인데 매년 똑같이 벚꽃은 핀다는 것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라는 한 소녀의 말은 영화 속 사춘기 여학생들을 훌쩍이게 하고 관객의 가슴에도 아련한 아픔을 전한다.

일본제일의 허풍쟁이

감독 후루사와 겐고 | 출연 우에키 히토시, 하마 미에 | 93분 | 제작 도호 | 1964년

다짜고짜 노래부터 불러젖히며 화면으로 뛰어드는 주인공은 삼단뛰기 국가대표 선수 하지메 히토시.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하지메지만,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사태를 맞자 조금은 비장해진다. 이때 그를 일깨운 것은 세번의 허풍을 현실로 만들어 1만석의 대영주로 출세한 조상 하지메 히로시노스케의 성공담. “오호라, 삼단뛰기잖아?”라고 감복한 하지메는 일류회사 마스마스 전기에 임시직 수위로 입사해 하루 19시간의 막무가내 노동과 아이디어, 운의 조합으로 계장, 과장, 부장의 자리를 차례로 얻어낸다. 과장된 설정의 오락영화임을 감안해도 “하면 된다”는 무한한 낙관을 그릴 수 있었던 고속성장기 일본사회의 공기를 상상할 수 있다. ‘일본 제일의 남자’ 시리즈 10편 중 두 번째 영화다. 주연 우에키 히토시는 60년대 대중음악과 영화 양쪽에서 활약한 코믹 밴드 크레이지 캣츠의 보컬이다.

취재협조 일본 문화청, 도쿄 이미지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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