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딩가딩가 딩딩딩> <살아 있는 게 최고야 죽으면 끝이지 당선언> <당한 여자> <하늘이 이렇게 푸를 리 없다>. 이처럼 자못 예사롭지 않은 제목의 영화들이 몰려오는 축제는 11월1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리는 제2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주최 일본 문화청, 공동주최 메가박스 씨네플렉스, 일본 영상산업진흥기구 VIPO)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제목만이 아니다. 재미는 이번 영화제가 소개하는 대중 장르영화들의 다름 아닌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청춘물과 로망 포르노를 중심으로, 문화교류가 단절된 동안 만들어진 일본 대중영화 45편을 상영해 평균 좌석점유율 약 75%를 기록한 2004년 ‘사랑과 청춘 1965-1998’에 이어 열리는 제2회 일본영화제는 장르를 테마로 선택했다. “첫해의 대중적 호응을 이어가면서도 장르가 유난히 번성한 일본 영화산업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고, 서구의 필터로 걸러지지 않은 일본영화를 선보일 수 있는 테마가 장르다”라는 것이 프로그래밍에 참여한 김홍준 감독(영상원장·리얼판타스틱영화제 운영위원장)의 전언이다.
시리즈를 모르면 일본영화를 모른다
1960년대 초반부터 2005년까지 45편을 망라한 일본영화 뷔페에서 특별히 음미할 만한 코스는 일본의 ‘시리즈 영화’다. 이들은 할리우드의 프랜차이즈 영화보다 소박하고 TV연속극처럼 친근하면서도, 오락성과 완성도에서 포부가 야무진 장르영화들이다. 따라서 서구와는 또 다른 일본 고유의 하위 장르를 맛보게 하는 동시에 일본인을 지속적으로 매료한 이야기 공식과 캐릭터가 무엇인지 일러준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무려 48편에 걸쳐 서민들에게 웃음을 준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 중 두편을 필두로, 시대극 장르에서는 <닌자> 시리즈, <자토이치> 시리즈, <필살> 시리즈, 청춘영화로는 스타 커플 모모에-도모카즈가 공연한 시리즈와 가도카와 아이돌 시리즈의 일부 등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정착한 여러 시리즈의 인지도를 활용한 <에이리언 vs. 프레데터>식의 기획 <자토이치와 요짐보>도 볼 수 있다. 한편 재능있는 젊은 감독들의 인큐베이터 노릇을 톡톡히 수행해온 일본의 독특한 장르, 핑크영화도 지난해에 이어 소개된다. 그중에서도 핑크영화의 수작으로 꼽히는 다카하시 반메이 감독의 <당한 여자>는, 이번 영화제를 위해 사라졌던 오리지널 프린트를 찾아낸 케이스다. 영화제 부대행사로는 세번의 심포지엄이 열린다. ‘한국에서 일본영화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주제로 한 첫 번째 심포지엄에는 개막작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고이즈미 다카시 감독과 한·일 두 나라의 제작자가 참석하며 일본의 장르와 시리즈를 논하는 두 번째 심포지엄에는 배우 겸 감독인 에모토 아키라가 김홍준 감독과 함께 초청됐다. 세 번째 심포지엄은 영화제 성과를 결산하는 자리로 이충직 중앙대 교수와 사와이 신이치로 감독이 함께한다. 모든 심포지엄에는 지난해에 이어 한·일 영화 교류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진행해온 데라와키 겐 일본 문화청 문화부장 겸 영화평론가가 참석한다.
일본 대중의 취향을 음미하시라
올해 초 불붙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독도 논란과 외교 분쟁은 ‘한·일 우정의 해’라는 깃발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외교적 정황으로 인해 의욕이 꺾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일본 문화청 관계자의 반응은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의 의의에 관한 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놓쳐서 아까울 영화는 없지만, 모두 보고 나면 보길 잘했다고 느낄 영화들이다”라는 김홍준 감독의 지적대로 메가박스 일본영화제는 의도된 예술이 아니라, 취향의 역사에 의해 형성된 시스템의 예술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제다. 또한 각자의 표주박으로 원하는 만큼 퍼담을 수 있는 저수지 같은 영화제다. 액션, 청춘, 성애, 코미디, 시대극 등 일본 영화산업을 부양한 다양한 장르를 통과하면서 관객은, 영화란 다른 문화권으로 떠나는 일종의 여행이라는 명제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영화제를 앞두고 도쿄에서 시사를 가진 12편의 상영작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