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짐 자무시의 모든 것 [3] - 친구
2005-12-0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짐 자무시 영화의 단골 친구들 & 짐 자무시가 출연한 친구의 영화

출연시키거나 출연하거나

<커피와 담배>의 스티브 부세미(가운데)

<브로큰 플라워>에 얽힌 일화 하나. 처음에 빌 머레이는 짐 자무시가 <하늘 위에 뜬 세개의 달>에서 <브로큰 플라워>로 바꾼 각본을 쏙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프리 프로덕션 과정 중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머레이는 전화였는지, 담배였는지 하여간 핑계를 대고는, 갑자기 식사 도중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무시는 넉넉하게 말한다. “그게 나를 뭐 힘들게 할 건 없죠. 내 친구들은 다 그래요. 그들은 그냥 사라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오죠.”

짐 자무시는 친구들을 불러모아 배역을 주길 즐긴다. 그 점에서 <커피와 담배>는 영화 자체보다 그 친구들이 총출연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아마 <브로큰 플라워>를 그의 메인스트림 영화로 보는 이유는 그들의 이름이 대거 빠진 탓도 클 것이다. <데드 맨>의 이기 팝과 빌리 밥 손튼, <미스테리 트레인>의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천국보다 낯선>에서 여주인공 에바가 듣던 노래의 주인공)와 스티브 부세미 등등 열거하자면 그 친구들의 이름은 끝이 없다.

그중에서도 더 자주 출연하는 단골 친구는 존 루리, 톰 웨이츠, 로베르토 베니니다. 뮤지션인 존 루리를 대학 시절 클럽에서 만난 뒤 자무시는 <천국보다 낯선>의 윌리, <다운 바이 로>의 잭(Jack)으로 기용했다. 오랜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톰 웨이츠 또한 <다운 바이 로>에서 잭(Zack)으로 출연한다. 특히 이들은 나눠가며 여러 편의 영화음악 작업을 맡는 것으로도 우정을 과시했다. 그러고보니 <다운 바이 로>는 새로운 친구 하나를 더 선보인 작품이었다. 로베르토 베니니다. 자무시는 그를 이탈리아의 작은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만난 뒤, <다운 바이 로>의 귀여운 죄수, <지상의 밤>의 숨막히게 떠드는 떠버리 운전기사로 출연시켰다. 로베르토 베니니라는 코미디 배우를 세계적으로 알린 데에는 자무시의 공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무시는 친구들의 영화에 카메오로 자주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준은 하나다. “만약 그들이 내 친구고, 내 생각에 재미있을 것 같으면 출연해요. 감독으로서 내게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사람을 알고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국내 미 개봉작 중에서는 미카 카우리스마키(핀란드 영화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동생)가 만든 다큐멘터리 <티그레로>에서의 역이 돋보인다. 자무시는 니콜라스 레이만큼이나 존경하는 정신적 스승 새뮤얼 풀러와 아마존 외지의 부족 마을로 여행을 떠나 그의 작품과 세계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다운 바이 로>의 톰 웨이츠, 존 루리, 로베르토 베니니(왼쪽부터)
<블루 인 더 페이스 - 스모크2>에 출연한 짐 자무시

국내 개봉했던 영화들 중에서도 심심찮게 자무시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만든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에서는 담배를 물고 작업복을 걸치고 등장해 중고차 매매인 역을 한다. 빌리 밥 손튼의 <슬링 블레이드>에서는 요양원에서 이제 막 나온 정신장애자 칼(빌리 밥 손튼)이 처음으로 바깥세상에서 만나는 인물, 길거리 간이 음식점 직원으로 나온다. 자무시는 주로 작지만 친근감 넘치는 ‘동네 친구’ 역을 소화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웨인왕과 폴 오스터가 공동으로 연출한 영화 <블루 인 더 페이스-스모크2>에서의 밥이다. 주인공 오기의 담배 가게 12년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자무시는 담배에 대한 절절한 철학을 들려준다. “한 개비 남았는데 이걸로 끝이야. 이제 담배 끊기로 했어. 기념으로 자네랑 피우려고 왔지…”로 시작하여, 어린 시절 담배를 배웠던 기억, 영화 속에서 담배 피우는 인물들의 모습, 담배와 섹스, 담배와 커피의 관계, 그리고 담배와 죽음의 유사성까지 읊어댄다. “담배는 어쩐지 죽음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뿜었다 사라지는 연기를 보면… 죽음도 삶의 연장이라는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주지.” 마지막 담배를 피우러 온 사람치고는 애정이 너무 넘친다. 혹시 그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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