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웨이츠에서 물라투 아스탓케까지
짐 자무시는 음악을 잘 다루는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영화에서 음악은 거의 미장센의 일부다.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에서부터 물라투 아스탓케까지 특별히 가리지 않고 적재적소에 쓰는 편이지만, 대체로 우울한 정조가 진하게 배어 있거나 그도 아니라면 구슬프면서도 유머러스한 간결한 음조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것들이 많다. 알고 보면 자무시는 대학 시절 델 비잔틴이라는 밴드를 결성할 만큼 음악에 대한 정열이 많았다. 그의 초창기 인터뷰를 보면 70, 8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록밴드들, 특히 “연주의 전문적인 기술보다 음악의 영혼이 훨씬 중요했던 패티 스미스, 텔레비전, 하트 브레이커스, 라몬스, 블론디, 토킹 헤즈 등을 좋아했고, 그 당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곧잘 한다.
<영원한 휴가>에서 주인공 앨리는 찰리 파커의 광이다. 영화 속에는 얼 보스틱의 음악도 흘러나온다. <천국보다 낯선>에서 에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윌리에게 들려주는데, 그건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노래 <I Put a Spell on You>다. 실제로 자무시가 어린 시절에 즐겨 들었던 노래라고 한다. <다운 바이 로>에서 톰 웨이츠는 라디오 DJ였던 것으로 설정돼 있을 뿐 아니라, 영화의 시작도 그의 노래와 함께다. <미스테리 트레인>에서 멤피스의 밤하늘 아래 흐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앨비스 프레슬리 버전의 <블루 문>이다. <지상의 밤>에서는 다시 톰 웨이츠의 노래가 에피소드 사이사이의 간주곡이 된다. 한편으론, 닐 영의 96년 공연 투어를 장편다큐멘터리로 담은 영화 <이어 오브 더 호스>(1997)를 완성할 정도였으니, 이미 <데드 맨>에서 닐 영의 기타 리프가 영화 전편을 휘감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말 웃기는 장면 중 하나는 <고스트 독>에서 늙은 마피아가 보스에게 “진짜 죽이는 노래가 있는데요”라며 우탕클랜의 랩을 소개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우탕클랜의 곡을 틀어놓고 욕실에서 흥얼흥얼 안무와 함께 따라 부르는 마피아의 모습은 자무시의 영화에 꼭 들어맞는 우스꽝스러움이다.
<영원한 휴가> <천국보다 낯선> <다운 바이 로> <미스테리 트레인>은 존 루리가(<영원한 휴가>는 짐 자무시와 함께), <지상의 밤>은 톰 웨이츠가 음악을 맡았고, <데드 맨>은 닐 영이, <고스트 독>은 우탕클랜의 RZA가 맡았다. 자무시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닐 영의 음악 작업이 가장 신기했다고 하는데, 닐 영은 “영화를 틀어놓고 곧장 그 화면에 맞춰 연주를 녹음했고, 이틀 동안 그렇게 세번 작업했으며, 그동안에는 아무도 그 녹음이나 영화를 멈추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브로큰 플라워>에서 음악은 더 익살맞아졌고, 더 가슴을 적신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음악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질 것이다. 애인 쉐리에게 차이고, 19살짜리 아들이 있다는 이상한 편지까지 받고 나서 망연자실 넋을 놓고 앉아 있는 돈에게 옆집 친구 윈스턴이 찾아와 말한다. “이봐, 내가 구워준 끝내주는 그 CD 어딨어? 여기 있구먼. 에티오피아 음악은 말이야 심장에 정말 죽인다고!” 하면서 틀어준다. 한편으로는 비틀비틀 뽕짝 같고, 한편으로는 극도로 정련된 기교 같은 이 음악은 70년대 에티오피아 재즈 펑크 아티스트 물라투 아스탓케의 앨범에서 뽑아온 곡이다. 돈이 옛 연인들을 만나러가기 위해 차를 몰고 다닐 때마다 세개의 곡이 번갈아 흘러나온다.
어쩌면 <브로크 플라워>는 음악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한 영화인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자무시는 영감을 얻기 위해 물라투 아스탓케의 앨범을 들으며 <브로큰 플라워>의 각본을 썼다고 한다. 관객이 “그 노래를 들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그 온도와 감촉과 공기를 영화 속에서 포착하려 했다”고 자무시는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