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씨네21>은 네명의 신인감독과 네명의 평론가의 대담을 진행했다. 내일의 영화와 미래의 감독을 발굴하는 기쁨이 유난히 컸던 자리였고, 올해도 역시 평론가들에게 주목하고 있는 신인감독을 추천해달라 부탁했다. 그런데 그 명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감독들이 여성감독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앞으로가 기대되는 네명의 여성감독을 만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단지 국가고시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고 여학생들의 학력이 신장되며 여성들의 사회참여 비중이 높아졌다는 등의 재미없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힌다. 게다가 이들을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은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비교적 늦게, 우연한 기회에 영화를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강단있는 발걸음을 내디뎌왔다. 영화를 보는 것에 매혹된 영화광 시절을 겪지 않은 이들은 모두 30대 초반, 인생을 돌아간다는 것과 무언가 진심을 다할 만한 것을 발견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다. 김선민 감독의 <가리베가스>, 박은영 감독의 <Rendez-vous>, 송혜진 감독의 <안다고 말하지 마라>,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 감독들의 대표작 네편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2002년부터 올해까지, 여러 영화제에서 많은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자신만의 리얼리티를 꿈꾸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으려는 순간을 보듬으며, 과연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싶은 사건에 집중하고, 흔하디 흔한 애증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보이지 않게 떠다니는 홀씨 같은 공간과 인물과 감정과 사건이, 더없이 크고 먹먹하게 다가오도록 만든 것이 이 영화들의 공통된 매력이다. 우연히 비슷한 길 위에 선 이들을 만나 지나온 시간을 더듬고, 영화를 만든 진심을 물었다. 과거만큼이나 쉽지 않은 미래를 궁금해한 것은 물론이다.
<돌아보면> <달팽이의 꿈> <가리베가스>의 김선민 감독
가리봉이 길러낸 영화의 목적
사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물어보려고 했다. “도대체, 당신은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건가요?” 혹은 “당신은, 당신의 언어가 너무 계몽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그런데 그 긴 인터뷰 동안 나는 이 두 질문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니, 아예 잊고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녀를 따라 지금은 조선족들이 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가리봉의 쪽방들을 지나며, 그녀가 영화를 찍었던 옥상에 올라 높게 솟은 디지털 단지와 그 아래 오밀조밀하게 붙은 단칸방들의 역사를 생각하며, 이미 위의 질문들이 얼마나 하찮은지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의 <가리베가스>를 처음 본 건, 어느 단편영화상 심사를 하면서였다. 가리봉동 쪽방에 살던 20대 여성 노동자 선화가 디지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그곳을 떠나는 그 하루의 모습을 다룬 영화였다. 선화가 떠나며 그 방에 들어올 사람들에게 남긴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당신이 어느 나라에서 왔건 간에, 이곳을 떠날 때는 부디 꿈을 이루시길.” 솔직히 말하자면, 그 어두운 쪽방에서 꿈 운운하는 주인공의 태도가 지나치게 계몽적이고 순진해보여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게다가 그 방에 들어온 이주민 노동자들은 편지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게 바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하기 전, 그녀가 보내준 <가리베가스> 이전에 만들어진 <돌아보면>과 <달팽이의 꿈>을 보았다. 세 영화 모두 가리봉동이 배경이었다. 거기에는 철거를 기다리는 쪽방들과 여성 노동자들과 갈 곳 없는 아이들과 무엇보다도 마음을 흔드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는 가리봉의 수많은 공간들을 다만, 찍고 있는 게 아니라, 그 공간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가리베가스>를 두번, 다시 보았다.
그녀의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꿈>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꿈을 잃은 가리봉의 외로운 한 아이가 그녀를 향해 카메라를 들고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나중 꿈이 영화감독이에요?” (그녀 왈) “네.” 나는 그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그 아이들의 방들은 모두 철거되어,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꿈을 향해 한발을 내딛고 있는데 말이다. 그녀는 가리봉에서 4년간 공장 노동자로 살았다. 감독의 개인사를 자꾸 들추어 영화와 연결시키는 태도가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는 최대한 정직하게 글을 쓰겠다고 나 혼자 그녀에게 약속했다.
-<가리베가스> <돌아보면> <달팽이의 꿈> 모두 동일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공간이나 그 공간 안의 사물, 사람들에 대한 묘사나 태도가 매우 내밀하고 사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이 없다면 가능할 수 없었을 이야기들로 보여요. 그래서 개인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어요.
=제가 전교조 마지막 세대인데, 그 영향이 있었어요. 참교육운동 한다고 사회과학서적 읽고 행사단 참여하고. 80년대 운동하던 선배들에게 영향을 받기도 했고, 아무튼 그때는 대학 가는 게 마치 배신하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가출해서 93년에 전자공장에 취직했어요. 그렇게 97년까지 여기저기서 일했고요. 그때부터 가리봉동 근처에서 살고 있어요.
-80년대도 아니고 90년대 초반에, 예전처럼 위장취업도 아니고 그것도 고등학생이 공장에 들어갈 생각을 하기까지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재봉틀 일을 하는 노동자셨는데, 그 영향도 있었을 거예요. 고생만 하고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에 대해서. 그때는 제가 시 쓰기를 즐겨했는데, 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런 시들이었죠. (웃음)
고등학생 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들을 썼어요
-그렇다면 다른 감독들처럼, 특정한 영화감독 혹은 영화에 심취해서 영화의 길로 접어들었을 것 같지는 않고, 계기가 뭐죠.
=처음에 공장 다니면서는 야근까지 하고도 한달 월급이 29만원이었는데, 50만원 보증금에 11만원 월세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죠. 일단 내가 살아남는 게 너무 힘겨웠어요. 노조에서 일하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회사도 못 들어가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는데, 구로공단이 와해되기 시작하고 IMF 터지고 공단의 소규모, 중소기업들이 위태로워지면서 나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구로시민센터라는 지역운동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친구와 우연한 기회에 한겨레문화센터 비디오 제작 수업을 받게 되었어요. 미디어 교육 붐이 일었던 때잖아요. 그때, <로저와 나>를 보았는데, 세상에, 이게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웃음)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이렇게 힘있게 소통을 하다니! 그때부터 단체에서 기록 촬영도 담당하고 혼자 실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에 서울예대에 입학을 한 건가요? 영화를 배우기 위해서?
=고등학교 때 딴 짓만 하느라 내신이 13등급이에요. 그래서 일단 수능을 안 보는 학교를 선택해야 했고. (웃음) 00학번으로 입학했어요.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영화아카데미도 다닌 걸로 알고 있는데.
=생계비 벌고, 단체 모임 나가고, 공부하고 하루에 2∼3시간 잤어요.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첫 학기 수석을 해서 장학금을 탔는데, 이보다 좋은 아르바이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돈이 아까워서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 탔어요. (웃음) 그렇게 졸업하고 1년 동안은 단체에서 선거운동을 했어요. 정말 후회없이 열심히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영화에 대한 욕망이 너무 강렬하게 솟는 거예요. 영화아카데미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죠. 자기소개서 쓰고 정말 센 면접을 거치고 싸우고 좌절하면서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생겼어요. 영화아카데미 들어와 다니면서, 정말 내가 좋아하는 영화, 감독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전까지는 영화도 잘 안 봤거든요.
가리봉동은 제 고향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영화가 생겼나요.
=다르덴 형제 영화와 켄 로치 영화. 비겁하지 않게 끝까지 밀고 나가서 감동적이고 하나에 승부 거는 용기가 좋아요.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보죠. <가리베가스>를 보면 유달리 튀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가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 무언가를 보고 있는 선화를 갑자기 정면으로 잡는 숏이 있잖아요. 그리고 다음 숏이 거대한 크레인을 잡은 건데, 생각해보니 선화의 표정이 이상했어요. 갑작스럽게 공포에 질린 얼굴이랄까. 그걸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디지털 단지가 들어서며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는 가리봉동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예요. 다른 영화들을 봐도 그렇고 감독님은 가리봉동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가리봉동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 같고.
=이 영화를 처음 만들게 된 계기가 바로 그 크레인이거든요. 공장을 떠난 지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가리봉동에 왔는데 친구들은 떠나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들어서고 집들은 철거되고. 하늘을 보는데 거대한 크레인이 버티고 서 있는 거예요. 그때의 슬픔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여기는 내 고향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인지 감독님 영화들을 보면 공간과 사물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강해요. <가리베가스>에서 방과 장롱, 쓰레기 봉투를 보는 시선이나, <달팽이의 꿈>에서 철거될 쪽방들의 주소를 연속적으로 보여줄 때의 느낌이나, 전봇대에 대한 이야기나. 인상적인 건, 그러한 공간, 사물이 ‘내 것’이기 때문에, 나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애정을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 공간을 지나칠 또 다른 사람, 그 사물을 나눌 또 다른 누군가 때문에 그런 애정이 시작된다는 점, 그러니까 결국 끊임없이 사람들의 관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겐 나눔, 소통, 정서 이런 게 중요해요. 이곳에서 오래 살면서도 그랬고 영화를 하면서도 그렇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힘이 되죠. <가리베가스>를 찍었던 그 쪽방에서는 촬영하기 전, 두달 정도 살았어요. 스탭들과 배우들도 매일 드나들며 회의하고 쓸고 닦고. 이 영화는 공간이 주인인 영화라 공간에 사람의 정성과 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소품도 다 길에서 주운 것들이에요. 사람들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은 아무래도 다르거든요. 심지어 먼지, 바퀴벌레까지도 다 모아왔죠. 처음 여기 왔을 때, 이 방 살던 사람이 강제출국당하면서 미처 챙겨가지 못한 짐들을 보았을 때나 옆방의 한족 아저씨가 아예 자기 방 열쇠를 주며 필요한 소품 꺼내 쓰라고 할 때나 울컥한 순간들이 많았죠.
-이 영화를 찍으면서 세워둔 원칙 같은 게 있나요.
=예쁘게 찍지 말자. 핸드헬드로 찍지만 카메라 너무 휘두르지 말자. 무엇보다도 선화의 감정을 따라가자. 가리봉동은 어디서 찍어도 그림이 되기 때문에, 그런 그림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리얼리티는 사상이다”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면>에서는 가리봉에 막 입주한 여성 노동자가 나오고 그녀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가리베가스>에서는 이제 가리봉을 떠나는 선화가 나오고 그녀의 주변관계도 혈연이 아닌, 가족이 된 친구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건 감독님에게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 건가요.
=선화가 가리봉동을 떠난다고 해서, 내가 나의 과거를 이제 완전히 떠나겠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그건 마치 나의 이십대, 청춘을 정리하는 심정이면서도 더 넓은 곳으로 가기 위해, 나도 내 인생에 하나의 매듭을 지어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돌아보면> 끝 무렵에 사라지는 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나오는데, 보통, 딸이 아버지의 초라한 뒷모습을 응시하는 영화는 많아도 이런 경우는 드물잖아요. 거기에는 그냥 부모 자식간의 혈연적 토대를 넘어서는 울림이 있어요.
=그 영화가 아버지에 대한 영화라면, <이름 없는 들풀>이라는 제 첫 영화는 어머니에 대한 영화예요. 어머니가 젊은 노동자일 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건데, 어느 봄날, 하루 종일 어두운 지하에서 일을 하다가 밖으로 나왔더니 눈이 내리더래요. 봄에도 눈이 오는구나,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눈이 아니라 민들레 홀씨였대요. 그 이야기가 너무 아팠어요. 제가 가출했다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였죠. 그날도 어머니는 우시면서도 결국 제가 대문 밖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셨어요. 두 영화 모두 부모님에 대한 내 마음을 담은 영화들인데, 정작 두 분께는 보여드리지 못했어요.
-감독님의 영화들은 굉장히 도발적이거나 삶의 비루함에 매혹되거나 하는 독립영화들의 최근 경향과 많이 달라요. 감독님의 리얼리즘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냉소가 없죠.
=나도 일면 꼬인 사람이긴 하지만, 내게는 뭔가를 바꾸고 싶다, 뭔가가 되고 싶다는 그런 낙천적인 지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만큼 중요한 건,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봐요. 영화에는 내가 반영될 수밖에 없으니까. 리얼리즘적인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은 건 사실이에요. 저는 “리얼리티는 사상이다”라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재밌는 말이네요. <가리베가스> 마지막에, 이주민 노동자들이 선화의 편지와 소통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감독님 다음 작품은 이들에 대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나요.
=지금은 장편 연출부를 하고 있지만, 이주민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멜로, 현대사 모두 고려 중이에요. 그런데 아직 나를 확 이끌어줄 어떤 동기가 안 생겨서 초조하기는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그냥 주는 대로 받아먹고 이름만 내거는 감독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