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성혁명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딥 스로트> [3] - 70년대 포르노영화
2006-01-18
글 : 문석
포르노의 황금기를 연 영화들

70년대는 미국 포르노영화의 황금기였다. 16mm 또는 35mm 필름으로 포르노를 만들던 유일한 시대답게, 여러 편의 문제작들을 배출했다. 그중 3편을 소개한다.

최초의 유성 하드코어 영화

<모나>(1970)

“섹스 영화계의 <재즈 싱어>.” <타임>의 영화평론가 리처드 콜리스는 잘라 말한다. 그가 이 영화를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에 비유하는 것은 <모나> 이전의 하드코어 영화에는 사운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나>는 대사뿐 아니라 클라비코드 연주, 흘러간 팝송 등 다양한 음악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젊은 여성은 엄마에게 결혼식 날까지 순결을 지킬 것을 맹세한다. 여기서 순결이란 양성의 성기를 ‘조합’하는 것만 피하면 된다는 의미다. 젊은 여성은 약혼자의 유혹을 받고, 엄마 또한 딸의 약혼자와 이상한 관계를 맺게 된다. 강한 오럴 섹스신을 포함하고 있는 이 영화의 필름이나 비디오테이프는 매우 희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빌 오스코가 감독, 주연한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에는 법망을 피하기 위해 크레딧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의 극장에서 상영된, 그리고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은 최초의 하드코어 영화였다.

칸의 초청을 받은 포르노

<녹색 문 뒤에서>(1972)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 활동했던 짐과 아티 미첼 형제의 대표작. P&G의 광고모델이기도 했던 마릴린 챔버스를 주연으로 기용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00달러로 영화를 만들어 200달러에 팔던 형제는 언더그라운드에서 굴러다니는 소책자 <녹색 문 뒤에서>를 보고 장편으로 만들 생각을 한다. 변태적인 섹스 극장에 의해 납치된 한 여성이 다양한 동작으로 몸을 보여주고 관객 사이에 들어가 이런저런 행위를 한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심지어 표현주의적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대사나 액션에 의존하기보다는 이미지와 음악 등으로 상황을 묘사한 영화는 칸영화제에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해 칸에는 라세 브라운의 <센세이션스>, 막스 페카의 <섹스의 사전> 등이 함께 참가했다. 미첼 형제는 몇달 동안 이 영화의 개봉을 미뤘는데, 세제 ‘아이보리 스노우’의 새 박스가 출시됐기 때문이다. 마릴린 챔버스가 수년 전 찍었던 사진이 그제야 박스에 박혀서 나온 것. 이들은 P&G가 회수할 수 없도록, 이 세제가 방방곡곡에 유통되기를 기다렸다가 영화를 개봉했다. 결과는 당연히 대성공이었다. 연예인 포르노의 원조라 할 만하다.

사르트르식 포르노영화

<존스양 안의 악마>(1973)

제라드 다미아노의 두 번째 장편영화. 애초 <목구멍 깊숙이> 수익의 30%를 받기로 했다가 무산된 뒤, 그는 다른 제작자와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목구멍 깊숙이> 이후 모두가 섹시하고 웃기는 영화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하고 싶었던” 그는 무거운 주제의 포르노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내용은 이렇다. 한 여인이 자살해 지옥으로 간다. 하지만 악마는 그녀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악마는 그녀를 지상으로 내려보낸 뒤 섹스의 모험을 펼치게 한다. 일부에서는 가톨릭적인 주제를 담았다는 평가마저 받았던 이 영화는 사실 사르트르의 <출구 없음>을 얄팍하게 모방한 것이었다. 존스양으로 출연한 배우는 조지나 스펠빈으로, 브로드웨이 출신답게 연기만큼은 나름대로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스펠빈의 존스양 연기에 대해 “그녀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카데일>에 출연했을 때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스펠빈은 훗날 <폴리스 아카데미> 1편과 3편에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팬들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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