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더 차일드>를 보는 네 가지 시선 [1] - 이윤기 감독
2006-02-08
글 : 이윤기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의 신작 <더 차일드>가 1월27일 개봉한다. <아들>에 이어 한국에서 개봉하는 두 번째 작품이고,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아들>이 우리에게 준 충격은 컸다. 그래서 <더 차일드>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다르덴 형제의 무엇이 우리를 감동시키는지, <더 차일드>에는 또 어떻게 담겨 있는지 궁금했다. 하나의 목소리를 들려주기에는 모자란 듯싶어 두명의 감독과 두명의 평론가에게 <더 차일드>와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청탁했고, 이윤기, 최진성 감독, 한창호, 홍성남 평론가가 각각 숨결 고운 애정의 에세이를 보내왔다.

뒷목을 뻐근하게 만드는 차가운 공명

교도소 면회실의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커피를 놓고 마주 앉은 두 젊은 남녀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남자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여자의 손을 잡는다. 그의 오열이 점점 소리를 더해가자 여자도 눈물을 흘린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손을 맞잡고 이마를 비벼대며 울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길게 보여주는 이 대목에서 난 ‘아, 영화가 끝났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리고 여지없이 느리게 올라가는 무미건조한 엔딩 크레딧. 소파에 머리를 기댄 나는 천장을 보면서 목이 약간 뻐근해옴을 느낀다. 뭐에 이렇게 긴장한 거지? 문득 내가 앉아서 비디오를 보던 거실의 풍경이 왠지 다르게- 평소보다 더 황량하고 비루하게- 느껴진다. 새벽이라서 일까. 아니면 흔히 영화 한편을 보고 나서 크레딧이 올라갈 때 으레 울려퍼지던 친절한 음악이 없어서일까. 그러고보니 이런 적이 전에도 있었다. 처음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을 접했을 때. 그리고 그 느낌이 너무 생경하고 강렬해서 어렵게 찾아냈던 <로제타> 그리고 <더 차일드>까지. 다르덴 형제라는 사람들, 참 지독한 사람들이군. 기껏 80여분의 짧은 시간 동안 내 삶의 풍경마저 이렇게 짓눌러버리다니.

이런 천하의 몹쓸놈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여자친구가 데려온 자신의 아기를 처음 보는 순간에도 소매치기 따위에 더 신경쓰는 남자. 그 아기를 팔아먹고 위기에 몰린 순간에도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여자친구의 집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휴대폰 빌려달라는 기생충 같은 녀석, 브루노. 참으로 세계 영화 역사상 가장 한심한 주인공 캐릭터라 해도 심하지 않을 듯싶다. 예전에 비슷한 캐릭터를 어디선가 봤는데, 어디였더라? 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설경구가 연기했던 그놈, 종두. 그 인간의 한심함도 대단했지. 하지만 종두는 브루노보다는 나름대로 순정적이었고 정의감도 있는 기생충으로, 브루노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마디로 <더 차일드>는-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쓰레기 같은 인간의 순정이나 성찰, 뭐 그런 거에는 전혀 포커스를 주지 않는다. 그냥 벨기에의 어느 도시에 브루노라는 사람이 있어. 지금부터 80분간 그를 따라가보자고. 뭐 그런 식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지고 그의 삶에서의 사소한 공기들을 안 놓치려고 안간힘을 쓰며 따라다니는 촬영기사가 되고 만다. 그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깨에 짊어지고 다녔던 카메라만큼이나 둔탁한 삶의 무게를, 어깨에 닿았던 금속성 물질의 차가운 느낌만큼 황량한 도시의 풍경을 내게 던져놓고 영화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버린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나는 생각한다. 벨기에에 사는 브루노라는 녀석의 이 궁상스런 이야기가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그런데 이상해. 지금 옆에 있다면 눈도 마주치기 싫을 이런 녀석이 왜 이렇게 궁금해지는 걸까. 천사 같은 얼굴의 소니아는 뭘 믿고 이런 녀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거지? 녀석은 나중에 개과천선해서 소니아와 아기와 잘살 수 있을까. 더 궁금한 건, 이 철없는 연인들이 함께 눈물을 흘릴 때 왜 내 마음이 울컥하는 거지? 그 속에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라도 발견했다는 걸까. 아니, 어쩌면 나는 로제타처럼, 올리비에나 브루노처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생존하려는 사람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엔딩에 보여지는 실낱같은 희망의 가능성에 그들을 위해 안도의 한숨을 쉬어주는 동정심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까지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 감흥이 더 오버되어서 크게 다가오는 건 아닐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 영화를 보면, 나의 마음은 왜 난데없이 흔들리는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갔을 때는 내 리스트의 1순위였던 이 영화를 결국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개봉이나 할 수 있을지, 도대체 언제 접할 수 있을지 모를 영화였기 때문에 꼭, 이라고 생각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 달려갈 때 나는 가지 않았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은- 비록 세편밖에 보지는 못했지만- 보기 전에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발걸음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단순히 엄청난 감동이 있고 주제의식이 뛰어나고, 하는 그런 종류의 명작영화들이 주는 압박감과는 다른 묘한 두려움을 그들의 영화를 보면서 느껴왔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긴장감, 그 긴장감에서 오는 목 뒤의 뻐근한 느낌,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은 주인공들의 거친 호흡, 엔딩 크레딧과 함께 천천히 스며오는 차가운 공명…. 그 고독감. 그리고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난데없이 마음을 건드리는 나의 모순된 자의식들. 갑자기 <약속>이라는 내가 보지 못한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궁금해졌다. 그 호기심은 <더 차일드>를 보고 난 뒤의 이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떨치기 전까지 유보시킬 수밖에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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