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더 차일드>를 보는 네 가지 시선 [3] - 한창호 평론가
2006-02-08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파졸리니의 마르크시즘, 브레송의 리얼리즘

나에게 1999년의 칸영화제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바로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와 브뤼노 뒤몽의 <휴머니티>라는 발군의 리얼리즘 작품들이 동시에 발표됐기 때문이다. 원래 프랑스영화는 리얼리즘 전통이 강하다. 특히 로베르 브레송의 엄격한 리얼리즘은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브레송의 적자를 찾자면, 단연 다르덴 형제와 뒤몽이 맨 먼저 눈에 띈다. 다르덴 형제는 프랑스어권 벨기에 출신 영화인들인데, 그들의 미학적 태도는 그 어느 프랑스 감독들보다 더욱더 브레송적이다. 현재 유럽의 리얼리즘을 보면, 이들 프랑스어권 영화인들과 그리고 ‘도그마95’로 출발한 라스 폰 트리에와 그의 동료들이 큰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다르덴식 정치적 리얼리즘

다르덴 형제가 다루는 인물들은 프롤레타리아도 되지 못하는 극단적인 주변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파졸리니와도 자주 비교된다. 처음으로 형제들의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인 <약속>(1996)에선 불법이민자 거래꾼들을, <로제타>에선 트레일러로 만든 간이주택에 사는 무직자 여성을, <아들>(2002)에서는 미성년 살인자를 등장시키는 등, 매번 이들 형제는 존재하나 그 존재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 말 그대로의 주변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다르덴 형제가 <로제타>에 이어 지난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다시 받은 <더 차일드>에서는 집없이 사는 젊은 부랑자 부부를 다룬다. 그러니 좀 거칠게 정리하면, 파졸리니의 마르크스주의 테마에 브레송의 리얼리즘 미학이 겹쳐 있는 게 다르덴 형제 작품의 특징이다.

바로 이 점이, 다르덴 형제와 다른 리얼리스트들을 구분하게 해준다. 현재의 리얼리스트들은 대개 개인의 실존 문제에 초점을 맞춰, 세세한 일상을 꼼꼼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을 주로 내놓는다. 브레송의 미학을 비교적 충실하게 계승한 아티스트들인데, 브뤼노 뒤몽이 바로 그런 감독이고, 우리의 홍상수, 이윤기 감독들도 이쪽으로 분류된다. 다르덴 형제는 개인의 일상을 기록하는 점에선 브레송과 그리고 다른 리얼리스트들과 비슷하지만, 이 형제들이 그려낸 어떤 개인의 일상은, 바로 사회의 환부와 맞닿아 있는 데서 다른 영화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정치적 리얼리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빚는 예민한 문제들을 다룬다. 빈부격차,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 실업문제,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10대들 등, 형제들이 다루는 문제들은 이제 너무나 자주 벌어져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까지 인식하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간과된 혹은 일상화된 문제들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는 지난번 외국인들의 소요 사태가 잘 보여주었다. 개인소득 3만달러가 넘는 유럽 복지국가의 화려한 가면 아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들 형제의 작품들은 차례로 고발하고 있다. 그래서 다르덴 형제는 유럽 마르크시스트 영화인이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 좌파영화의 어떤 전형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 인물들로 수용되는 것이다.

그들의 카메라가 숨 가쁘게 달리는 이유

<더 차일드>는 영아의 불법밀매를 다룬다. 그의 모든 영화의 첫 장면처럼, <더 차일드>도 카메라가 주인공을 숨 가쁘게 뒤따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왜 그렇게 급히 걸어가는지, 위험하게 차가 질주하는 도로를 왜 그렇게 자주 무단횡단하는지, 또 휴대전화는 왜 그렇게 자주 우는지, 설명이 전혀 없다. 이들 형제의 영화에서 매번 반복되는 장치인데, 주인공이 바라보는 시선의 대상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호기심과 긴장감을 잔뜩 고조시킨 뒤, 영화가 시작된 지 대략 30분쯤 지나면, 그 시선의 대상을, 다시 말해 그 이유를 풀어놓는 것이다. 이런 형식을 보자면, 이들의 영화는 어떤 면에선 스릴러를 닮아 있다.

아기의 아빠가 불법밀매 조직과 선을 연결해 방금 전 태어난 아기를 넘겨주고, 돈을 받아내는 장면은 그 어떤 스릴러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도대체 아기의 아빠가 무슨 이유로, 누구를 저렇게 애타게 접선하려 하는지 전혀 설명을 해주지 않고 카메라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장면은 브레송이 <소매치기>(1969)에서 주인공이 시내에서 소매치기하는 수법을 상세히 재연하는 것처럼, 마치 그 방법을 가르쳐주듯 정말 세세하게 재연한다. 밀매조직과 선을 대는 행위 자체가 그 어떤 스토리보다 더욱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표면을 시지각이 인지한 대로 그려보려는, 어찌 보면 불가능한 꿈을 실현하려는 미학이 리얼리즘이다. 리얼리즘은 왜 그렇게 표면에 집착하는가?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바로 그 표면 자체가 ‘바르게’ 인식되지 않고 있으며, 또 그 표면이 얼마나 썩고 있는지를 ‘제대로’ 봐야 한다고 외치는 듯하다. 그래서 이들의 카메라는 매번 그렇게 거칠고 숨 가쁘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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