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이란산 뜨거운 감자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초반에 이어 후반기 베를린영화제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경쟁 부문에 참가한 두편의 이란영화였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자파르 파나히와 라피 피츠에게도 이란의 정치 상황과 검열 문제에 대한 서구 기자들의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졌는데, 두 감독이 비슷한 대답을 들려준 것은 주목할 만하다. 파나히는 “나는 정치적이지 않고 다만 사회적일 뿐이다. 특정한 정치적 방향을 따르는 영화는 만들지 않는다. 물론 나도 정치적 의견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사회 내부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답했으며, 피츠는 “나는 국가와 세계보다는 인간의 상태(Human Condition)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서구 기자들은 두명의 감독이 정치적인 논쟁거리를 덥석 물어주기를 바랐을 테지만, 파나히와 피츠는 이란도 심장이 박동하고 피가 흐르는 인간의 땅임을 보여주는 두편의 영화로 현자의 대답을 들려준 셈이다.
<오프사이드>(Offside) 감독 자파르 파나히/ 주연 시마 모바락 샤히, 사파르 사만다르, 샤예스터 이라니
영아 유기와 낙태로 점철된 이란 여성의 현실을 그린 <써클>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획득했던 자파르 파나히는 그의 경력 중 가장 유쾌한 작품으로 베를린에 왔다. <오프사이드>는 여성의 축구경기장 출입이 금지된 이란에서 몰래 남장을 하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다. 한 소녀가 경기장 입구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경기장 주위에 임시로 쳐놓은 울타리 속에 다른 소녀들과 갇히는 신세가 된다. <오프사이드>의 미덕은 살아 있는 현장성에 기인한다. 파나히는 예전처럼 세밀한 접근법으로 대상들을 탐구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실제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스타디움에서 게릴라식으로 찍은 현장의 열기를 빠르고 경쾌한 편집으로 실어나른다. <디 벨트>는 “영화라는 매체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란인 전체가 광신주의자들이고, 혹시 캐리커처가 실렸는지 외국 신문을 살펴보는 일 외에는 모든 시간을 폭탄 제조에 할애하며 살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오프사이드> 덕분에 우리는 이란인 대부분이 광신주의가 아니라 더 중요한 사안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축구말이다”라고 호평을 보냈다. 적절하고 사려 깊은 평가다. 이란인들은 불타는 덴마크 국기보다는 축구장에서 휘날리는 자국기를 더 보고 싶어하는 보통의 지구인들이다. 그리고 파나히는 그 ‘보통의 지구인’에 이란의 ‘여성’도 끼워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오프사이드>는 작고 소박한 목소리 덕분에 더욱 커다란 울림을 지니는 영화다.
<겨울>(It’s Winter/Zemestan) 감독 라피 피츠/ 주연 미트라 하자르, 알리 닉솔라트, 사에드 오르카니, 아셈 아브디
젊은 이란 감독 라피 피츠의 <겨울>은 이란영화의 주요 경향인 ‘리얼리즘’의 황무지로 관객을 데려간다. 모크타는 철길 옆에 위치한 스산한 집에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일을 찾아 외국으로 떠난다. 춥고 배고픈 세상에서도 절망과 희망은 교차한다. 경찰은 곧 모크타가 죽었음을 아내에게 알려오고, 직업을 찾아 동네로 기어들어온 말하브라는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디 벨트>와 <버라이어티>의 불평처럼 <겨울>은 인간적인 온기를 좀처럼 관객에게 전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테헤란의 겨울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테헤란 빈민촌 인간들의 삶을 위한 투쟁은 온기 하나 없이 절박한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며, 라피 피츠는 어설픈 휴머니즘으로 현실의 고통을 감싸안으려 하지 않는다. 차갑지만 진실한 카메라의 시선이다.
카툰 논쟁은 베를린에서도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의 카툰으로 촉발된 자파르 파나히 기자회견장의 카툰 논쟁
기자회견 일주일 전 베를린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자살테러단처럼 묘사된 이란 축구선수들이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서는 카툰을 실어 또다시 아랍권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자라프 파나히는 회견장에서 “이런 카툰들은 우리를 향한 모욕이며 금지해야만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기자회견에 참석한 <타케스슈피겔> 기자는 “그건 그저 캐리커처에 불과하다. 당신의 영화 <오프사이드>와 마찬가지 형태의 유머를 담은 것이다. 축구선수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며 우리는 결코 이란인들을 모욕할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해 박수를 받아냈고, 파나히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과를 하는 당신의 용기를 존중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타게스슈피겔> 기자는 사과를 할 의도가 아니었다. 나중에 그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월드컵 경기장에 군대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일 우익의 주장을 풍자하고 있는 카툰의 의도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물론 풍자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좁혀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회견장에서 <타게스슈피겔>의 만화를 파나히에게 알렸던 아프리카 출신 기자는 “이 같은 풍자는 멍청한 짓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