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국 배우 전성시대 [4] - 잉글랜드 출신 배우 ②
2006-04-11
글 : 김도훈

로자문드 파이크 Rosamund Pike

<007 네버다이> <둠> <오만과 편견>

“사람들이 나의 영국적인 특색들을 좋아한다면 그걸 애써 감출 생각은 없다.”

<007 네버 다이>의 본드걸과 <둠>의 과학자가 <오만과 편견>의 제인 베넷과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비록 본드걸로 데뷔했지만 로자문드 파이크는 오페라 가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사이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예술가 집안의 숙녀였다. 이러니 강단과 온기가 여문 제인 베넷 역할에 어울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오만과 편견> 이후 로자문드 파이크의 앞에는 꽤 쓸 만한 프로젝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앤서니 홉킨스와 공연할 신작 <분열>(Fracture)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줄 참이다.

Good: <오만과 편견>에서의 인상적인 연기는 본드걸과 <둠>의 이미지를 벗는 데 도움이 될 듯.
Bad: 하지만 할리우드 에이전시가 <둠2> <둠의 귀환> <영원한 둠>의 출연 계약을 종용한다면.

레이첼 와이즈 Rachel Weisz

<콘스탄틴> <콘스탄트 가드너> <미라> <사물의 형태>

“모든 배우들은 사투리 코치를 두고 있다. 그래서 미국인을 연기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레이첼 와이즈는 케임브리지 장학생을 거쳐 23살 되던 해에 ‘토킹 통스’라는 극단을 창립, 런던극장비평가협회로부터 신인상을 수상한 기대주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할리우드로 건너간 와이즈는 <체인 리액션> <미라> <콘스탄틴> 같은 블록버스터들로 재능을 허비해왔다. 닐 라뷰트의 <사물의 형태>를 직접 제작하고 출연하는 등 간간이 할리우드 외부에서 예술적 성취감을 획득해온 그가 늦게라도 <콘스탄트 가드너>로 오스카를 손에 넣은 것은 천만다행. 스스로 “유독성이 강한 장소”라 부르던 할리우드에서 늦은 성공을 거머쥔 와이즈는 이제야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한 듯하다.

Good: 차기작은 왕가위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과 약혼자인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파운틴>이다. 지금 레이첼 와이즈만큼 흥미로운 배우는 할리우드에서 찾기 힘들다.
Bad: 케이트 베킨세일처럼 야망으로 가득 찬 남자친구의 프로젝트에 계속해서 발이 묶인다면.

휴 댄시 Hugh Dancy

<원초적 본능2> <킹 아더> <매혹의 엘라>

“내가 미국을 좋아하는 이유? 아, 한 가지 있다. 미국인들이 고향 사람들보다 내 이름을 더 정확하게 발음한다.”

소년처럼 여린 턱선과 곱슬머리를 지닌 휴 댄시는 2004년 버버리 광고모델로 활약한 탓에 국내에도 몇몇 열성팬을 거느리고 있다. 사실 댄시는 일찌감치 조지 엘리엇과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각색한 <BBC> <대니얼 데론다>와 <데이비드 카퍼필드> 시리즈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며 비평가들의 환대를 받았고, 리들리 스콧의 눈에 들어 <블랙 호크 다운>으로 스크린에 진출했다. <슬리핑 딕셔너리>와 <매혹의 엘라>에서 각각 제시카 알바와 앤 해서웨이의 상대역을 맡으면서 미국시장에도 재빨리 정착한 편이다. 휴 댄시는 여리여리한 외모와 달리 오랜 연극 무대 경험과 <BBC> 고전 각색물로 철저하게 단련된 배우다.

Good: 십대 잡지의 표지로 빈번히 등장한 전력이 있다. 소녀들의 사랑이란 스타덤으로 향하는 좋은 징조다.
Bad: 그러나 영화 속보다 버버리 광고에서 더 멋지게 보이는 건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다.

폴 베타니 Paul Bettany

<윔블던> <도그빌>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나는 영국인들이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을 사랑한다. 우리는 대개 이렇게 말하거든. ‘걔도 알고 보면 우리 같은 패배자야’.”

폴 베타니는 3대 배우 가문에서 태어난 까닭에 엄마 뱃속에서부터 배우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당연히 런던 드라마센터와 왕립셰익스피어극단을 거치며 정식 코스를 밟은 그는 위대한 영국 배우들이 가르쳐준 할리우드 진출법을 따랐다. 근사한 조연(!)이 되는 것이다. 존경하는 배우가 험프리 보가트와 뱅상 카셀이라는 이 남자에게 <파이어월>의 매서운 악당 역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베타니의 진짜 매력은 <윔블던>과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의 영국식 소심남이 아닐까. 아내인 제니퍼 코넬리와의 사이에 3살 난 아들이 있다.

Good: 그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영국성’(Englishness)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피부와 머리카락마저도.
Bad: 최근작 <파이어월>과 <다빈치 코드>에서 연이어 악역을 맡았다. ‘영국 배우=악역’ 공식에 빠져들 가능성이 짙다.

시에나 밀러 Sienna Miller

<레이어 케이크> <나를 책임져, 알피> <카사노바>

“나는 완벽한 영국인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시에나 밀러가 명성을 얻은 것은 주드 로 덕분(때문)이다. 성대한 약혼이 주드 로의 바람기로 인해 7개월 만에 파혼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밀러는 파파라치의 뮤즈가 되었고, 런던과 뉴욕의 패션지들은 파파라치에 쫓기면서도 완벽한 스타일을 유지했던 그를 패션 아이콘으로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스타덤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밀러는 <카사노바>의 인상적인 남장 검객 역 외에는 아직까지 배우로서의 가치를 입증해낸 적이 없다. 자신의 거품을 잘 알고 있는 밀러가 <팩토리 걸>에 뛰어든 것도 그런 조바심 때문일 것이다. 밀러가 연기할 캐릭터는 앤디 워홀의 연인이었던 에디 세즈윅. 패션과 팝문화와 정신질환과 약물중독의 뮤즈라니, 꽤나 야심적인 행보가 아닌가.

Good: 할리우드는 영국 출신의 갈색머리 연기파를 좋아한다. 물론 금발의 미녀라면 더더욱.
Bad: 주드 로 없이 홀로서기에 성공했지만, 패션잡지들의 후원 없이도 계속 스타에 머무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사진제공 REX,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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