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놓치면 후회하는 영화음악 20선 [3] - 쓸쓸한 러브스토리
2006-05-08
정리 : 김나형
쓸쓸한 러브스토리로 유명해진 O.S.T

세상 끝의 슬픔 그리고 고독

<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
1963년/ 감독 루이지 코멘체니 / 음악 카를로 루스티첼리

대학 다닐 때 ‘BB냐 CC냐’ 하는 말이 있었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둘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거다. 그럴 정도로 이 두 여자가 세상 뭇 남자를 사로잡았는데 나는 CC의 팬이었다. CC는 청순가련형이고 BB는 막 벗는 스타일이라 CC의 팬이 7 대 3 정도로 적었다. 나는 BB 좋아하는 애들과는 안 놀았다. 대개 불량학생들이고 공부도 못했거든.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얘기하는데, 꼭 필요한 부분에 알몸으로 나오는 건 예술이다. 금방 목욕했는데 5분 뒤에 목욕을 또 하면 그게 외설이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목욕을 자주 했다. 그래서 싫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딱 한번만 한다. 그래서 좋았다. 사춘기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청초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부베의 연인>은 이 청초한 여인의 순애보다. 조지 차키리스라고, 당시 유명했던 배우가 부베 역을 맡았다. 부베는 말하자면 운동권 학생이다. 계속 데모하고 반정부 투쟁하고 피해다니면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항상 외롭게 한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쁘니까 아까 말한 BB 좋아하는 애들이 들러붙어서 ‘부베는 가망없는 애다. 언젠가는 사형당할 수도 있다’면서 유혹한다. 다른 여자 같았으면 스스로 그 남자를 버렸을 텐데 그녀는 안 넘어간다. 정말 좋은 여자인 거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매번 감옥으로 면회를 가는데, 기차를 타고 부베를 만나러 갈 때 기뻐하는 그 청순가련한 표정. 그 뒤로 이탈리아 음악가 카를로 루스티첼리의 주제곡이 쫙 깔린다. 이 음악이 청초한 순애보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다.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
1969년/ 감독 존 슐레진저/ 음악 존 배리

지금은 죽고 없는, 존 슐레진저 감독의 명작이다. 배우 존 보이트를 세상에 알린 영화기도 하다. 영화의 압권은 더스틴 호프먼이다. 절름발이 노숙자를 연기했는데, 신들린 듯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더스틴 호프먼은 이 영화에서 연기상을 못 받았다. <빠삐용>에서도 상을 못 받았다. 이런 영화에서 상을 안 주고 <투씨> 같은 후진 영화에서 상을 주다니, 아카데미의 권위를 다시 한번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제목을 두고 ‘카우보이가 밤에 뭐 다닐 일 있냐’ 하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는데, 어떤 소외된 청년, 우리나라로 치자면 어둠의 자식, 그런 뜻이다. 도시의 어둠과 자본주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영화. 하모니카의 제왕 투스 틸레망의 연주도 들어 있고 주제곡은 해리 닐슨이 불렀다. 전체 음악 스코어는 007 시리즈의 존 배리가 담당했다. 음악도 좋고, 영화는 더 좋고. 보지 않은 사람에겐 꼭 추천하고 싶다.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년/ 감독 빔 벤더스/ 음악 라이 쿠더

빔 벤더스는 영화감독 중에서 손꼽히는 음악광이다. 그 파트너가 또 라이 쿠더인 거고. 좋은 감독 옆에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음악감독이 있다. 그들의 앙상블이 절묘한 빛을 발한다. 빔 벤더스가 방황하는 여인 나스타샤 킨스키를 아름답게 찍어냈고, 라이 쿠더의 처절한 슬라이드 기타가 채찍처럼 발목에 감긴다. 요부 스타일로 많이 나오는데다 삼류영화에 많이 나와서 나스타샤 킨스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가 생각을 바꿔놓았다. 감독들이 장사하려고 그동안 너무 거지 같은 영화에 출연시켜서 그렇지, 이 여자가 너무 아름다운 여자구나 하고 생각했다. 주제곡과 <Cancion Mixteca>를 추천한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1995년/ 감독 마이클 피기스/ 음악 마이클 피기스

알코올 중독자와 창녀의 이야기를 너무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이 영화가 없었으면 니콜라스 케이지도 없다. 엘리자베스 슈도 그 못지않게 잘된 캐스팅이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때문에 엘리자베스 슈를 좋아하게 됐다. 나는 나만 좋아해주는 여자가 좋지 창녀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창녀가 있을 수 있나 싶더라. 재즈 뮤지션이기도 한 마이클 피기스 감독 자신이 음악까지 담당했다. 주제곡 <My One & Only Love>를 비롯한 <Angel Eyes> <It’s A Lonesome Old Town> 같은 곡들은 스팅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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