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놓치면 후회하는 영화음악 20선 [1] - 프랑스영화
2006-05-08
정리 : 김나형

디스크자키 전영혁이 골라준 영화 O.S.T 베스트 20

디스크자키 전영혁은 늘 음악을 수집한다. 그리고 수집한 음악을 매일 밤 풀어놓는다. 음악은 전파를 타고 흘러가 고픈 이들의 마음에 양식으로 쌓인다. 알고 보니 그가 모으는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는 학교가 일찍 파하는 시험기간을 기다려 하루에 3편씩 영화를 보던 학생이었고, 영화를 실컷 볼 심산으로 대학 졸업 뒤 태창영화사 수입부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씨네21>은 그가 꼽는 영화음악에 대해 들을 수 있겠냐고 청했다. 얼마 전 <전영혁의 음악세계> 방송 20주년을 맞은 그는, 기념행사며 인터뷰며 여러 가지로 분주함에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요즘 영화는 <룩 앳 미>와 <코러스> 정도뿐이네요.” “요즘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니까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옛날영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수 있을 것도 같고요. 이렇게 좋은 영화들을 못 보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해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앙겔로풀로스 영화들, <흑인 오르페> 이런 건 꼭 봐야 해요. 너무 슬프고 감동적인 영화예요.” 조용히 얘기를 시작한 그는 영화음악보다 외려 영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듯도 싶었다. “그래야 책 보는 사람이 판도 사고 영화도 볼 거잖아요. 궁극적으로 영화를 봐야 해요. 판만 들으면 안 돼. 그래서 영화도 좋고 음악도 좋은 영화를 골랐어요.” 그렇게 그는 자신이 수집한 ‘음악이 좋은 영화’ 20편을 풀어놓았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프랑스영화의 O.S.T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선율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년/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음악 즈비그뉴 프라이즈너

아카데미 작품, 음악, 여우주연, 촬영, 각본 이렇게 5개 부문은 수상했어야 마땅한 영화다. 폴란드 감독이 만든 프랑스영화라고 상을 안 준 거다, 미국 사람들이. 우선 음악이 너무 좋고, 내가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고 생각하는 이렌느 야곱이 나왔다. 영상도 아름다웠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다. 요즘에는 이상한 영화를 다 컬트라고 하는데, 이런 영화가 진짜 컬트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주제로 철학을 담은 영화가 진짜 컬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는 나하고 똑같은 이름에 똑같은 외모에 성격이 똑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압권은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노래하다가 탁 쓰러져서 죽는 장면인데, 그때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이를 닦고 있다. 근데 갑자기 막 아파오는 거다.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슬픈 거다. 자기의 분신이 죽었으니까. 그런 착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음악 역시 너무 좋다. 슬프고 아름답고.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음악은 항상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만들었다. 그런 훌륭한 영화음악가가 있었기 때문에 영상과 음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재미난 것은 반 부덴 메이어라는 네덜란드 작곡가의 존재인데, 영화 속에 그의 음악이라며 너무 좋은 곡이 나온다. 내가 음악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어서 알아내서 음반을 모조리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하는 음대 교수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 클래식 백과사전에서 찾았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거기는 한곡만 남기고 죽은 사람들도 다 나오는데. 이 천재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반 부덴 메이어는 결국 프라이즈너 자신인 거다. 이 사람 <레드>에도 나온다. 잠깐 등장한 이렌느 야곱이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서 반 부덴 메이어 음반을 찾다가 나가는 장면이다. 아무튼 굉장히 고생했다. 이 사람이 천재 콤비가 지어낸 가상의 존재라는 걸 알기까지.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1991년/ 감독 알랭 코르노/ 음악 조르디 사발

알랭 코르노 연출, 제라르 드 파르디외의 호연, 조르디 사발의 음악이 삼위일체를 이룬 고전음악영화의 걸작이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모태인 악기인데, 그 연주가의 얘기다. 재밌다. 제라르 드 파르디외는 후진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연기도 잘하고, 영화 못지않게 음악도 좋다. 조르디 사발은 고음악의 일인자다. 이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을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다. 몽세라 피구에라스가 노래도 했는데, 조르디 사발의 아내다. 우리는 흔히 조르디 사발 사단이라 그런다. 아들, 딸, 뭐 다 같이 하거든. 전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다(조르디 사발의 아내, 아들, 딸이 멤버를 이룬 고음악 전문 실내악 앙상블 ‘에스페리옹21’은 지난해 3월 내한했었다).

<룩 앳 미> Comme Une Image
2004년/ 감독 아녜스 자우이/ 음악 필립 롱비

프랑스판 ‘삼순이’. 최근 본 영화 중에 너무 좋았던 영화다. 여주인공을 보고 처음엔 ‘너무너무 못생겼다’ 했는데 끝으로 가니 나 역시 그녀가 좋아지더라.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섬세하고 순수하고 아주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는, 그런 심리묘사가 잘돼 있다. <타인의 취향>의 명장 아녜스 자우이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백미는 단연 음악이다. 슈베르트의 명곡 <음악에>가 여러 버전으로 담겨 있는데 라스트신의 합창이 가장 감동적이다. 슈베르트가 이미 오래전에 알려준 거다. 음악은 종교 이상의 가치를 가졌고, 사람의 생명도 구할 수 있다고.

<코러스> Les Choristes
2004년/ 감독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음악 브뤼노 클레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뤼노 클레가 음악을 맡아 2004년 프랑스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휴지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최고의 소년합창단으로 만들어낸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감동을 안긴다. 그러나 단순한 음악영화로 보면 안 된다. <코러스>는 현재 우리들의 문제- 빈부 격차, 버려지는 아이들, 추락한 교권- 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다.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화고, 촌지받는 선생님들을 다 모아서 보여줘야 하는 영화다.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데, 고아 수출국 1위다. 아이 버린 사람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 입장가! 아이와 어른 모두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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