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류승완의 <짝패> [2] - 류승완 인터뷰
2006-05-24
글 : 문석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짝패>는 어떻게 구상했나.
=최근 들어 영화 만들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스타일이나 장르보다는 어떤 이야기냐, 어떤 인물들이 나오냐가 우선이다. 그것이 스타일과 장르를 규정한다는 것인데, 이번에는 정반대였던 것 같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나 <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들 때처럼 말이다. 처음 컨셉은 ‘남자 2명이 나오는 일종의 버디무비이면서 진짜 액션영화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정두홍이 직접 출연해서 속임수없는 생짜 액션을 한다’는 정도였다. 그 다음 스토리를 고민했다. 초반에는 아주 전형적인 액션 플롯의 스토리가 나왔는데, 과연 평범한 액션영화를 만드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장르를 내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 스타일로 장르를 해석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오우삼이나 장철의 인물들이 로만 폴란스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성룡 같은 스타일의 액션을 펼친다’는 것 말이다. (웃음) 영화로 말하자면, ‘<영웅본색>의 인물들이 <차이나타운>이나 <LA 컨피덴셜>로 가서 <폴리스 스토리>의 액션을 보여준다’이다.

-참 기묘한 조합이다.
=사실 말도 안되는 조합인데 그런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을 굳이 말로 하자면, 어떤 구체적인 장면이나 스토리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예전처럼 흉내내고 싶었던 특정한 영화들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나를 일궈놓은 것을 토대로 나 스스로를 증명해내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 특유의 액션을 보여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여간 이 영화는 어쩌면 내 필모그래피에서 마지막 액션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 액션영화라니.
=현재의 나는 액션영화라는 장르에 대해서 예전만큼 열광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는 이상하게 액션영화가 예전만큼 재미없다. 물론 다음에도 액션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는, 날것으로서의 액션이라는 컨셉은 어떻게 나왔나.
=<아라한 장풍대작전> 이후로 와이어 액션이나 컴퓨터그래픽이 너무 싫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짝패>나 <주먹이 운다>의 그래픽 효과 정도다. 그리고 속이지 않는 액션이란 것은 어떤 동작을 할 때 그 배우가 직접 펼치는 것을 관객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그 사람을 쫓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 저거 대역 아닌가, 라는 반응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거잖나.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감독이 직접 출연한 것도 그런 차원인가.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는 때리는 쾌감 못지않게 맞는 고통을 잘 표현한다. 대역을 써서 뻔히 보이는 스턴트 장면을 쓰는 것과 동작이 조금 멋들어지게 안 나오더라도 실제 인물이 과격한 동작을 해내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직접 출연한 것도 그런 장점을 고려했다. 정두홍의 경우 다른 연기자에 비해 육체훈련이 훨씬 잘된 편이고, 나도 예전부터 몸에 습득된 게 있어서 그런 부분을 표현하는 데 용이하다고 봤다.

-정두홍을 처음으로 주연으로 기용했다. 연기에 대한 나름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정두홍 감독의 어떤 측면을 가장 자연스레 포착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촬영 중반에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정 감독님이나 나나 우리 두 사람에게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정 감독으로서는 스턴트맨이자 액션배우로서 자신의 육체 능력의 한계치를 보여주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사실 나이가 불혹이잖나. 그리고 나로서는 액션영화의 흥분보다는 다른 쪽의 흥분이 나를 이끌고 있으니 마지막일지 모른다.

-다양한 시나리오 버전이 있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두명의 요짐보가 7인의 사무라이처럼 마을을 구한다’, 뭐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 어떤 곳으로 돌아오고, 또 다른 이방인이 있다. 그런데 둘이 누명을 쓰게 되면서 같은 팀이 돼 누명을 벗기 위해 달려간다는 플롯이었다. 그러다가 이야기 축이 한번 크게 바뀌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결국 지금으로 오게 됐다. 시나리오를 만드는 동안 승범이가 특별출연해줄 만한 역할이 들어갔다 빠지기도 했다. 사실 승범이는 충청도 사투리 연기를 굉장히 하고 싶어했다. 양동근도 액션을 꼭 한번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그런 배우들이 나와주면 너무 좋지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 영화는 유명한 얼굴이 나와서 깜짝쇼를 할 만한 영화가 아니라는. 처음의 의도가 많이 퇴색한달까, 장난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쾌함을 유지해야 하겠지만 경박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출자로서 가장 힘을 기울인 지점은 무엇인가.
=이 영화를 통해서 나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류승완의 세계다. 남들이 내 세계를 규정지으려고 하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나 스스로 내 세계가 어떤 건지 확인하고자 했다. 콘티를 짤 때 현장에서 저돌적으로 부딪히려 했던 것도 정말 순수하게 류승완만이 판단내리고 해석할 수 있는 방식이 뭘까를 좀 적극적으로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타란티노에게 의지하고, 어떤 날은 드 팔마에게, 어떤 날은 성룡에게, 어떤 날은 오우삼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류승완에 의지해서, 그리고 나와 영화를 같이 만들고 있는 동료들의 힘에 의지해서 만든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그럼에도 영향받은 영화의 흔적이 엿보인다.
=거기에 대해서는 변명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게 나를 이루고 있는 것, 나 자신이니까. 하지만 남의 것을 카피한다는 것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봐야 원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원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내 해석이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닌가. 점점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이 새롭게 정립돼가는 시기인 것 같다. 솔직히 예전에는 그런 것을 자랑하고 싶었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를 만들면서 콤플렉스가 작용하는 지점이 없지 않은데, 모두 알고 있듯이 내 또래로 대학을 나오지 않고 영화를 만든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나 경제적인 콤플렉스 같은 것 때문에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당신들이 본 만큼 나도 영화를 많이 봤다고 증명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영화 속에 집어넣어 자랑하고, 증명하고 싶었던 철없는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내가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게 사실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 같다.

-25억원이면 이 정도 규모의 액션영화로선 큰 예산이 아닌 것 같다. 적은 예산으로 영화 만드는 것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끝나고 나서 고예산 영화에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이 영화를 하면서 정말 좋았던 것이 제한된 환경을 끊임없이 아이디어로 돌파해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때 생각도 많이 났다. 사실 굉장히 힘들고 피곤하다. 그렇다고 내가 선택한 그 모든 것이 성공적이라는 보장도 없고, 실제로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아이디어로 돌파해냈을 때의 쾌감이라는 것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분을 안겨준다. 정말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보람을 안겨준다. 영화를 좀더 순수한 창작활동의 결정체로 만들어준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아무래도 영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규모의 미학을 느끼게 해줘야 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런 지점에서 조금 물러서야 한다는 것이다.

-충청도 사투리의 묘한 매력이 있다.
=아무리 폼을 잡아도 충청도 사투리가 나오면 안 잡힌다. 아무리 각을 넣어도 각이 안 산다. 그리고 그건 어느 순간인가,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태도와 맞물리는 것 같다. 너희들이 아무리 ‘후까시’를 잡고 산다 한들 너네도 다 방귀 뀌고 사는 놈들이라는. 충청도 사투리의 에피소드에는 재밌는 게 많다. 이를테면 아들이 도자기를 깼는데, 아버지가 ‘내비둬. 깨지니께 도자기지, 안 깨지면 스뎅이게’라고 했다는. (웃음) 충청도 사투리의 세계는 뭔가 명확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더 냉혹하다. 예를 들어 ‘아유 안쓰러워 죽겠네’라고 말하는데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영화가 너무 세서 여성관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든 것 같더라.
=모르겠다. 그들이 봐서 좋아하면 좋은 건데. 나는 지금까지 특정 관객층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여성관객을 고려했다면, 사시미칼 액션장면에서 여성들이 너무 무서워해서 사운드를 최대한 죽인 것 정도? 여성을 극장에 들어오게는 못할지언정 극장 밖으로 나가게는 하지 말자는 차원에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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