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는 류승완과 정두홍의 야심찬 액션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적은 예산과 넉넉지 않은 시간, 그리고 갑자기 닥쳐온 부상 때문에 그들 마음에 꽉 찰 정도의 장면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액션을 추구하는 기운만큼은 스크린 가득 들어차 있다. 류승완, 정두홍이 티격태격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액션장면과 그 이면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해줬다. DVD보다 먼저 보는 <짝패>의 액션 코멘터리.
장면 #1/ 고등학생 시절 패싸움의 기억
태수(정두홍), 왕재(안길강), 필호(이범수), 동환(정석용), 석환(류승완)은 온성의 뒷골목을 누비던 유명한 10대들. 이들이 가을 소풍을 무사히 지나칠 리가 없다. 다섯명의 패거리는 다른 학교 학생들 수십명과 시비가 붙어 난투극을 벌인다.
류승완/ 지금부터 정두홍 감독님과 함께 <짝패>의 액션에 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액션신입니다. 이 영화는 왕재가 죽은 뒤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죠. 그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사건의 심리적 크기나 정서의 깊이를 강하게 느껴지게 하려면 인물들의 전사(前史)와 관계가 중요했죠. 이 장면도 10대 시절의 에피소드를 통해 캐릭터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어요.
정두홍/ 이 장면은 액션 합을 다 짜놓았지만, <중천> 촬영 때문에 중국에 가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어. 아주 아쉬워. 사실 그런 패싸움의 추억이 있거든. 소풍이나 수학여행 같은 데 가서 싸운 기억들. 그런데 나는 교복이나 교련복 차림으로 싸웠으면 했었어.
류승완/ 일단 1987년이라고 배경이 나오는데, 당시가 교복 자율화 시대였고. 무엇보다 옷을 통해서 캐릭터와 개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태수는 전영록 패션, 석환이는 <논노> 같은 잡지에 나오는 일본풍 패션, 필호는 전형적인 양아치 패션, 이렇게요. 그래도 싸움 장소를 수로로 잡은 것도 정 감독님 의견을 받아들인 거잖아요.
정두홍/ 그게 제천의 의림지인가, 그 부근이었는데, 수로에서 물을 첨벙거리고 하면 얼마나 시원하겠어. 풋풋하고 그런 느낌이 살아나지 않겠냐고.
류승완/ 에, 저는 제작자 입장에서 로케이션 동선이 짧아질 수 있다는 장점을 봤죠.
정두홍/ 그런데 그 장면 찍을 때 무척 추웠지.
류승완/ 그게 첫 촬영이었는데, 9월이라 꽤 쌀쌀했죠. 그래도 물이란 게 동심으로 이끌어서 그런지 배우뿐 아니라 스탭들도 다 물에 들어가서 재밌게 촬영했잖아요.
정두홍/ 그 배경에 나미의 <영원한 친구>를 깐 것은 아주 좋았어.
류승완/ 그 이후 얘기를 미리 드러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영원할 것 같았던 친구들이 10여년이 흘러 어떻게 되는지를. 음악의 경쾌함도 중요했어요.
장면 #2/ 태수, 뒷골목에서 1 대 5 맞장을 뜨다
왕재의 죽음 소식을 들은 태수는 서울에서 온성으로 내려온다. 형사인 태수는 왕재의 죽음을 수사하던 중 오락실에서 10대 양아치를 만난다. 양아치는 뒷골목으로 달아나고 이를 쫓던 태수는 앞길을 막아선 5명의 양아치와 정면대결을 하게 된다.
류승완/ 이 장면에서는 정말 정두홍식의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것으로 액션의 포문을 열자는 생각이었죠. 그야말로 정두홍만의 몸틀임이 있는데, 발의 각도라든가 손을 막아내는 모습이라든가, 최대한 연출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이런 정통 액션은 오랜만 아니었나요?
정두홍/ <바람의 파이터> 때는 분량이 적었고,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는 와이어 액션이 많았으니까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 처음 아니었나 싶어.
류승완/ 이 장면은 좁은 골목에서 태수가 양아치들과 맞서는 모습을 직부감으로 잡는 컷으로 시작하죠. 이건 <장군의 아들>에 대한 오마주 차원이었죠.
정두홍/ 근데 골목이 너무 좁아서 움직이기가 힘들더라고.
류승완/ 상대가 서울액션스쿨의 20대 무술연기자들인데도 다들 정 감독님 스피드를 못 쫓아가던데. 벽 타고서 발차기 잘만 하시더만요.
정두홍/ 아, 그러다가 오른쪽 눈 바로 아래를 다쳤잖아. 여섯 바늘인가 꿰맸다고.
류승완/ 벽의 튀어나온 부분에 받혔는데, 다들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영화 찍으면서 계속 오른쪽 눈 주변만 다치셨잖아요. 구둣발에 찍히고 뭔가에 부딪치고.
정두홍/ 그것도 나로선 첫 촬영에 그랬으니 얼마나 불길했겠어.
류승완/ 아, 액션스쿨을 파주로 옮기면 눈 하나를 잃게 될 거라는 점괘를 받으셨었죠. 아이고, 미신에 참 약하세요.
정두홍/ 어떤 분이 그렇게 말을 해주셨었는데, 나뿐 아니라 여러 명이 사시미 칼 액션할 때 눈 주위만 다쳤잖아. 촬영 끝난 뒤에 액션스쿨 이사를 해놓고는 고사를 올렸지.
류승완/ 그래도 의연하시데요. 혹시 첫 주연이라서 그렇게 열심히…?
정두홍/ 에이, 이 사람이…. 나는 주인공이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어.
류승완/ 참 희한한 게, 제가 ‘정 감독님 평소 말투대로 하세요’라고 주문을 아무리 해도 막상 카메라만 돌면 괴상한 말투로 말하셨잖아요.
정두홍/ 내가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거의 말을 안 했어. 그렇게 입을 안 열어서 그런지 사투리도 이상하다니까.
류승완/ 그리고 왜 카메라 앞에만 서면 그렇게 웃으세요?
정두홍/ 류 감독 얼굴만 보면 왜 그리 웃긴지. 아, 그만 쳐다봐!
장면 #3/ 태수, 석환과 10대 양아치 100여명의 격투
뒷골목에서 5명을 제압하고 대로로 나온 태수는 힙합 댄서들을 만난다. 이들은 춤을 응용한 동작으로 태수를 공격하고, 곧이어 야구부, 아이스하키부, MTB 자전거 패거리, 여학생 깡패 등이 차례로 등장해 태수에게 달려든다. 이때 석환이 등장해 본격적인 난투극이 벌어진다.
류승완/ 온성처럼 범죄에 찌든 타락한 도시라면 10대가 뒷골목을 장악할 거라고 생각했죠. 일반적인 조폭영화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액션을 보여주고 싶어서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켰죠. 가장 먼저 비보이(B-Boy)들이 나오는데, 춤과 액션의 결합은 꼭 하고 싶었던 것이었고, 거기서 좀더 나가려고 했어요. 인라인 스케이트, 스케이트 보드 같은 X-스포츠 액션을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정두홍/ 그게 떡하니 <옹박: 두번째 미션>에 나온 거지. 우리가 생각했던 컨셉과는 달랐지만.
류승완/ 그렇다고 쓸 수는 없었죠. 이 장면을 찍은 곳이 청주의 성안길, 그냥 ‘본정통’이라고도 부르는 곳인데요 5일인가 찍으면서 주변분들로부터 굉장히 큰 협조를 받았죠.
정두홍/ 처음에는 다들 도와주셨지. 패션의 거리라 밤 10시면 거의 문을 닫지만, 술집들도 있어서 갈수록 분위기가 이상해졌지.
류승완/ 그거 기억나세요?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촬영장으로 달려와서 소리질렀던 거요. “누가 우리 가게 앞 계단에 똥 싸놨어!” 하고.
정두홍/ 그런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아무래도 내 체력이 떨어진 게 문제 아니었어? 내가 원래 낮에 잠을 못 자잖아. 3∼4시간 정도 자고 5일 내내 밤을 새워서 액션장면을 찍는데, 날이 추워서 갈수록 힘이 부치더라고.
류승완/ 하긴 예전에 정 감독님은 자신과 타협하는 법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어느 순간부터 본인을 아끼시더군요.
정두홍/ 아, 그거야 내가 주연이니까 그랬지. 다치거나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류승완/ 아까는 주인공이라는 생각 추호도 가져본 적 없다더니. 정말 힘드신가보다 했던 게,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면서 촬영 준비를 하는데 정 감독님이 혼잣말로 “두홍아 할 수 있다, 두홍아 가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근데 그거 일부러 들으라고 하신 거 아녜요?
정두홍/ 에게, 촬영 첫날부터 다리 다친 건 누군데.
류승완/ 촬영 전부터 운동을 했지만, 본격적으로 액션 연습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발차기를 한 건데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될 게 뭐람. 그것 때문에 정말 힘들었잖아요. 애초에는 성안길 1km를 달리면서 계속 새로운 적을 만나게 되는 체이스를 구상했는데, 주위 여건과 제 다리 때문에 구현하지 못했죠.
정두홍/ 찍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나빠져갔으니까. 우리 액션스쿨 친구들도 그 장면 찍을 때 엄청 다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