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주인공들을 내세워 다양한 갈등 구조 조망한 <가족의 탄생>
빈틈없이 잘 짜인 이야기를 가진 영화는 보는 이를 하나의 주제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만큼 작품 속에 관객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두지 않는 법이다. 김태용의 새 영화 <가족의 탄생>은 철두철미하게 계산된 플롯을 버리고 느슨하게 엮인 세 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접근한다. 영화는 서두에서 서로 연결되지 않은 세 가지 장면을 제시한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불친절하게 배치한 플롯을 일목요연하게 구성하는 데 익숙해진 관객은, 서둘러 인물들을 제목에서 암시된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묶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예상보다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의 간극이 존재한다.
<가족의 탄생>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리좀형’(rhizome) 구조와 닮아 있다. 그것은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나와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작은 가지들이 뻗어나와 있는 ‘수목형’(tree) 구조와 대조를 이룬다. 원래는 식물학적 용어인 리좀은 스스로 뿌리이자 줄기를 이루는 식물을 가리키는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용어를 통해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는 등가의 선들이 자유롭게 교차하며 무한 증식이 가능한 구조를 제시한다. 이같은 구분을 서사 구조에 대입하면, 한두명의 주인공들이 겪는 중심적 갈등을 중심으로 삼으며 잔재미를 주는 주변 인물들을 양념처럼 섞어 이야기를 구성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서사는 수목형 구조를 취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동일한 중요도를 획득하는 다양한 인물을 내세워 그들이 겪는 다양한 갈등 구조를 조망하는 플롯은 리좀형 구조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김태용 감독의 새 영화에는 미라(문소리), 무신(고두심), 형철(엄태웅), 선경(공효진), 매자(김혜옥), 경석(봉태규) 그리고 채현(정유미) 등 다수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오래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동생 형철의 갑작스러운 전화와 방문에 미라는 반가움과 당황스러움이 교차한다. 게다가 그녀는 그가 데려온 나이 많은 올케 무신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처하지만, 그들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기로 한다. 화해와 공존을 주장하면서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어떤 책임에도 무심한 형철 때문에 두 여자의 심사는 점점 더 막막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라는 혈연적 끈으로 얽힌 형철에게보다 정서적 동질감에 기반한 무신과의 관계에 더 애착이 생긴다.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탈성화(脫性化)된 관념적 대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선경은 중년의 나이에도 사랑받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엄마 매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연애가 파탄나는 과정을 겪고 생각보다 질기고 낭만적인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엄마의 연애를 목격한 뒤, 엄마가 남긴 유품에서 자신에 대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엄마를 한명의 여성으로, 욕망을 가진 또 다른 주체로 이해하게 된다. 모성을 충분히 경험하기도 전에 엄마를 잃은 경석은 누나인 선경과 애인인 채현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에 대해서 큰 혼란에 빠진다. 그는 채현의 두 엄마인 미라와 무신을 만나면서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어머니의 자리를 살아 있는 여성들로 채워 나간다.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주체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극복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주체가 상징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대타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어머니는 주체가 성인으로서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분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머니와의 분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분리 이후 그를 주체 안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대부분 여성적 주체는 어머니의 삶을 거부하고 좀더 독립적인 개체로서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자 하고, 남성적 주체는 어머니를 이상화된 여성으로 관념화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자신과 동일한 욕망을 가진 주체로서 인정하는 순간, 분리 작업이 정상적으로 완성됨을 이야기한다. <가족의 탄생>의 이야기 구조는 이와 같은 주제와 형식적으로 공명한다. 견고한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한 하나의 통일된 질서를 지향하는 아버지의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질서의 공존과 모든 주체의 목소리에 동일한 무게를 부여하는 다성적 형식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보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어머니라는 존재 안에는 모성과 성욕을 비롯한 다양한 욕망이 공존하고 있으며, 다양한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하는 주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