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먼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최근의 문제적인 감독들이 즐겨 다루는 ‘시간’의 모티브로 출발한다. 그 시간이 선형적인 진행형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간>은 시간의 종착점과 출발점이 동일한, 순환적인 시간개념을 다루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보여줬던 시간의 순환성에 대한 또 다른 사유의 결과인데, 이번에는 순환의 구조 속에 동일한 인물이 배치돼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의 시작과 끝에 만날 수 없는 같은 사람이 동시에 등장한다. 그런데도 비현실적인 인물배치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허구 속에서 매듭지어 있다. 아마 우리 영화에서 시간에 관한 사유의 소재를 이만큼이라도 제공한 작품은 드물 것이다.
익숙한 소재, 희미한 사유
이런 ‘새로운’ 시간개념에 들어 있는 주내용도 문제적인 감독들이 최근에 자주 다루는 정체성의 분열에 관한 것이다. ‘새롭고’ 싶다는 욕망이 분열을 초래한다. <시간>은 분열된 자아 혹은 하나의 몸에 깃든 두 정신의 충돌이 빚어내는 파멸의 드라마다. <파란 대문> 또는 <수취인불명>의 다른 버전인 셈인데, 정체성의 분열은 감독이 그동안 남다르게 고민해온 일관된 주제다. 우리 영화계에서 캐릭터의 복잡성을 이만큼 진전시킨 사례도 별로 없다. 단순한 시간구조에 표피적인 인물들이 넘쳐나는 최근의 우리 영화 사정을 고려하면, <시간>은 역시 ‘영화보기의 불편함’을 제공하는 김기덕 감독의 도전적인 미덕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그런데 <시간>은 몇 가지 점에서 안타까움도 노출했다. <빈 집> 등 최근작에서 보여줬듯, 김기덕의 영화에서 이제 사유와 명상의 시적인 이미지는 그의 미학의 두드러진 장점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안토니오니, 오즈의 영화들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는 모든 이야기를 창작자가 쥐고 있는 관습적인 방식과 결별하고, 감독의 통제에서도 약간 벗어나 있는 자유로운 형식을 제공해왔다. 과잉의 연기를 해대는 ‘알려진’ 연기자들과의 멀어짐도 이런 미학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조재현의 연기에서 대사를 빼버린 <나쁜 남자> 이후 그의 영화는 이제 행위를 뒤쫓는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멀어질 것임이 예고된 셈이다. 관객은 인물들의 말을 듣고 행동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무언의 모습을 보며, 혹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며, 공상의 자유로움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기덕의 영화는 세계와 견줄 만하고 그 결과는 유럽 유명 영화제의 수상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설명투의 필요없는 대사들
그런데 <시간>은 그런 미학적 전개가 약간 후퇴한 듯하다. 시간에 대한 고민이 제시됐으나, 그 용량은 아주 미미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서양영화들에서 자주 써먹는 트릭의 수준이라고 폄하해도 적극적으로 방어하긴 어려울 것 같다. 소재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것들이다. 한 여성이 새롭고 싶다는 욕망에 성형을 하고, 결국 후회한다는 모티브는 이젠 TV통속극에서도 식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연한 사람이 외로운 마음에 잠시 다른 사람을 만났으나, 과거의 사랑이 나타나자 순식간에 마음이 변해 과거의 연인에게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의 모티브이고, <몽상가의 나흘밤>(로베르 브레송), <백야>(루키노 비스콘티) 등의 영화에서 이미 써먹은 것들이다.
<시간>은 열린 형식의 드라마 작법에서, 관습적인 폐쇄구조로 약간 뒤돌아간 셈인데, 그래서인지 거칠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초기 시절의 어색한 대사들도 자주 들린다. “사랑한 죄밖에 없다” 같은 신파조의 대사는 듣기 불편할 정도다. 드라마 전개에 신경쓰다보니 설명투의 필요없는 대사가 길어졌다.
김기덕 감독이 시적인 이미지의 영화들로 관객과 소통을 시도해온 점은 창작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태도였다. 마치 구상보다는 추상이 더욱 자유롭고 활발한 사고작용을 자극하듯, 그의 영화도 추상처럼 기능했다. 이야기는 스크린과 관객 그 사이 어디를 떠도는 것이지 고정돼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영화와 관객과의 관계는, 감독이 그려놓은 드라마의 선을 관객이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일방적이고 관습적인 소통관계와는 다른, 자유로운 게 특징이었다. <시간>은 그런 미덕에서 조금 후퇴해 있다.